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있는 자여, 지붕을 놀리지 말라

2023. 10. 2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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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전기요금 절감에 RE100 이행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건물형 태양광 설치 전문업체인 아이솔라에너지가 LS전선 인동공장에 설치한 태양광발전 설비의 전경 / 아이솔라에너지 제공



“오염물질 저감 투자 없이 사업을 운영할 경우의 2025년 배출권 구매액, 과징금 등에 의한 재무적 손실액은 최대 5230억원으로 추정되었습니다.”(현대제철 2023 통합보고서)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유상으로 할당하는 비율을 높이고, 국내외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높아질 경우 감축의무가 있는 기업의 재무적 부담은 커지게 된다. 무상할당량을 초과해 배출하면 그 초과한 양만큼 배출할 권리를 배출권 시장에서 사야 하는데,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면 그만큼 비용이 커진다. 철강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석유화학,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우리의 주력 제조업은 대부분 에너지 집약적이다.

탄소 배출에 따른 부담은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CBAM은 지난 10월 1일부터 시작된 전환기간을 거쳐 2026년 1월 본격 시행된다. 전환기간인 2025년 말까지 보고 의무만 있지만, 이후엔 유럽연합 탄소 배출 비용과 원산지국에서 지불한 탄소 배출 비용의 차이만큼을 관세 형태로 내야 한다. CBAM과 비슷한 제도를 미국과 영국 외에 캐나다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탄소중립 경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첫 단추는 사용하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일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산이나 농지를 훼손하지 않아도 된다. 공장의 지붕, 주차장의 지붕 등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땅만 잘 활용해도 상당한 양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해 국감 때 양이원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산업단지 지붕형 태양광의 기술적 잠재량은 14.46GW에 달한다. 이는 국내 전체 발전설비용량(2021년 기준) 대비 10.8%에 달하는 규모다.

공장을 비롯해 모든 건축물로 범위를 넓힐 경우 2050년 시점에서 건물에 설치 가능한 태양광 설비는 145GW(옥상 면적 25% 사용 가정)로 평가된다. 평균 이용률을 15.38%로 가정하고, 2050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양광 모듈 효율 34%를 적용하면, 발전량은 연간 177TWh로 예상된다. 현시점의 태양광 모듈 효율(20%)을 적용하면 연간 발전량은 104TWh 정도다. 국토의 1.5%에 불과한 옥상 면적의 일부만 활용해도 2022년 국내 총발전량 594TWh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장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건물의 지붕은 이미 개발된 곳이라 환경 파괴 문제가 없다. 특히 공장 지붕은 기존에 사용 가치가 없던 곳이었는데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면 전력 판매 수입이나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RE100에 참여하는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기업 역시 전력의 탈탄소화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건물형(지붕형) 태양광은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경기도 평택의 포승 산업단지에 입주한 티센크루프머티리얼코리아의 고석규 이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을 자체적으로 조달한다는 방향에서 지붕에 700㎾ 규모의 태양광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공단의 유휴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게 장기적으로 한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지붕형 태양광은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 안전진단을 거친 후, 공장의 오래된 지붕 위에 새 지붕을 덧대고 그 위에 태양광 패널을 붙이는 방식으로 설치한다. 철거가 필요 없어 공장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 관련 공법을 개발한 전문업체인 아이솔라에너지 윤석규 대표는 지붕의 수명을 3~5배 늘리고, 방수·단열 효과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상암동 사옥에서 만난 윤 대표는 이 회사가 귀뚜라미 아산 공장에 설치한 지붕형 태양광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바래고 녹슨 슬래브 지붕이 깔끔하게 변신했다.

