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로 바꿨더니 벌어진 일
대형마트-소상공인 11년 논쟁➊
주말 의무휴업 무용론 분석
의무휴업 평일로 바꿨더니…
대구시 “상권 살았다” 홍보
의무휴업 무용론에 힘 실려
서울시로 번지는 평일 전환
의무휴업 정말 성과 없었나
# 올해로 시행 11년차를 맞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오랜 시간만큼 소비자는 제도에 적응하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전에 미리 장을 보거나, 동네슈퍼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이 제도는 끊임없이 논란에 시달려 왔다. 이해당사자인 대기업 유통업체와 소상공인의 생각이 너무나 다른 게 나쁜 영향을 미쳤다. 대기업 유통업체는 의무휴업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반면 소상공인들은 '울타리'로 여겼다.
#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가 뜨거운 이슈에 불을 붙였다. 지난 2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꾼 대구시는 6개월의 성과를 발표했다. "대구시가 옳았다! 지역상권, 시민 모두 대만족."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이후 대구시 소매점·음식점 등의 매출액이 인근 지역인 부산·경남·경북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거다.
#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대구시 시민단체가 내놓은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구시의 소매판매액지수는 올해 1·2분기 내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대입하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꾼 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셈이 된다. 대체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걸까.
'월 2회 의무휴업'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 현재 대형마트가 받고 있는 법적 규제다. 이른바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시행한 건 2012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1993년 국내 첫 대형마트(이마트 창동점)가 등장한 이후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무한 확장 전략을 펼쳐왔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을 앞세운 대형마트부터 실핏줄 같은 골목상권을 파고든 기업형 슈퍼마켓(SSM)까지 전국 곳곳에 세웠다.
이들의 공세에 직격탄을 맞은 건 동네슈퍼·전통시장 소상공인이었다. 설 자리가 좁아진 소상공인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연중무휴·24시간 영업 탓에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휴일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도 또다른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제12조의2)'을 개정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끊임없이 실효성 논란에 시달렸다. 발원지는 당연히 대기업 유통업체들이었다. 이들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골목상권을 살리는 효과는 미미하고, 대형마트의 영업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다. 2018년엔 이마트·롯데쇼핑·홈플러스 등 7개 유통회사가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자본을 지닌 소수 대기업이 유통시장을 독과점해 거래질서를 왜곡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판단에도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수긍하지 않았다.
최근 수년간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가 급성장하자 이번엔 "오프라인 유통업체만 규제하는 역차별적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골목상권을 지킬 최후의 보루이자,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존폐 기로에 선 제도 = 지난 11년간 팽팽한 평행선을 달려온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존폐 기로에 올라선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운 윤 정부는 규제 개혁 과제 중 하나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선택했다.
그 첫번째 시도가 지난해 6월 열린 '국민제안' 사이트였다. 대통령실은 "국민들의 제안을 국정에 반영하겠다"면서 국민제안 사이트를 개설했다. 국민들로부터 받은 제안 10가지를 추려 그중 3가지를 정책에 반영하는 게 골자였다. 당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폐지 수순을 밟을 예정이었지만 '투표 조작' 논란이 일면서 유야무야됐다.
정부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달 후인 8월엔 국무조정실이 '규제심판제도' 첫 안건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들고 나왔다. '규제심판부(과제별 참여위원 5명)'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규제 개선 필요성을 판단해 소관부처에 권고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법적 제도의 존폐를 참여위원 5명이 단기간 내에 결정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논란 속에서 열린 제1차 규제심판회의에선 온라인 토론회가 함께 열렸다.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토론회에선 '의무휴업 폐지'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전체 3073명의 참여자 중 87.5%가 반대표를 던졌다. 의무휴업 폐지 동력을 잃어버린 탓인지, 정부는 예정됐던 2차 규제심판 회의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정부 주도로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가 출범했다. 지난해 10월 돛을 올린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는 국무조정실·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의 주도하에 대기업 유통업체 측 '한국체인스토어협회'와 소상공인 측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참여했다.
협회가 출범한 지 2달여 만인 지난해 12월엔 '대·중소유통 상생 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주요 내용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영업제한 시간에도 온라인 배송 허용하도록 공동 노력, 의무휴업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강화였다. 상생협약이지만 정작 주요 내용엔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셈이다.
■ 평일 전환 확대 = 공교롭게도 대형 유통업체 측과 소상공인 측이 협약을 체결한 후에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지자체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포문을 열어젖힌 건 대구시였다. 지난 2월 대구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기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했다. 5월에는 충북 청주시가 일요일이던 의무휴업일을 수요일로 바꿨다.
최근엔 서울시에서도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 자치구 2곳에서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평일 전환이 진척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들은 앞서 정부가 제도 폐지를 추진했던 만큼,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의 확산이 결국 의무휴업일 폐지로 가는 발판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6일 국감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가 지난 9월 발표한 '의무휴업 평일 전환 6개월 효과 분석'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대구시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지난 2월 이후 소매업종·음식점 등의 매출액이 다른 지역 대비 증가했다"면서 "제도 변경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숱한 매체가 기사를 쏟아냈다. "의무휴업일 바꾸니 지역경제 살았다" "대구시 지역상권 훈풍" "평일 의무휴업, 모두가 만족"…. 하지만 대구시의 분석을 신뢰하지 않는 쪽도 있다. "지역 내 소상공인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결과"라는 거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 제도 무용론 = 대구시가 발표한 '6개월의 성과'가 이목을 끈 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무용론'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라서다.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주장처럼 대형마트가 주말에 영업을 해도 주변 상권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없었고, 오히려 긍정적 효과가 컸다는 거다.
대구시는 한국유통학회(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팀)의 '대구시 의무휴업일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올해 2월 12일부터 7월 31일까지 신용카드사 카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대구 시내 '슈퍼마켓'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했다.
이는 의무휴업일을 일요일로 유지하고 있는 인근 타 지역과 비교해도 높은 증가율이었다. 같은 기간 부산·경북·경남의 슈퍼마켓 매출액 증가율(이하 전년 동기 대비)은 각각 4.2%, 3.6%, 3.0%에 그쳤기 때문이다.
'음식점' 매출액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시내 음식점 매출액은 의무휴업일 전환 후 전년 동기 대비 25.1%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부산의 음식점 매출액 증가율 22.4%, 경북 15.4%, 경남 12.9%보다 높은 수준이다.
무용론에 불을 붙인 데이터는 또 있다. 지난 9월 서울신용보증재단이 발표한 '대·중소유통 상생협력을 위한 컨설팅 연구보고서'다. 2019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서울 시내 대형마트 인근 상권을 조사한 결과인데,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대형마트가 의무휴업하는 일요일엔 인근 상권의 유동인구가 평균 0.9%(대형마트 영업 일요일 대비) 감소했다. 생활밀접업종(외식업·서비스업·소매업)의 매출액도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 대비 1.7% 줄었다.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해도, 인근 상권으로 소비 이전이 일어나지 않고 되레 유동인구가 줄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는 모두 맞는 말일까. 소상공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무용론의 반박'은 2편에서 이어가겠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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