[르포] 한 집 건너 폐가…피란민 모였던 부산 마을유산 3곳, ‘빈민촌’ 됐다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6·25②]
관리 부실에 주민 고령화로 곳곳엔 폐가
〈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국내편〉 [2] 당신이 모르는 6·25
[헤럴드경제(부산)=박혜원 기자] “공동화장실 요금을 거둬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손해야.”
지난 8월 28일 오전 11시께 찾은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이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부산항과 가까운 지역을 매립한 뒤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거주한 동네다. 이날 보행기를 끌고 마을 골목을 지나던 통장 신동철(81) 옹 손에는 공동화장실 이용요금을 취합하기 위해 주민 명단을 정리한 종이 몇 장이 들려 있었다. 전쟁 당시부터 이곳에 거주했다는 신옹은 “예전에야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노인이 돼서 자꾸 떠나기만 하고 없어질 동네”라며 말끝을 흐렸다.
현재 매축지마을은 사실상 소멸 상태다. 낙후한 채 방치되다가 1990년대부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원주민 대부분이 이주한 영향이 크다. 부산 동구청에 따르면 한때 3만여명에 달했던 매축지마을 인구수는 이달 기준 211명으로 줄었다. 대부분 가구가 개인화장실도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데다 그나마 남아 있던 주민은 재개발에 쫓겨났다.
요즘 이곳에선 주민 모습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항 부두와 인접해 일제강점기 일본이 군수물자를 옮기기 위해 막사와 마구간을 지었고, 6·25전쟁에는 피란민이 마구간을 칸칸이 나눠 주거공간으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역사와 전쟁의 아픔이 동시에 남아 있는 곳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재개발사업이 진행된 데다 수차례 대형 화재까지 발생해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8개통(統) 대부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6통 일부에만 주민이 남아 있다. 이날 기자가 살펴본 50여m 골목에 밀집한 12가구 중 폐가만 7곳에 달했다.
매축지마을에서 20여년째 통영칠기사를 운영하는 박영진(68) 씨 역시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박씨는 “재개발로 매축지마을을 떠났던 원주민이 정기적으로 모여 만남을 갖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시들해졌다”며 “이제는 수명이 다한 동네”라고 털어놨다.
6·25전쟁 당시 ‘피란수도’ 역할을 했던 부산의 역사적 유적들이 훼손되고 있다. 매축지마을 외에도 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살아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미동 비석마을과 우암동 소막마을 역시 거주민이 고령화하면서 폐가가 즐비한 사실상의 ‘슬럼’ 상태가 됐다. 특히 비석마을과 소막마을의 경우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음에도 지자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25 발발 직후 정부는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했다. 부산이 한반도 최남쪽에 있어 정부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피란민을 보호할 수 있으며 군수물자 입항에도 용이하다는 점에서였다. 6·25전쟁기간 부산에 머문 피란민은 100만명에 달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는 “부산과 같은 피란수도 형태의 문화유산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형태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부산은 현재 비석마을, 소막마을 등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공동묘지와 화장장 터 위에, 소막마을은 소를 키웠던 막사에 피란민이 거주지를 조성했던 곳으로, 근현대사의 아픔이 담긴 장소다. 지난해 말 부산 내 피란수도 관련 유산 9곳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한 부산은 2028년 최종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는 부산항 제1부두, 임시 수도 대통령관저(현 임시수도 기념관), 유엔묘지(현 유엔기념공원)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곳은 현재 부산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아미동(비석마을)과 우암동(소막마을) 노후 건축물 비율은 각각 90.9%, 93.8%에 달한다.
기자가 방문한 우암동 소막마을에선 집 밖에 간간이 널려 있는 빨래들만이 아직 주민이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마저도 일부일 뿐, 폭 1m에 길이 스무 걸음에 불과한 골목에 8세대가 밀집해 있지만 한 집 걸러 폐가 상태였다. 녹슨 흔적이 가득한 문 안쪽으론 채 치워지지 않은 집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소막마을 주택 1동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원형을 복원한 커뮤니티센터가 올해 열렸지만 센터 뒷문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것 역시 폐가였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해설사 공경식(73) 씨는 “4평 남짓했던 공간에 층을 나눠가며 10명이 모여 살았다. 피란민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며 “보존 노력이 없진 않았지만 주택들 소유자들의 거부 문제로 노후하고 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소막마을은 매축지마을에 이어 재개발 압력에 사라질 위험이 큰 곳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부산은 우암동 일대 2만4000㎡ 내 주택 등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역사문화마을로 지정하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주거시설 일대를 소유한 24세대 중 19세대가 반대했다. 강 교수는 “소막마을은 재개발 압력이 특히 강해 보존이 매우 어려운 곳”이라고 말했다.
아미동 비석마을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피란민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주거지를 조성해 지금도 묘지 비석 등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지난해 부산시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됐지만 주민이 고령화하면서 인적이 극히 드물어졌다. 지난 2017년 도시재생사업으로 공동빨래방, 주택 개조사업 등이 이뤄지고 2021년 주택 9채를 리모델링해 박물관을 조성하는 등의 시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입인구가 없는 데다 관광객 역시 극히 드물어 가파른 골목 곳곳에 폐가가 적지 않았다. 이곳 역시 2019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만 38%에 이르는 등 소멸위기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산 보존을 위한 공공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후 지자체에서 별도 비용을 들여 마을을 관리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으나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재의 관리는 시늉 수준이라 정작 주민 생활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 주민의 이주를 부추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이 불편해하는 지역을 공공이 집중적으로 매입해 생활관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편〉
[1] 뉘른베르크편
-인류역사의 수치를 공개하다
[2] 베를린편
-역사 전쟁없는 도시
〈국내편〉
[1] 근현대사 유적지도
[2] 당신이 모르는 6·25
[3] 잊힌 친일문화 잔재
[4] 누구의 것도 아닌, 적산
[5] 남영동과 32개의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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