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동맹, 위대한 동행’…한미동맹 70년 오롯이 담은 전시 관람기
동맹은 위기의 순간, 진면목을 발휘한다. 숱한 위기가 봉착했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미국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동맹국으로서 여러 자취를 남겼다.
군사 분야를 비롯해 이제 경제·외교·문화·우주·보건·기후변화 등 다방면으로 협력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한미동맹. 예측불허했던 동맹이 위대한 동행으로 거듭나기까지, 70년이란 역사의 시간 속 이어지는 양국의 협력 관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1일부터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함께 한미 양국 교류의 성과와 결실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특별전 ‘동행’을 선보이고 있다.
특별전 ‘동행’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배경, 실제 체결까지의 사건 등 지난한 과정을 비롯해 조약 체결 후 이어지는 미국의 원조, 지금까지 계속되는 한미 간의 협력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함영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를 만나 특별전 ‘동행’을 통해 한미 양국이 함께 걸어온 시간 속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 한미동맹의 슬로건이 된 이 문장에서 동맹 70주년을 맞이한 한미 양국 간의 강력한 연대를 발견한다. 함 학예사는 이 문장에서 연계해 이번 특별전의 제목을 ‘동행’이라 정했다고 밝혔다.
함 학예사는 “지난 70년은 양국이 ‘친구’처럼 같이 걸어온 시간”이라며 “마냥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던 한미동맹을 표현하기 위해 전시 공간 내에 여러 장애물을 설치해 연출했고, 이 공간 자체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오마주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시장 내 곳곳에는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과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여러 장면들이 일러스트로 표현돼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묵직한 주제이지만 관람객들이 보다 재미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다.
함 학예사는 또 “여타 한미동맹 관련 전시가 건조한 사실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그 사실을 축으로 했을 때 양국이 어떤 길을 같이 걸어왔는지에 대해 시각,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알아갈 수 있도록 했다”고 이번 특별전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전시장의 초입에 들어서면 커다란 데니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데니 태극기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가 1890년 5월 미국으로 귀국 시 가져갔던 것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다. 손으로 직접 한땀한땀 수를 놓은 데니 태극기는 오른쪽 상단 부문 기를 달 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어 실제 사용됐던 태극기로 추정된다.
데니 태극기와 나란히 전시돼 있는 주한미군의 성조기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주한미군 부대 밖에서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주한미군이 유엔군사령부 의장대에서 기념식, 장례식과 같은 여러 행사에서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성조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조금 기울어진 형태와 덧대어진 자국이 남아있다.
함 학예사는 “이 성조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오게 된 것으로, 그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라 생각해 이번 특별전에 전시하게 됐다”며 “전시가 끝나면 이 성조기는 주한미군 측에서 소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함 학예사는 성조기 대여를 위해 평택 미군기지와 기지 내 주한미군 2사단 박물관을 다녀온 후기도 전했다. “미군기지 출입을 위해 거쳤던 복잡했던 절차들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한참 전시준비를 하는 시점이 을지훈련과 겹쳐 주한미군 공보과와 연락이 쉽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급한 일정에도 적극 도와주셔서 성조기 대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왔다. 3·1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일제강점기 당시 OSS 특수부대의 활동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미국의 흔적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번 특별전의 프롤로그에서 이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배경을 설명하는 공간에서는 집단 안보 체제로 거듭나는 한미 간 협력 관계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함 학예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결국 집단 안보 체제”라며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국제연합(이하 유엔, UN)이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유엔은 6·25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첫 군사 행동을 펼쳤다. 전쟁 당시 한반도로 차출된 유엔군 약 194만 5484명 가운데 미군이 178만여 명을 차지했다. 6·25전쟁에 가장 많이 참전한 나라로 미국이 꼽히는 이유다.
