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노인은 꽃사진 찍길 좋아한다. 이미 꽃이 아니므로"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0. 2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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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쓴 노벨상 수상자이자 영원한 청춘의 교사
앙드레 지드 (1869~1951)

나이 든 사람들은 꽃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꽃은 생명력의 정점이다. 즉 꽃은 '청춘'이다. 이제 청춘을 지나쳐버린 사람들은 꽃을 찍는 것으로 생명력의 정점이 지나갔음을 아쉬워한다.

청춘은 공유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청춘은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결코 어떤 세대도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는 승계밖에 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다.

소설 '좁은 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는 청춘을 승계하는 매뉴얼북 같은 책을 두 권 남겼다. '지상의 양식'과 '새로운 양식'이 그것이다. '지상의 양식'과 '새로운 양식'은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좀 모호한 구성을 지닌 특이한 저작물이다.

'지상의 양식'과 '새로운 양식'은 서로 3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쓰였지만 핵심 메시지는 같다. 현실이나 규범에 굴복하지 말고 꿈과 의지대로 청춘을 누리라는 게 두 책의 방향성이다.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자기의 현재를 살아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더 이상 고통의 편에 들지 않을 것이다."('지상의 양식' 중)

지드가 이처럼 청춘을 마음껏 누리기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그의 성장사를 들여다보면 단서가 보인다. 지드는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사망하면서 외가에서 자라게 된다. 지드의 외가는 프랑스에서는 드문 개신교 집안, 그것도 엄격하기로 유명한 칼뱅파 청교도였다. 칼뱅파 청교도는 적극적인 금욕을 통한 탈세속화를 중요시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시시각각 신앙을 증명해야 하고 늘 욕망을 자제하는 것이 칼뱅파의 도리였다. 섬세하고 호기심 많은 욕망의 화신 지드는 이에 반발했다. 육체를 포기해야 정신이 행복해진다는 식의 구분법은 지드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지드의 대표작 '좁은 문'에는 신이 규정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랑마저도 포기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 지드는 "육체와 함께 행복하기를 신도 바랐을 것"이라고 외친다. 지드는 말년에 쓴 '새로운 양식'을 통해 더욱 완숙해진 청춘론을 펼친다.

"그대는 다시 채워 넣어야 할 텅 빈 하늘 아래. 처녀지에 벌거숭이로 서 있다…. 오, 내가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한 손으로 이 광선을 붙잡아라. 별이 있지 않느냐! 무거운 짐을 버려라. 아무리 가벼운 과거의 짐이라 해도 거기에 매이지 마라…. 나는 인간을 축소시키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

지드의 책들은 청춘의 승계 방식을 알려주는 하나의 '바통(baton)' 같다. 지드는 청춘의 승계만이 인류를 퇴보시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세대 갈등이 있는 사회는 이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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