“아파트단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미관이 개선되니 주민 반대가 없었죠. 디자인만 예쁘게 잘한다면 얼마든지 수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 업체는 서울 은평구 불광천 공영 주차장의 지붕 태양광 사업에도 참여했다. 태양광발전소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결합해 낮에 태양광으로 충전하고, 밤에 전기차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형태이다. 밑에서 보면 그냥 지붕인지, 태양광 패널인지 알 수 없도록 마감처리해 주민 민원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

현재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은 전기와 REC(재생에너지구매인증서)를 판매하는 두 경로로 수익을 얻는다. 전기 판매가는 계통한계가격(SMP)으로 결정된다. REC 가격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50만㎾ 이상 발전사업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의무화한 제도로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다른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REC를 구매해 이행)와 관련된다.

최근 1㎾h당 SMP 가격은 140원, REC는 82원 수준인데 지붕형 태양광은 REC 가중치 1.5(123원)를 적용받는다. 결국 지붕형 태양광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1㎾h당 263원 수준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2년 말 조사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발전단가는 2022년 기준 142원/kWh(지상형 1㎿ 기준)로 추정된다. 일반 부지에 설치하는 지상형이든 (가중치를 더 높이 받는) 지붕형이든 태양광의 수익성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아이솔라에너지의 경우 자체 기준으로 1㎿ 규모의 태양광발전을 설치할 때 1㎾h 생산에 드는 비용이 96원(20년 수명·대출 80%·하루발전시간 3.6시간 가정)으로 나온다. 자사가 소유한 땅(공장 옥상)에 설치하기 때문에 토지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더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에 대해 설치비용 13억원(1㎾당 130만원)이라는 큰돈이 초기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할인율을 적용한 균등화발전단가(LCOE·발전시설 총비용의 현재가치를 총발전량의 현재가치로 나눈 값) 기준으로 볼 때 100원 초반을 넘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 대표는 태양광발전을 택하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한 시기에 왔다고 강조했다. 상업용은 물론, 가정용 에너지원으로도 마찬가지다.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1kWh당 상업용·가정용 전기평균요금은 각각 166.5원과 160.9원이다. 전기요금과 국내 태양광발전단가(142원)를 단순 비교하면 한전에서 사는 것보다 직접 설치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특히 최대부하시간(11:00~12:00, 13:00~18:00) 동안 상업용 전력요금은 203~204원 정도라 차이가 더 크다. 가정에서도 한 달 400kWh 이상을 쓰면 기존 201~400kWh를 사용할 때와 비교해 기본요금은 1600원에서 7300원으로 오르고, 1kWh 요금은 214.6원에서 307.3원으로 올라간다.

일시적 가격 상승에도 경제성은 높아 발전단가의 경우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태양광 업계에선 대략 10㎿ 이상 대규모 태양광의 LCOE가 1㎾당 100원 정도라고 보고 있다. 에너지 IT 플랫폼 기업 엔라이튼의 경우 기업이 소유한 건물 지붕에 자가소비 태양광을 설치하면 LCOE가 120~130원/kWh 내외 수준일 것으로 본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가소비 태양광은 한전 산업용 전기요금 단가가 높은 최대부하 및 중간부하 시간대에 주로 운영되며, 태양광이 운영되는 시간대에 기업이 한전에 납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평균단가는 150~160원/kWh 내외 수준”이라면서 “기업 입장에서 자가소비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경우 태양광발전량만큼 현재 기준으로 20~30원/kWh 수준의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요금 절감과 함께 RE100 이행과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향후 예상되는 한전 전기요금 인상 위험도 대비할 수 있다.

지난 3월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간한 6차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태양광(85%), 풍력(55%), 리튬이온 배터리(85%)의 단위 비용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10년간의 큰 폭의 가격 하락 덕분에 태양광의 경우 10배 이상, 전기차의 경우 100배 이상으로 보급이 늘었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는 많은 지역에서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보다 저렴해졌다. 대규모 전력저장장치로서의 배터리의 효용성도 커졌다.

