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립현대미술관 주먹구구식 작품 매입… “4억 원으로 깎아라” “그림 네 점 다 사줘라”

김은지 기자 2023. 10. 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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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로 운영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 없이 작품 구입을 결정하고 사들이는 가격 또한 임의로 조정해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수집 규정에 따르면 현대미술관은 작품을 매입할 때 미술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작품가치평가위원회의 소장가치 평가와 가격자문위원회의 가격 자문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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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자문위 의견 어기고 자체 가격 조정
명확한 기준 없이 작품 매입

국비로 운영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 없이 작품 구입을 결정하고 사들이는 가격 또한 임의로 조정해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작품매입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국내 미술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에 있는 현대미술관이 미술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저평가 작품을 5000만 원 더 들여 구입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

20일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실이 입수한 문체부의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문체부 감사반은 지난해 10월부터 감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 감사보고서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가격을 합리적 이유 및 일관된 기준 없이 조정했고 작품수집심의위원회를 부적정하게 운영하는 등 작품 수집의 투명성, 다양성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수집 규정에 따르면 현대미술관은 작품을 매입할 때 미술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작품가치평가위원회의 소장가치 평가와 가격자문위원회의 가격 자문을 거쳐야 한다. 이후 미술관장, 실장 등으로 구성된 작품수집심의위원회에서 작품매입 여부와 가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미술관은 2020~2022년 3년간 구입하기로 결정한 미술품 279점 중 26점(9.3%)의 구입가격을 가치평가위, 가격자문위의 의견을 어기고 임의로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회화작품인 A 작품은 가치평가위에서 50점 만점에 39.6점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자문위가 제안한 가격(1억5000만 원)보다 5000만 원을 올려 2억 원에 구입했다. 반면 조각작품인 B 작품은 50점 만점에 46.3점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자문위 제안가격(1억80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깎아 매입했다.

● “4억 원으로 깎으라” “4점 다 사달라”

작품매입을 결정하는 작품수집심의위 회의록상에도 부적절한 논의가 오간 사실이 확인됐다. 2021년 1차 회의록에 따르면 실무자가 특정 작품에 대해 “(판매자의) 제시가격은 7억 원이고 (가격자문위) 평가가격은 5억 원”이라고 말하자 미술관장이 “4억 원으로 깎으라. (우리가) 전시까지 해 줬는데 4억 원으로 깎아야지”라고 말했다.

한 위원이 “관장님이 한 사람(작가)당 3점 정도 (매입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 작품은 4점 (매입)을 제안했다. 그냥 4점 다 (매입)해 주시면 안 되느냐”라고 청하자 관장이 받아들여 “1인당 4점까지 오케이”라고 말하는 등 명확한 기준 없이 작품매입을 논의하는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문체부는 감사보고서에서 “작품 수집여부와 가격을 합리적인 이유나 일관적 기준 없이 임의로 조정하고 작품수집심의위를 부적정하게 운영하는 일이 없도록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작품수집·관리규정을 개정할 것을 통보했다.

이에 현대미술관은 올해 5월 가치평가위에서 만점 대비 70% 이상의 평가를 받은 작품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가격자문위가 제안한 가격에서 20% 이내로만 가격을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뒤늦게 규정을 고쳤다.

현대미술관은 해마다 소장품 구입을 위해 국가로부터 수십억 원대 예산을 배정받고 거의 전액을 소진한다. 2020년 기준 예산현액은 53억2900만 원이고 이중 53억1300만 원(99.6%)을 집행했다. 2021년에는 예산현액이 48억4600만 원, 집행액은 47억8100만 원(98.6%)이었다.

김 의원은 “현대미술관의 가격책정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기준이 되고, 이는 작가들의 명예와 권리에 직결되는 부분”이라며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고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제도개선과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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