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화란', 희망 없는 세상에서 발견한 희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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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폭력 그리고 비정한 세상이 공식처럼 등장하는 누아르(noir)는 애초 희망과는 먼 장르다.
'화란'이라는 영화 제목은 네덜란드(和蘭)를 뜻하기도 하고, 어지러운 세상(禍亂)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는 희망인지 비극일지 모를 장면으로 문을 닫는다.
'화란'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김창훈 감독은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연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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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범죄와 폭력 그리고 비정한 세상이 공식처럼 등장하는 누아르(noir)는 애초 희망과는 먼 장르다. '화란'이라는 영화 제목은 네덜란드(和蘭)를 뜻하기도 하고, 어지러운 세상(禍亂)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 제목(Hopeless)에서는 이 이야기에 가지게 될 일말의 희망을 거세했다. '화란'은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마주 하게 되는 비극일까.
경기도의 작은 도시 명안에서 자고 나란 고교생 연규(홍사빈)는 곤경에 처한 이복동생 하얀(김형서) 돕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다. 이 일로 300만 원의 합의금이 필요하게 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의붓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어머니에게는 차마 돈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은 우연히 만난 연규에게서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고 선뜻 300만 원을 건넨다. 연규는 치건이 몸담은 폭력 조직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자신의 쓸모를 조금씩 인정받으며 조직에 적응해나가지만 이내 빠져나가야 할 곳임을 깨닫게 된다.
'화란'은 공간과 무드만으로 관객을 '검은 세계'로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발휘한다. '명안'(明安)이라는 도시명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공간은 암울하다.
연규와 치건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치건은 일찌감치 그게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고 그 세계에 순응하며 살고 있지만, 연규는 희망이 보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이상향인 '화란'(네덜란드)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영화다. 연규가 아무리 노력해도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으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수렁에 빠지기까지 한다. 영화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치건은 연규를 보며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내가 널 왜 몰라"라는 대사는 치건을 바라보는 연규의 시선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고 치건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연규 역시 치건이 낯설지 않다. 이들을 서로에게서 자신을 본다.
유사 부자 관계로 발전하는 이들은 결국 살부(殺父)의 당위 아래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희망인지 비극일지 모를 장면으로 문을 닫는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신예 김창훈 감독이 연출하고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비비)가 열연한 이 작품은 만든 이들의 뜨거운 에너지와 열정이 돋보인다. 영화 안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지만 이 영화의 탄생으로 인해 여러 희망과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화란'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김창훈 감독은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연출자다. 이 영화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준 가능성 때문이다. '화란'이라는 제목 아래 주인공의 삶과 상황,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한 설정은 매력적인 창작이었고, 빡빡한 밀도로 비정한 세계를 그려낸 솜씨도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다소 작위적일 수 있는 이야기의 아쉬움을 보완한다. 여백이 많은 시나리오를 채우는 메타포의 활용도 배우들의 연기에 의해 빛을 발한다.
홍사빈은 '올해의 신인'이다. 홍사빈은 젊은 배우가 자칫 분출로만 묘사할 수 있는 분노와 무기력, 허무를 절제의 연기로 표현해 냈다. 가수 출신은 김형서는 첫 영화에서 기대 이상의 호연으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출발을 알렸다.
송중기의 도전적인 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거친 밑바닥 인생을 연기한 바 없는 송중기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전진했다. '노개런티 출연'이라는 이슈보다 돋보이는 건 치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치열함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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