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맛보다 소울을 느끼다[주식(酒食)탐구생활㉜]
서울은 미식의 도시인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식의 도시’에 서울이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유의 정서가 물씬한 노포,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과 먹거리 식당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고 글로벌 감성을 충족시키는 세련된 파인 다이닝도 늘고 있는 요즘 서울의 미식, 한국의 식문화에 세계인의 관심이 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광장시장, 익선동 등은 언제 방문하더라도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며 서울 북촌 한식문화공간 내의 전통주 갤러리도 예약 창이 열리기 무섭게 마감된다. 한국 방문의 목적을 ‘음식’에 두고 있는 여행객이 많아졌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이야기다. 한국 음식을 위해 찾아온 그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즐길까.
내실 있는 미식 투어로 입소문 난 서울가스트로투어 강태안 대표가 안내하는 투어를 지난 13일 따라나섰다. 3시간 반 동안 서울 남대문시장과 명동 일대를 돌며 주요 음식 맛을 보는 ‘서울로 7017 테이스팅 투어’. 이 투어 상품은 2017년 서울시가 공모한 관광스타트업 공개 오디션에서 우수상을 받았던 프로그램. 도보로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여러 가지 음식을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구성했기 때문에 미식 투어를 원하는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남대문시장
복작복작 맛집골목, 바싹한 시장 통닭 별미
집결 시간과 장소는 오후 1시 서울역 광장 2번 출구.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스티브와 케이티 부부, 그리고 미식 투어에 관심이 많다는 셰프 문호경씨가 함께했다. 이번이 3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스티브는 “음식 투어가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며 “웹서핑을 통해 이 투어를 발견하고 예약했다”고 말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서울로7017을 걸어 남대문으로 이동했다. 서울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연결되는 곳은 남대문시장 5번 출구. 액세서리 노점상이 늘어선 길을 따라 조금 들어오면 왼편에 보리밥, 칼국수, 냉면을 파는 골목 식당가 입구가 나온다.
들고 나는 사람들, 앉아서 먹는 사람들, 호객하는 상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이곳은 남대문시장의 대표적인 맛집 골목이다. “정신없고 혼란스러움 그 자체지만 이 골목은 그걸 즐기는 곳”이라는 강 대표의 설명에 이들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앉자마자 탁자 위에는 냉면과 칼국수, 보리밥이 조금씩 뚝딱 차려졌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후루룩 맛을 본 뒤 수입식품이 밀집해 있는 지하상가, 과일·생선 상가, 분식 골목을 차례로 둘러봤다.
분식 골목에서 어묵을 하나씩 맛본 뒤 꼬리곰탕으로 유명한 은호식당, 갈치골목을 거쳐 향한 곳은 ‘시장표 통닭’과 맥주를 파는 한국통닭. 일행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작은 통닭 2마리와 500㏄ 맥주를 4잔 시켰다.
통닭 한 마리에 6000원이다. 바싹하게 튀겨져 나온 통닭은 세심하게 염지가 잘 되어 있었고 뒷맛이 매콤하게 마무리되면서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맥주를 무한정 부르는 맛이지만 1인당 1잔까지.
