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하는 동안 차 한 대 도난…눈 뜨고 코 베이는 캐나다 운전자[다른 삶]
1990년대 초중반 프랑스에 살던 어느 선배가 귀국하면서 자기가 타던 중고차를 가지고 왔었다. 서울에서 외제차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독일산인 그 차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었다. 내 눈에는 자동차보다 운전자가 하는 행동이 특이해 보였다. 선배는 자동차에서 내릴 때마다 ‘카오디오’ 기기를 들고 내렸다. 마치 검은색 벽돌을 잡아빼는 것 같았다. 자동차에서 카오디오 기기를 뺀다는 것도, 들고 다니기 편하게끔 거기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는 것도 신기해 보였다. 그 선배는 “유럽에는 카오디오 도둑이 하도 많아서 이걸 빼 들고 내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별 이상한 도둑도 다 있네’ 했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토론토에 살러 왔더니 비슷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자전거 안장이었다. 안장을 뽑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자물쇠를 아무리 채워도 자전거 도난을 방지할 수 없으니, 아예 안장을 빼서 몸에 끼고 다니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당시 토론토는 ‘자전거 도둑의 천국’으로 불렸다.
그즈음 자동차 관련 좀도둑도 많았다. 주유소나 주차장에서 운전자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면서 자동차 안에 있는 가방을 훔쳐가는 도둑질이 기승을 부렸다. 주차장에서 자동차 바퀴를 몰래 빼가는 경우도 잦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토론토의 승용차 바퀴는 볼트 가운데 하나가 자물쇠 구실을 하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팬데믹 후 전국 각지서 차량 절도 폭증…토론토선 6분에 한 대 꼴
운전대·타이어 잠금도 무용지물…지게차로 트럭에 싣고 가기도
단순 절도 아닌 조직적 해외 밀수출…“이게 나라냐” 소리가 절로
자동차 바퀴를 빼가는 정도의 절도는 요즘 벌어지고 있는 자동차 도난 사건과 비교하면 정말 ‘애교’에 속하는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캐나다는 ‘자동차 도둑의 천국’이 되어버렸다. 자동차 관련업계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국가적 위기’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국가적 위기라는 표현이 과장되었다거나 호들갑 떠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내가 직접 들은 사실만 가지고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자동차 도둑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팬데믹 와중이었다. 2022년 토론토의 자동차 도난 사건은 2015년에 비해 300% 폭증했다. 자동차 도둑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은 온타리오주와 퀘벡주. 2021년 두 지역에서만 2만7000여대가 도난을 당했고, 작년에는 도난 차량이 50%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토론토와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에서 도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토론토의 경우 작년 한 해에만 8000대 이상이 도난을 당했다. 토론토에서는 지금 6분에 한 대꼴로 자동차가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온타리오주는 17분에 한 대).
내가 가입한 보험사는 도난 사건을 예방하라며 ‘도둑 맞기 쉬운 차량’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왔다. ‘Acura, RDX’ ‘Dodge, RAM 1500’ ‘Honda, CR-V’ ‘Jeep, Grand Cherokee’ ‘Jeep, Wrangler’ ‘Land Rover, Range Rover’ ‘Lexus, RX350’ ‘Toyota, Highlander’. 이 리스트에 오른 2019년 이후 모델이 도둑의 표적이 된다고 했다.
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도난 사례를 보면, 도둑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량은 ‘Lexus, RX350’과 ‘Honda, CR-V’이다. 자동차 파이낸싱업계에서는 “운전자들이 왜 도둑들의 표적이 되는 차량을 계속 구입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황당한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내 주변에서만 해도 자동차를 도둑맞은 운전자가 5명에 이른다. 전해 들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20명 가까이 된다. 도난 차량은 대부분 ‘Lexus, RX350’이었다.
절도범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A씨와 B씨는 자기 집 앞에 자동차를 세웠다가 밤사이에 도난을 당했다. C씨는 몬트리올 여행을 갔다가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역시 밤사이에 자동차를 도둑맞았다. D씨는 교회에 갔다가 대낮에 자동차를 잃어버렸고, E씨의 자동차 역시 벌건 대낮에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사라졌다.
자동차 도난과 관련한 웃지 못할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콘도(한국의 아파트)에 사는 F씨는 같은 자동차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 콘도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밤사이에 사라졌는데, 마침 F씨의 차량에는 위치 추적기가 달려 있었다. 도난당한 차가 토론토 외곽의 어느 주차장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F씨는 경찰 및 보험회사 직원과 함께 그곳에 가서 자동차를 찾아왔다. 도둑이 세워놓은 차량을 그다음 범죄자가 가져가기 전에 주인이 두 번씩이나 회수해온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이다.