전시장 내에는 뉴욕타임즈, 경향신문에서 발행한 당시 기사를 진열해 놓으며 6·25전쟁의 발발과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언급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북한의 남침을 첫 라디오 보도방송한 위진록 전 서울중앙방송 아나운서의 재연 음성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어 보다 생동감 있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내부 곳곳에는 실제 미군 참전의 흔적을 일러스트로, 여러 각도에서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렌티큘러 기법을 활용해 미국이 입양한 전쟁 고아들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난 모습을 연출하는 등 흥미로운 전시 기법으로 전쟁 속에서도 피어난 한미 양국 간의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함 학예사는 이번 전시가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에 대해 “사실 무척 재미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좀 더 담담하게 사실관계 위주로 풀어보며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정전협정이 이뤄지기까지의 한미 간 주고 받은 외교 서신, 또 이 과정에서 빚어진 한미 양국 간의 갈등까지도 여러 사료들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서명 당시 사용됐던 책상은 곳곳 사용감과 지난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책상은 미국 측 대표인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어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직접 확인하고 읽어볼 수 있는 복제본이 전시돼 있다. 조약이 체결되는 현장 당시를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각료들, 미국 관계자들 사이의 긴장감도 엿볼 수 있다.
함 학예사는 “조약 체결 이후의 과정에서 결국 양국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우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미국의 무기 체계가 곧 한국으로 이전되는 군사 원조가 이뤄졌다.
함 학예사는 이에 대해 “동맹국은 같은 무기 체계 아래 군사작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조약 체결 이후 한국은 미국의 무기 체계를 따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과거 많은 한국의 초급장교들은 미국 오클라호마주 포트실 포병학교를 찾아 연수를 받아 한국군의 무기 체계 토대를 세워나갔다.
아울러 교육, 의료 등 여러 분야의 미국 원조가 이뤄진 역사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현미경, 주사기, 공책 등 소소한 일상 용품 하나하나가 모두 미국의 원조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눈에 띄는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이러한 분위기 속 이뤄진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교육 원조로, 당시 오간 총장 서한과 연수 서신들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는 ‘브라운 각서’ 원본이 전시 개막일부터 3주간 일반 대중에 처음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군 월남 증파에 따른 미국에 대한 협조에 관한 주한미군대사 공한’이라는 정식 명칭의 브라운 각서는 총 16개 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66년 3월 7일 브라운 주한미군대사가 한국 정부에 전달해 일명 ‘브라운 각서’라고 불리게 됐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실제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국가 중 비중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에 이익이 됐을뿐 아니라 한미 군사관계를 상호보완적 동맹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70년의 시간을 함께 걸어온 한미동맹은 오늘날 군사동맹에 이어 문화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화동맹으로 진화하게 된 시발점으로 함 학예사는 전시의 말미에 소개되고 있는 한국 국보전을 꼽았다.
함 학예사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2년간 미국 8개 도시를 순회했던 한국 국보전이 문화동맹으로 진화하게 된 시초로 보고 있다”며 “반가사유상, 신라 금관 등의 전시물들이 미국 전역에 소개되면서 한국이 전쟁을 겪었지만 단순히 전쟁의 피해를 입은 나라가 아닌, 문화적으로 저력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국보전은 한국이 단순히 미국에게 도움만 받는 국가가 아닌, 문화적으로 교류하며 좋은 영향을 주는 동행자로서의 존재를 부각한 계기였다고 이번 특별전에서 소개되고 있다. 당시 전시했던 유물과 관련된 자료와 보고서, 영상 등을 통해 한미 문화동맹의 초창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 문화, 경제 등 다방면에서 다른 두 나라임에도 한미 양국은 예측불허했던 동맹을 전 세계 가장 ‘성공한 동맹’으로 구축했다.
군사동맹에서 글로벌 포괄적 동맹 관계로 변모해온 한미동맹. 이번 특별전 ‘동행’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걸어온 70년의 시간을 통해 다시금 강해진 한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격동의 역사 속 더욱 굳건해진 한미동맹이 걸어온 시간을 특별전 ‘동행’에서 살펴보며 이 시대 존재하고 있는 우리들이 앞으로 함께 그려나갈 동맹의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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