#명동
한국식 짜장면·짬뽕·탕수육, 달콤한 디저트까지
남대문시장 끝자락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품관으로 들어섰다. 식품관 한쪽에는 마침 가을의 전령사인 송이버섯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우 꽃등심보다 더 비싼 송이버섯에 여행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들이 특히 관심을 보인 것은 냉동만두와 레토르트 식품 코너. 해산물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케이티는 “한국에 와서 먹어본 것 중 특히 만두가 맛있었다”면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여러 종류의 만두를 살펴봤다. 식품 코너를 둘러보고 잠시 휴식을 한 뒤 길을 건너 중국대사관이 보이는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에서 맛볼 메뉴는 한국화된 중국 음식의 대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이다. 명동 초입의 ‘개화’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쟁반짜장과 짬뽕, 탕수육이 나왔다. 감칠맛 나는 짜장면, 매콤한 짬뽕 국물, 새콤달콤한 탕수육은 언제라도 거부할 수 없는 완벽한 조합 아닌가. 이것저것 조금씩 먹었지만 3시간 가까이 걸었기 때문인지 보는 순간 다들 시장기가 몰려왔다. 15분 만에 ‘클리어’. 식당을 나와 명동 치킨 골목으로 향했다. 건물 전체가 각종 치킨 프랜차이즈가 빽빽이 들어선 ‘치킨 타운’이다. 야외에까지 펼쳐져 있는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외국인 여행객으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명동성당 지하의 젤라토 가게. 시간은 4시30분을 향하고 있었다. 달콤한 젤라토를 맛보며 테이스팅 투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스티브, 케이티 부부는 “함께하지 않았다면 못해 볼 흥미로운 경험이었고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면서 “오늘 저녁에는 설명을 들었으나 맛보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어가며 찬찬히 먹어보겠다”고 말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호텔경영과 요리를 공부한 문호경 셰프는 “미식 투어에 관심을 갖는 외국 여행자들의 수요가 확실히 늘어났는데 전문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직은 많지 않다”면서 “유익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홍대입구
돌 위에 지글지글 삼겹살 ‘맛의 하이라이트’
스티브 일행과 헤어진 강 대표는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일명 홍대나이트 야식 투어. 연남동에서 커피를 마신 뒤 고깃집이 밀집한 지역에서 한국식 바비큐로 저녁을 먹고 전통주 시음, 팥빙수로 마무리하는 코스다. 오후 5시30분 홍대입구역에서 미국 콜로라도에서 온 롭과 리사 부부를 만났다. 부산, 전주를 여행하며 해산물과 비빔밥을 종류별로 맛봤다는 이들 역시 한국 미식투어가 이번 여행의 콘셉트였다. 이날 낮 서울 광장시장에 들러 빈대떡을 맛봤다는 이들은 “가장 먹고 싶었던 한국식 바비큐는 여행 내내 아껴뒀다 마지막 만찬으로 먹게 됐다”면서 “내일이면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떠난다”고 했다.
‘연트럴 파크’ 인근에서 커피를 마신 뒤 미로같이 복잡한 골목길을 걸었다. 아기자기한 디저트가게와 식당, 소품가게, 타로카페가 번갈아 이어졌고 ‘불금’답게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인파를 헤치고 도착한 곳은 수정옥돌생소금구이. 15분 정도 기다리자 자리가 났다. 뜨겁게 달궈진 조약돌 위에 고기를 얹어 구워 먹는 불판이 독특했다. 소금구이와 삼겹살, 항정살을 시켰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탄성, 눈앞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의 향에 이성의 끈을 잡고 있기란 쉽지 않은 노릇.
리사는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몇 차례 입맛을 다셨다. 상추에 고기를 놓고 쌈장과 마늘을 얹어 먹는 고기쌈밥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푸짐한 만찬 뒤 한국술보틀숍에서 전통주 시음, 인근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이들은 서울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미식여행
북촌, 전통주...테마별 투어 외국인에 ‘인기 만점’
호텔 홍보담당자, 레스토랑 컨설턴트, 우송대 조리학과 교수 등을 지낸 강 대표는 미식투어라는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던 2014년 서울가스트로투어를 창립해 미식투어를 국내에 정착시켜왔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인기 상품은 ‘서울로 7017 테이스팅 투어’와 함께 ‘서울 북촌 전통 미식투어’ ‘전통주 투어’다. 3시간에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도보 투어로, 1인당 10만~13만원 정도로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강 대표의 꼼꼼한 설명과 세심한 소통, 다양한 음식 맛보기 덕분에 만족도가 높다. 투어당 적게는 2명, 많게는 20명까지 참여한다. 여행객의 90%가 미국인이며 독일, 호주, 싱가포르에서도 많이 찾는다. 해외 고객 접대를 원하는 기업에서 요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내 미식여행을 원하는 외국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글로벌 예약플랫폼인 ‘바이에이터(Viator)’ ‘클룩(Klook)’ 등이다. 예를 들어 바이에이터에 접속한 뒤 목적지를 ‘서울’로 입력하면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나열된다. 화면 상단의 ‘액티비티’ 항목에서 ‘푸드&드링크’를 선택한 뒤 세부 주제를 클릭하면 시장 투어, 펍 투어, 길거리 음식 투어 등 연관된 투어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클룩 역시 첫 화면에서 ‘서울 푸드’ 정도만 입력해도 미식 투어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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