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우리 경험이 아이 유전자를 바꾼다
인간이란 유전자와 환경의 구조적 결합체다. 유전자는 피부색이나 얼굴 모양, 체격과 체질 등 신체 특징뿐 아니라 성격 같은 심리 자질도 좌우한다. 그러나 유전자가 놓인 맥락도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인간은 크게 달라진다. 유아기 때는 가족의 보살핌이, 자랄수록 또래 집단 교류가 인간 성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데이비드 무어 미국 피처대 교수의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아몬드 펴냄)에 따르면 경험도 중요하다. 후성유전학의 연구 성과를 집약한 이 책은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우리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손들의 유전적 특질마저 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부모는 아이에게 유전자만 물려주는 게 아니다. 안전한 집, 물과 공기, 식량, 보건과 의료, 소통과 학습 방식, 정치 및 사회 시스템 등 아이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발달자원도 함께 제공한다. 발달자원의 결합 방식에 따라 아이의 유전자가 발현되거나 억제되고 그 결과는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행동하고 생활하는 방식이 자손의 미래를 결정한다.
여기엔 지능, 언어, 영적 각성 능력 등도 포함된다. '늑대소년'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런 능력은 전적으로 경험에 의존해 발달한다. 언어 소통이 발달한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 이 능력을 발현시키고 이를 대대로 물려준다. 이 때문에 인류 전체가 강력한 언어 유전자를 타고난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중요하다. 임신 마지막 3개월 동안 엄마가 꾸준히 당근 주스를 마시면 아기들은 당근 맛 시리얼을 더 잘 먹는다. 엄마가 먹는 음식이 양수의 화학적 상태에 영향을 끼치고, 양수를 마신 아기의 음식 취향을 바꾸기 때문일 테다.
임신기에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여성이 낳은 아이들은 조현병, 심장병, 당뇨병 등에 걸리기 쉽다. 심지어 그 영향은 60년 후 손주 세대에게도 나타난다. 이를 조부모 효과라고 한다. 조상의 경험이 후손의 삶을 바꾼다.
사랑이나 학대 같은 행동양식도 대물림된다. 학대 부모의 약 70%가 학대받은 경험이 있었고, 유아기에 학대당한 이들의 20~30%는 가해자가 된다. 반대로, 부모에게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자기 자녀를 사랑할 확률도 높다. 애착이나 학대 경험이 인간 뇌의 유전 물질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대물림돼 우리 후손의 유전자를 바꾼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한층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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