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중의 재테크 칼럼]전쟁과 채권시장
‘전쟁’을 군사영어사전에서는 상호 대립하는 2개 이상의 국가와 이에 준하는 집단사이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활용하여 자국의 의사를 상대국에 강요하려는 행위 또는 그러한 행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는 군사적 측면인 무력투쟁 뿐만 아니라 비군사적인 측면인 정치, 외교, 경제, 심리, 사상 및 과학기술 등 국가적 역량까지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전쟁은 ‘확대된 양자 결투’로도 정의된다. 양자는 물리적 폭력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당연한 목적은 상대를 타도하는 것으로 어떠한 저항도 불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세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은 인간의 생사와 국가존망이 걸린 문제임에도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고 지속적인 것일까? 전쟁은 정치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정치의 연장이다. 따라서 일류가 생존하고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 지구상에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며, 항상 전쟁의 위협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냉엄한 국제정치사회 속에서 생존을하기 위해선 한 치의 물러섬도 있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쟁을 할 때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양측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하는 이유는 전쟁을 하려는 자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전쟁은 인류생존의 기본요소이며,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양상만 다를 뿐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급격한 지구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류는 안정적으로 식량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부족한 식량을 공급받기 위해 수확지대를 확보해야 한다. 인구가 증가하여 수확지대를 더 이상 확보할 수 없거나 지구환경의 변화로 식량이 부족해지면, 먹을 것을 놓고 이웃부족과 싸우려는 일차적인 욕구가 나타난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예상될 때 인간의 전쟁본능은 숨김없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전쟁의 결과야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결과든 먹는 문제와 종족보존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즉 전쟁에 패하더라도 많은 전사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먹을 인구가 감소하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상대부족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 자원과 여자들을 귀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종족보전에 유리하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전쟁은 부족을 먹여 살리고 종족을 번영시키는 방법이 된 것이다.
국가 간의 전쟁원인은 경제, 종교, 문화 등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생겨난 대립과 갈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이 반드시 정치지도자 개인의 성격이나 오판으로만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인과 정치구조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이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기에 설사 전쟁이 발발했다 하더라도 대량피해와 살상을 입히지 않고 전쟁의 목적만 달성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구조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의지나 심리를 잘 활용해서 싸우지 않고 이기거나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피해를 유발하고 승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방안이다. 결국 국가 간의 분쟁이나 전쟁에 있어 원인과 해결을 위한 조정이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과 결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공익적인 사업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초기에 채권은 전쟁을 위한 대규모 군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이자지급 방식과 채권발행 시 담보를 제공하는 방법 등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시작된 채권시장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17세기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은 유럽 여러 국가들이 군사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채권을 취급하면서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까지 부상하게 되었다. 1981년에 시작되어 4년에 걸쳐 진행된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남부와 북부 모두 소요되는 막대한 군자금이 요구되었다. 상공업이 성장하면서 도시중심으로 발전하여 중앙 집중화된 세금징수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던 북부와는 달리 농장운영을 중심으로 한 자금자족형태의 경제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남부는 내부에서 채권을 대규모로 구매해줄 경제력이 없었다. 때문에, 면화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하여 유럽인의 투자를 이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1863년 7월 게티즈버그 전투의 패배로 인해 전세는 급격히 북부로 기울어졌고, 유럽인들은 남부에서 발행한 채권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남부는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북부에 항복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과거 전쟁을 위해 필요한 군자금 조달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채권시장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모두 개입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 발권국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전쟁자금을 언제든지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국채발행으로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의 금리를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 될 수 있기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말로 마감된 회계연도 2023년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2조 달러($)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중동에서의 무력 충돌로 유가급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유가급등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원인이 되고 동시에 경기침체상황에 놓이게 되면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최악의 국면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5%를 넘어서고 있다. 재정적자 비율을 커지게 된 원인에는 국내총생산인 GDP가 위축된 측면도 있다.
미국이 앞서 언급한 전쟁 모두를 동시에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에 적자재정 상황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 정부에서 필요한 지출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국채발행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 연준(Fed)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가 대규모 적자재정(지출)을 통해 통화긴축으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영원히 안고 가야 하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미 국채금리 상승으로 미국은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미국 국채를 매입하던 경상수지 흑자국도 수요가 둔화되는 국면에 진입했고, 중국의 경우에도 위안화 약세를 방어해야 하는 압박이 있어 시장개입 차원의 미 국채매각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 또한 자국 국채금리의 상승으로 투자매력도가 올라감에 따라 미국 국채에 대한 매입규모를 줄이고 있다. 현재 미국은 시장에서 추가적으로 국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추가적인 재정적자 확대와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환경 하에 고금리 상황을 수용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이 전쟁으로 구조적인 재정적자 확대를 지속적으로 용인할 수밖에 없다면 미 국채수익률이 하락하더라도 현 수준에서 크게 낮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요약하자면 전쟁으로 안전자산인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국채공급을 소화하기에는 속수무책일 수 있는 것이다.
적자재정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Global) 채권금리의 벤치마크(Benchmark)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2007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연 5.0%에 다가서고 있어 걱정이다. 전반적으로 금리인상 여건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시장의 경우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1080조 가까운 수준으로 잔액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은행기업대출 잔액도 1239조원 수준이다. 문제는 연체율이 오르고 있어 상환능력이 떨어져 대출이 언제 부실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있다.
재테크 차원에서 이래저래 호재는 없고 악재만 가득한 시장 환경에 처하게 된 셈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