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견] 철도 건설과 도시의 미래
세금드는 철도 관련 사업에도
당선 노린 섣부른 주장 대다수
空約 아닌 公約 되려면
유권자가 현명히 판단해야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반년 동안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온갖 공약(公約)을 내걸 것이다. 그 공약 가운데 상당수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공약(空約)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 공약(空約)들은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공약(公約)으로서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공약은 철도다. 철도 노선을 자기 지역으로 연장하겠다거나, 자기 지역에 철도역을 새로 짓겠다거나, 고속철도가 정차하게 하겠다거나, 고가·지상으로 달리고 있는 철도·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등의 주장을 앞으로 반년 사이에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이런 공약들 가운데에는 고가선로나 지상으로 다니는 열차를 지하화하겠다는 것처럼 실제로 시민들 요구가 강하고 사업 필요성이 존재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반면, 경전선 함안역처럼 정치권이 무리하게 고속열차를 정차시켰다가 2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린 경우도 있다. 고속열차가 정차할 수 있도록 역 건물을 크게 지었지만 고속열차가 정차할 때나 지금이나 그 건물을 이용하는 시민은 많지 않다. 호남선 공주역처럼 함안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지적받는 철도 역사가 전국에 적지 않다.
철도 노선을 신설하거나 역 건물을 짓거나 고속열차가 정차할 수 있게 역과 선로를 개량하는 데에는 큰돈이 든다. 그 돈은 당연히 세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철도 사업에 대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나 감사원의 감사가 다소 보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이뤄진다.
예타 등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사업이 확정된 뒤에 사업 내용을 뒤늦게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내거는 공약 가운데에는 예타 등을 통과한 사업에 대해 뒤늦게 선로 연장 및 정차역 추가 등을 내거는 경우가 있다. 약간의 증액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상당한 예산이 추가로 요구되는 경우에는 사업 적정성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다 보니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 전 노선이 확정된 남부내륙철도는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제시 사이를 잇는 신설 철도 노선이다. 이 노선은 예타가 낮게 나와서 매번 사업 추진이 무산되다가 2019년 예타에선 면제 사업으로 정해지면서 비로소 실현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나 예산 문제 때문에 노선상의 정차역을 최소화했고 거제시에 설치될 종착역의 위치도 토지 수용비 등을 고려해서 사등면 사등리라는 외곽 지역으로 정해졌다.
이상적으로는 이용객이 많은 시가지에 종착역을 건설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됐다고 해도 예산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등리로 종착역과 차량기지 위치가 결정된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일부 현지 시민들은 종착역의 위치를 변경하자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를 공약으로 내거는 후보가 분명히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검토 끝에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인 만큼, 만약 역의 위치를 바꾼다고 하면 다시 처음부터 예산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지난 9월 남부내륙철도 사업비가 2조원 증액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자 기재부는 사업계획의 적정성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업 완공 일자가 늦어지는 것뿐 아니라 사업 자체를 착공할 수 있을지도 우려하기 시작했다.
현대 한국에서 착공까지 하고도 중단된 철도 사업은 수없이 많다. 남부내륙철도가 그 중단된 철도 사업 리스트에 추가되지 않으려면 지금 제시된 사업 내용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본인들의 부동산 투자나 선거 당락 때문에 사업 내용 변경을 섣불리 공약으로 내걸었다가는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앞으로 반년간 전국의 정치인들은 철도 노선 건설과 철도역 건설, 고속철도 정차 등으로 수많은 공약을 내놓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공약(空約)을 남발한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유권자인 우리 시민들이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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