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존재와의 동행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10. 20. 16:33
앞을 보지 못하는 미술 애호가가 있다. 극도의 약시를 갖고 태어나 시각의 기억이 없는데도 시각예술을 즐기는, 일본인 시라토리 겐지다. 그는 눈이 보이는 사람과 동행해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을 감상한다.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그 사람과 함께 작품을 보면 재미있다"는 지인의 말을 통해 성사된 만남 이후 2년 넘게 미술관 감상을 함께하며 그 기록을 남겼다. 저자 시점의 서술, 두 사람과 지인들의 대화체 복기로 구성된 글로, 언급하는 작품 사진도 컬러로 곁들였다.
시라토리 씨와 함께라면 평소 슬쩍 보고 지나쳤을 작품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된다. 작품을 묘사하기 위해선 익숙했던 것도 더 잘 봐야 한다. 또 작품에 관한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소한 개인적 경험부터 예술, 역사, 사회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깊어진다.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 통념도 대화를 통해 허물어진다. 그 과정에서 시라토리 씨 역시 '비장애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자신의 무의식적 강박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서로 다른 존재와의 동행, 이해를 전제로 한 대화의 결과다. 지난해 출간 후 일본 서점원들이 선정하는 2022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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