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화 버리고 달러 쓰자는 '극우 경제학자'… 아르헨 대선 돌풍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3. 10. 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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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대선
극단적 자유주의자 '밀레이'
총기 소유·마약 합법화 등
공약으로 전세계 이목 집중
집권 여당·우파야당과 3파전
1차투표 앞두고 선두권 유지
22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대선 본선 투표를 앞두고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당 후보가 18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지막 선거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극우 자유주의 성향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페소화 폐기,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낙태법 반대 등 자극적인 공약으로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은행과 페소화를 폐지하고 달러화를 채택하며, 총기 소유·마약 및 장기매매 합법화라는 극단적인 자유주의 공약을 꺼내 든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가 22일(현지시간) 대선 본선 투표를 앞두고 결선 투표 진출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지난 18일 아메리카소사이어티(AS)·미주협의회(COA)가 지난 9월부터 세 차례 진행한 주요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밀레이 자유전진당 후보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두 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밀레이 후보를 비롯해 현재 유력한 아르헨티나 대선 주자는 좌파 포퓰리즘 성향의 집권여당 후보인 세르히오 마사 경제부 장관, 중도 우파 야당 연합의 후보인 파트리시아 불리치 전 안보부 장관 등 3명이다.

22일 아르헨티나 대선 본선 1차 투표에서 이들 후보 중 1위가 득표율 45% 이상을 얻거나, 40% 이상 득표율을 얻고 2위 후보와 10%포인트 넘게 격차를 벌린다면 곧장 당선이 확정된다. 본선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으면 오는 11월 19일 치러질 대선 2차 결선 투표에서 1, 2위 후보가 맞붙어 최종 당선자가 결정된다.

올해 8월 실시된 대선 예비선거(PASO) 결과만 보면 밀레이 후보가 지지율 29.86%로 1위를 기록하며 경쟁자인 불리치(28%)와 마사(27.28%)를 꺾었다. 하지만 압도적 지지율 1위 후보가 없는 현시점에서 2차 결선 투표 때 당선자가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밀레이 후보의 결선 투표 진출이 유력해지면서 그가 밝혔던 극단적인 자유주의 공약이 재차 전 세계 이목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페소화와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달러화를 공용 통화로 채택하자는 '달러화' 공약이다.

밀레이 후보는 선거 유세 기간 현지 TV·라디오 매체 등에서 "페소는 거름으로도 쓸 수 없는 배설물보다 못한 쓰레기"라고 비난하며 "집권 즉시 달러를 공용 통화로 채택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유권자들 앞에서 중앙은행 건물 모형을 직접 파괴하는 등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스스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의 팬을 자처하는 밀레이 후보는 "세금 부과는 절도"라며 농산물 수출세 폐지, 노동세 감면, 공기업 민영화를 비롯해 국내총생산(GDP)의 15% 규모로 정부 지출 삭감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유세 현장에서 그는 기성 정치인에게 실망한 유권자들 앞에서 전기톱을 들고 다니며 "불필요한 정부 보조금을 잘라내고, 쓸모없는 기생충 같은 정치인 계급(카스트)을 종식시킬 것"이라면서 괴짜 정치 신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회주의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밀레이 후보의 대외 정책은 기존 좌파 정부의 친중국·반미 기조와 정반대다. 그는 아르헨티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 탄압을 이유로 중국 공산당을 '암살자'라고 비난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가까운 동맹으로 삼겠다"며 노골적인 친미 행보를 걷고 있다.

197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인 버스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이 후보는 벨그라노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20여 년간 경제학자로 대중 매체에서 활동했다. 이후 좌우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인을 비판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0대 시절 록밴드 활동 경험을 살려 그는 가죽 재킷을 입고 록스타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해 '가발'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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