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서도 논쟁”... 美 장기채 금리 오르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상승·재정적자 확대...당분간 상승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로 국제유가 ‘변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 선에 육박하며 전 세계 시장참여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장의 ‘벤치마크’ 금리 격인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달러 강세’, ‘증시 하락’ 등으로 시장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같은 예상치 못한 금융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금융시장 내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美 10년물 국채 금리 5% 육박...인플레이션 상승·장기채 수요 부족
19일(현지 시각)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일 대비 7bp 오른 연 4.99%로 마감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영향으로 장기채 금리가 급등했던 2007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12%로 마감해 5%선을 이미 넘어섰다.
간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상태”라고 말하자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으로 해석돼 미국 장기채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18일 미국의 9월 소매 판매가 전달 대비 0.7% 증가해 전문가 예상치(0.2~0.3%)를 훌쩍 넘은 점도 견고한 경기 상황을 입증했다.
통상 미국 장기채 수익률 상승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 향후 가격 상승 위험 보상에 대한 투자자의 요구 등이 반영된다.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태이며,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세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전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미국 국채 금리가 연 5%대로 가고 있는 게 최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도 가장 큰 논쟁거리였다”며 “금리 인상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나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미 연준의 긴축 장기화 기대가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그간 연준이 ‘고금리 장기화’를 지속해서 언급했지만, 시장은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곧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감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양호한 경제지표 발표가 이어지자 이런 기대감이 꺾였고, 비로소 시장이 ‘긴축 장기화’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도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 정부는 주로 만기가 고정된 중장기 국채를 발행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차입한다. 재정 규모에 비해 세수가 부족해 매년 1조달러가량 재정적자가 발생한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재무부가 미국 장기채를 발행해 전 세계에 판매하는 구조다.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면, 재무부는 국채를 더 많이 발행해야 한다. 비영리 단체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재정지출이 늘면서 미국의 2023 회계연도(2022년 10월∼2023년 9월) 재정적자는 약 2조달러로 지난해 대비 2배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 곳인 피치는 지난 8월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AAA(최고 등급)에서 AA+로 한 단계 내리기도 했다.
이 총재는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치권 합의가 없고, (필요하면) 계속 중장기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며 “이 과정에서 공급은 늘어나는 데 수요가 없으니, 금리가 계속 올라간다는 견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재정적자 문제로 인해 단기채권 보유 대비 장기채권 보유자들이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이 더 높아지면서 장기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고도 부연했다.
◇”현재 미국 10년물 금리, SVB 사태보다 높은 수준”...당분간 상승 전망 우세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지난 3월 SVB 사태가 터진 이유도 SVB가 보유한 미국 장기채에서 촉발됐다. 당시 SVB는 미국 장기채에 자산 대부분을 투자했었다. 초저금리 시대에선 적절한 전략이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실패한 선택이었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장기채 가격이 내려갔고, 평가손실이 커지면서 파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3월 SVB 사태 당시 미국 10년물 금리는 최고 연 4.06%(2일 종가)였다. 현재 금리와 비교하면 1%포인트(p)가량 낮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실장은 “미국 중소은행들의 경우는 SVB와 유사한 형태의 신용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대형은행들도 고정금리 자산 보유에 따른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 기관의 경우, 미국 장기채를 포트폴리오에 제한적으로 담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자들은 이미 타격 구간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초저금리 시대 변동금리를 이용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금리 기조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는 동시에 부채가 늘어나면서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이다. 이어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 레버리지 활용도가 높은 기업도 조달금리가 상승해 자금을 구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국 장기채 금리 하락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발언 공개 후 미국 국채 10년 금리 5% 임박 수준까지 상승했다”며 “공급 증가에 대한 우려가 큰데 금리 하락 재료는 미미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임재윤 KB증권 연구원 역시 “현재 금리 수준을 ‘저가 매수’ 구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며 “11월 FOMC 전까지 경제 지표에 대한 시장 민감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도 주요 변수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국제유가가 더 오르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전가될 수 있어서다. 이는 고금리 장기화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어 미국의 중동지역 전쟁 지원으로 재정적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전쟁 지원 부분은 아주 미미하며, 이로 인해 재정적자가 늘어난다는 건 비약적인 발상”이라면서도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에는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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