G씨는 위치 추적기를 통해 도난 차량이 어디에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찾아오지 못했다. G씨는 어느 공공장소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저녁 식사를 하고 왔더니 차가 사라졌다고 했다. 위치 추적기는 자동차가 어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건물 안’이라며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영장 없이는 건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나아가 경찰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G씨가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막았다. 이튿날 아침 G씨의 자동차는 위치 추적기에 잡히지 않았다.
자동차 도적 떼가 활개를 치는데도 경찰이 도둑을 잡는 데 이렇게 미온적이다 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당연히 터져 나온다. “경찰이 도둑을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 같다.” “경찰에 신고하니 보험사에 연락하라고 했다. 경찰이 방조를 넘어 도둑과 짜고 일을 벌이는 것 같다.”
CCTV를 통해 살펴보면 자동차를 훔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초가 채 되지 않는다. 수법도 나날이 진화한다. 3년 전만 해도 집 안에 있는 자동차 스마트키를 연결해 시동을 걸고 훔쳐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자동차 컴퓨터를 해킹해 프로그램을 초기화한 다음, 자기들이 가져온 스마트키로 자동차 시동을 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가 도난 방지를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도둑은 늘 한발 앞서 나간다. 도둑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팬데믹 초기만 해도 쇼핑몰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도둑들이 표적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달고, 야밤에 와서 자동차를 훔쳐가는 식이었다. 요즘 들어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달아놓은 위치 추적기를 역이용해 훔칠 차량을 ‘수배’한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도난 차량으로 인해 작년 한 해 보험업계의 손실이 10억달러를 넘어서자 보험사들은 가입 운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차량 도난 방지 장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내가 가입한 보험사는 ‘운전대 잠금장치’ ‘브레이크 페달 잠금장치’ ‘타이어 잠금장치’ 가운데 하나를 설치하고 확인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년 보험료를 500캐나다달러(약 50만원) 올리겠다고 했다. 도난 고위험군에 속하는 차량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올해 들어서만 두 번 받았다.
운전대나 타이어 잠금장치조차 이제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동 쇠톱을 들고 다니는 도둑들이 잠금장치를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게차를 이용해 차량을 들어올려 트럭에 싣고 가는 경우도 생겨났다고 하니, 핸들이든 타이어든 아무리 잠가도 소용이 없다. 자동차 도적 떼는 점점 더 대담해져서, 최근에는 도로나 주차장에 정차한 차량을 운전자에게서 직접 탈취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자동차 도적 떼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가끔씩 들리기는 하지만, 도난 사건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 특히 도둑들의 표적이 되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둑이 무서워서 공공 장소에 주차하기가 꺼려질 정도이다. 특히 자동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돌아오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교회나 대형 슈퍼마켓의 주차장에서는 신경이 더 곤두설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적어도 4시간 이상 세워놓아야 하는 골프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도둑이 내 뒤를 따라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늘 시달리게 마련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토론토 주택에 딸린 차고(개라지)는 한겨울 자동차 방한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눈이 많이 오고 기온이 급강하하는 한겨울 외에는 자동차를 앞마당에 그냥 두게 마련인데, 요즘은 사시사철 차고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다. 도난을 방지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조직 범죄단이 자동차 절도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토론토와 몬트리올 같은 대도시에서 집중적으로 도둑질이 벌어지는 것은, 차량도 많거니와 몬트리올 항구를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차량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서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캐나다 도난 차량이 대거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그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는 캐나다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들이 도로에서 운행되고 있다. 밀반출된 도난 차량들이다. 가나에서 발견된 차량의 캐나다 소유주는 CBC와 인터뷰하면서 “대낮에 사무실에 앉아서 바깥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가 도난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똑같은 차량을 같은 방식으로 도둑맞았다고 했다.
캐나다 최대 전국지인 ‘글로브 앤드 메일’은 자동차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캐나다 국내외 범죄단이 연계해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자동차 절도는 마약유통, 무기거래, 인신매매 및 국제테러의 자금원으로 이용된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도둑이 단순 절도를 넘어 중범죄와 연결된다고 하는데도 캐나다 경찰이 자동차 도둑과의 전쟁을 벌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끔씩 “범죄 일당 수십명을 검거하고 도난 차량 몇백 대를 압수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는 하지만 자동차 도적 떼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자동차 도난으로 말하자면 지금 캐나다를 두고 ‘이게 나라냐?’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7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등 단행본 6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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