하지만 가파른 하향세는 최근 상승 반전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지난해 말 보고서(재생에너지 공급확대를 위한 중장기 발전단가 전망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태양광발전단가는 전년 대비 13.5%, 글로벌 육상풍력은 6.7% 상승했다. 국내 태양광발전의 경우 설비 규모에 따라 130만5000~161만7000원(㎾당) 수준으로 전년 대비 8~13% 올랐다. 코로나19 확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여파로 공급망 경색이 초래됐고, 이에 따라 주요 원자재 가격과 화물 운임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의 상승세는 2년 정도의 일시적 현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김은성 넥스트그룹 부대표는 “시장 확대로 인한 규모의 경제 효과로 단가가 떨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라 계속 상승할 것 같진 않다”면서 “다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처럼 예측 못 한 충격이 있거나 고금리가 계속 유지될 경우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 시간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시적 가격 상승에도 국내 태양광발전은 화석연료 대비 경제성에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SMP를 결정하는 천연가스를 비롯해 화석연료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윤창열 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처럼 SMP와 REC 가격이 많이 상승한 시기엔 태양광 설치의 경제성은 누가 봐도 문제가 없다”면서 “발전단가가 문제가 아니라 설치공간을 확보하기까지의 민원 비용과 더 큰 문제로 부상한 계통연결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력망이 전국적으로 포화상태라 재생에너지를 설치해도 여유 용량이 생길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 은평구 불광천 공영주차장 지붕에 태양광발전 설비와 함께 에너지저장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 아이솔라에너지 제공



대기업 솔선수범·정부 지원이 활로 만들어

국내 기업들이 비싼 한전 전력을 사는 대신 값싼 태양광을 자가 소비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은 선택지다. 초기에 큰 투자비를 들여 설치한 후 20년 이상 장기간 한전의 전기요금을 절감하는 방식인데, 본업이 아닌 태양광발전에 이런 투자비를 자체 자금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드물기 때문이다. 엔라이튼 관계자는 “(자기 자본이 없다면 대출을 택할 수 있지만) 전기와 REC를 한전과 RPS 공급의무자에게 판매하는 발전사업과 달리, 자가소비 태양광은 현금흐름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판단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RPS 시장에서 지붕형 태양광발전사업을 대상으로 실행되는 금융 지원이 자가소비 지붕 태양광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한다면 자가소비 태양광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성 부대표는 부지와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 선순환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토지와 금융비용을 뺀다면 LCOE는 1kWh당 110~130원으로 단순히 전기요금과 비교해도 괜찮지 않나. 앞으로 전기요금은 올라갈 것이 자명하니 계속 이득을 볼 수 있다.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는 점에서 건물도 소유하고 자금도 소유한 대기업이 먼저 빨리 설치해 긍정적인 사례를 많이 확산하면 다른 기업도 뒤따라가지 않을까. 선도 기업이 시장을 만들면, 사업자들이 계속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역할도 강조했다. RPS 의무비율 축소와 같은 잘못된 신호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초 14.5%로 예정돼 있는 올해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량 비율을 13%로 하향 조정했다. 연도별 의무비율을 대폭 줄인 데다 법정 상한인 25%를 달성하는 시기 또한 2026년에서 2030년으로 4년 늦췄다. 김 부대표는 “앞으로 이 시장이 성장할 거라는 장기 플랜을 보여줘야 기업도 투자하고 가격도 내려갈 텐데 지금은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이 축소되고 RPS 의무비율도 축소되면서 시장에 투자하라는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시장을 열어줄 것이라는 신호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사업자들이 어떻게 투자에 뛰어들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사실상 국내에만 존재하는 이격거리 규제와 같은 재생에너지에 차별적인 제도도 대폭 손봐야 한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한화큐셀을 비롯한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국내 생산을 축소하고 해외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일자리 유출과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우식 한국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은 “미국이나 유럽, 중국에서 재생에너지가 큰 폭으로 확대되고 관련 산업이 성장하는 것만 봐도 IRA를 비롯한 정부 정책 역량이 큰 변수임을 알 수 있다”면서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확대, 수출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강력히 펼치고, 계통 연계를 위한 전력망 투자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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