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핵심들 모아놓고 ‘김한길 띄우기’ 나선 윤 대통령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폭풍이 여권을 뒤흔들고 있다. 예상보다 큰 격차의 패배는 여의도(국민의힘)를 넘어 용산(대통령실)도 집어삼킬 기세다. 어떤 공세에도 꿈쩍하지 않던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과 사과의 메시지를 냈고, 민생과 경제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김기현 지도부는 살아남았지만, 당직자 전원 교체라는 인적 쇄신은 피하지 못했다. 김기현 대표는 연말까지 지지율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조기 선대위와 비대위 등으로 일찍 자리를 내놔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성" "민생"…태도 확 바뀐 尹 대통령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 출마와 맞물린 자연스러운 인물 교체를 통해 분위기를 쇄신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의대 정원 확대 등 민생 이슈를 국정의 전면에 내세워 정국의 반전을 꾀할 전망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승부수였던 '이념 전쟁'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만큼 앞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와 함께 의대 정원 확대 같은 개혁적 이슈를 대거 부각시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독선적 국정 운영 등 보선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윤 대통령은 최근 연달아 여권의 핵심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10월17일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와의 만찬 자리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는 김한길 위원장과 통합위원뿐 아니라 새 당직자들이 포함된 국민의힘 지도부, 여당 국회 상임위원장 및 간사, 주요 부처 장관, 대통령실 수석 등까지 그야말로 당·정·대 핵심 관계자들이 총집합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통합위 활동에 대해 치하하며 "이것들이 얼마나 정책 집행으로 이어졌는지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고 말해 주목됐다.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에도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새롭게 임명된 이만희 사무총장과 유의동 정책위의장 등 국민의힘 당 4역과 오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선 여당이 민생을 더 챙겨줄 것을 당부하며 당정 간 소통을 더 긴밀히 해야 한다는 점에도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또 최근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전해지고 있는 메시지와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이념을 강조하고 지나간 일에 집중하며 직진했던 태도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성'과 '변명' 등의 단어를 메시지에 포함시키고 성찰의 태도를 보이며 몸을 낮췄는데, 윤 대통령은 보선 이후 대통령실 수석들에게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 드라이브에 주력할 전망이다. 최근의 의대 정원 대폭 확대 추진도 그 일환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이르면 다음 주부터 대통령실 인적 개편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내 총선 출마 희망자들을 일부씩 불러 식사를 이미 했거나 추후에 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2기 인사가 본격화할 신호로도 풀이된다. 이미 대통령실 비서관·행정관 중 총선 출마 희망자들의 사직이 일부 이뤄졌고, 앞으로도 순차적으로 더 있을 예정이다.
특히 이르면 다음 주에 공석이 된 비서관급 등에서 새 인선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급은 내달 국정감사가 종료된 이후 교체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쇄신용 이벤트성 인사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윤 대통령이지만, 총선을 위한 인사 개편으로 자연스럽게 대통령실 분위기 쇄신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내각에서도 이르면 11~12월,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총선용 인사 교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 참패로 김기현 대표 교체설까지 나왔던 여당은 당장은 김 대표를 재신임했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김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너무 수직적으로 가져왔다' '김 대표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다. 김 대표 체제는 유지하되 대부분 친윤(親윤석열) 인사들로 구성됐던 임명직 당직자들이 일괄 사퇴했고, 곧장 새 인선이 이뤄졌다.
그러나 새 인선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김성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 조수진 최고위원에게 새 인선 안과 관련해 부정적 견해를 낸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어 이만희 사무총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성원 여의도연구원장, 김예지 최고위원, 박정하 수석대변인, 윤희석 선임대변인, 함경우 조직부총장 등이 새롭게 임명됐는데, 전에 비해선 친윤 색채가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친윤 인사가 적지 않다는 평이 나왔다. 또 이 사무총장 임명으로 당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까지 영남권 인사들로 구성된 모양새가 된 것도 논란을 불렀다. 김성원 원장은 지난해 8월 수해 복구 봉사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발언해 구설에 올랐던 인물이기도 했다.
인사와 관련해 반응이 좋지 않자 국민의힘은 혁신기구 구성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신속하게 혁신위원장을 구해 혁신위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당내에선 여전히 의심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다선 의원은 "2기 인선도 서두르다가 내용이 이상해졌다는 평가가 많은데, 혁신위도 제대로 구성이 안 되면 수습이 불가하다"며 "솔직히 지금 누굴 데려와도 분위기를 바꾸는 건 상당히 어려운데 쇄신 방안들이 식상한 측면이 많아 더 우려된다"는 견해를 냈다. 다만 당 지도부는 혁신위를 출범시키고 대통령실과 마찬가지로 경제와 민생, 개혁에 방점을 찍고 차근차근 간다면 분위기 반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김기현 지도부의 쇄신 방식 식상해"
여전히 김기현 체제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여권 내에선 다른 인물의 역할론에 불이 붙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윤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하고, 스스럼없이 여러 조언을 할 정도로 신뢰 관계가 있는 김한길 위원장이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진보진영 출신의 원로 정치인인 김 위원장은 중도 외연 확장성, 선거 감각 등을 두루 갖춘 인사로 평가된다. 만일 혁신위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등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여권의 핵심들이 총출동한 국민통합위 만찬은 김 위원장의 존재감이 더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국민통합위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자리에 장관과 여당 지도부 등 핵심 인사들까지 불려나온 것은 예사롭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한 여당 관계자는 "현장에선 사실상 김 위원장을 위한 자리였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띄워주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여당 관계자들 앞에서 그가 총선을 앞두고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강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본다"며 "'반성'이라는 대통령의 워딩도 통합위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정책화 등 추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언급된 것이었는데, 정부·여당을 향해 앞으로 통합위의 방향성을 참고해 정책 방향을 수정하라고 주문하는 것으로 들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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