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식 1년, 풍요로운 새 삶과 만나다[책과 삶]
기후변화에 위기의식···변치 않는 사람들에 좌절
블랙프라이데이에 “1년간 야생식만 먹겠다” 선언한
약초연구자 모 와일드
5년 전, 열다섯 살 학생이 금요일에 학교 대신 스웨덴 의회로 가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다. 학생은 기후위기에 맞서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았다. 약초 연구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의 약초 연구자 모 와일드는 1년 동안 야생식만 먹겠다고 선언한다.
가속화되는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와일드는 날카로운 위기의식을 느꼈다. 인류 모두가 지구와 환경을 파괴해온 행각을 돌아보게 되길 바랐지만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을 맞아 여전히 소비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며 좌절했다. 그는 “저항으로서의 단식투쟁에 가까운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한다.
“자연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지구의 단절을 치유할 방법이라고 직감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지, 정말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보려고 했다.” 그는 11월27일 프라이데이, 자신이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중부에서 직접 채취할 수 있는 음식만 먹기로 한다. 하필 겨울에! 그는 비축한 식량도 없이 과감히 일을 저지른다.
와일드는 어린 시절을 케냐의 자연에서 보내며 식물과 허브에 매료됐다. 4개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성장했으며, 다양한 직업을 섭렵하고 세 아이를 홀로 키우다 쉰 살에 대학에 들어가 약초학 석사를 받았다. 식물 채취에 관해 전문가이지만 야생식으로만 1년을 난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었다. 특히 식물들이 잎을 떨구고 동면에 드는 겨울은 혹독했다.
그는 규칙을 세운다.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돈을 쓰는 건 금지다, 사지 않고 채취와 사냥·선물·물물교환으로 얻은 음식만 먹는다, 야생 조류 알 대신 직접 유기농으로 풀어 키운 암탉의 달걀을 먹는다, 겨울철엔 미리 채취하여 냉동·건조·보존 처리한 야생식도 먹을 수 있다 등이다.
이제 채식으로만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어졌다. 비건은 신선한 푸성귀가 넘쳐나는 봄의 짧은 기간에만 적합했다. 구석기인 식단으로 알려진 ‘팔레오 식단’은 육류와 생선이 풍부한 여름에 적합하다. 지금이야 넘쳐나서 문제인 탄수화물은 가을·겨울에만 ‘제철’이다. 가을에야 곡물과 견과류를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으며, 이웃이 나눠준 사슴고기, 토끼, 다람쥐도 먹는다. 식물의 꽃부터 뿌리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고, 동물의 기름은 저장한 후 요리에 사용했다.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없었다.
저혈당과 어지럼증···피시앤칩스 가게로 달려가기도
후추맛 나는 해초, 레몬맛 입사귀
야생식의 풍부한 풍미의 향연
겨울에 야생식을 시작하는 바람에 저자는 고난의 시간을 보낸다. 저장해놓은 견과류와 씨앗에 기대지만 부족한 야채와 육식 중심 식단에 식욕을 잃고 저혈당에 시달리기도 한다. 지방이 부족해 입안이 바싹 마르고 어지럼증에 충동적으로 집 근처 피시앤드칩스 가게로 차를 몰고 가기도 한다(상점은 문을 닫았다).
그에게 육식은 비닐에 포장된 고깃덩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의 연결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밭에서 발견한 3000년쯤 된 돌칼로 산토끼의 가죽을 벗겨낸다. 산토끼의 피부와 힘줄, 근육의 결합을 확인하며 고기를 발라내는 작업은 도살보다는 “경건한 행위”에 가까웠다. “산토끼 사이에 이전과 다른 통렬한 유대감”을 느낀 그는 산토끼에게 보답하기 위해 미래의 은신처와 겨울 식량이 되어줄 산사나무를 심는다.
봄이 되자 들과 숲이 깨어나듯 저자도 생기를 되찾는다. 꽃과 나무의 여린 잎 등 모든 것이 신선한 먹을거리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서양민들레다. 뿌리를 구워 직접 채취해 만든 자작나무수액 시럽을 뿌려 먹는 걸 즐긴다. 부들의 어린 뿌리는 감자처럼 구워 먹을 수 있고, 새순은 아삭아삭하고 물밤과 오이 맛이 난다. 나무의 첫 어린잎은 “기린처럼 나무에서 바로 뜯어” 먹는다. 너도밤나무의 잎은 레몬 맛이 나고, 산사나무잎은 고소한 맛이다. 우리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야생식의 풍부한 풍미가 저자의 혀끝에서 펼쳐진다. 다양한 해조류를 구할 수 있는 해안은 “세상 끝자락의 슈퍼마켓”이다. 후추 맛부터 강낭콩 맛까지 해초의 맛도 가지각색이다. 저자는 야생식의 풍미를 언어로 다 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1년 만에 체중 31㎏ 감소, 장내 미생물 풍부
자연과의 연결감과 몰입, 이웃의 환대 확인
“내가 발견한 것은 풍요로움”
인류는 역사를 통틀어 7000여종의 식물을 먹어왔지만, 현재는 전 세계 칼로리 섭취량의 절반이 밀·옥수수·쌀이라는 세 가지 곡물에서만 나온다. 저자가 1년 동안 먹은 야생식은 부족하고 척박하기보다 다채롭고 풍부했다. 이제 다들 궁금해할 야생식 1년의 결과를 알아볼 차례다. 비만에 가까웠던 저자의 체중은 31㎏이 빠지고 옷 사이즈는 25년 전으로 돌아갔다. 장내 미생물도 다채로워졌다. 신진대사 기능을 개선하는 유익 미생물인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가 630%나 증가하기도 했다.
야생 채집 행위는 자연과의 연결감,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음식은 자연이 준 선물일 뿐 아니라, 이웃들의 환대와 나눔이기도 했다. 야생식을 한다는 말에 이웃과 친구들은 기꺼이 식재료와 음식을 나눴다.
“단식투쟁에 가까운 최후의 수단”으로 시작한 야생식 1년의 끝에 저자가 발견한 것은 풍요였다. 슈퍼마켓은 전혀 그립지 않았다. 저자는 채취에 더해 야생식 땐 중단했던 유기농법으로 야채와 과일을 직접 재배하고 유기농 농장을 이용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궁핍과 고난을 각오하며 이 한 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오히려 풍요로움이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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