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우리가 미처 몰랐던 '베컴'의 모든 것

2023. 10. 2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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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컴'(BECKHAM)은 양봉 의상을 입은 베컴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야외에서 정성스레 꿀을 채집해 카메라 감독에게 "맛 좀 보겠냐"며 건넨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스타의 다큐멘터리로는 어딘가 어색한 오프닝이다.

그라운드 밖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의 하루로 문을 여는 '베컴'은 이내 그라운드에 켜켜이 새겨진 데이비드 베컴의 역사를 하나하나 조명한다.

'베컴'이라는 심플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이름은 하나의 고유명사다. '오른발의 달인'이자 '킥의 마술사'였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였던 베컴의 이야기가 4화에 걸쳐 펼쳐진다.

유스팀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일원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고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기까지의 성장담 그리고 축구 인생 최대 위기였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퇴장 사건,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슈퍼스타 빅토리아와의 연애와 결혼,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외도 의혹, 미국에서의 축구 인생 등을 집약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가까운 이 다큐멘터리가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장점은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베컴의 인생을 본인의 회고를 통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다큐를 만든 사람들이 대중에게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당신은 데이비드 베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

'베컴'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한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과소평가되었다

다큐멘터리는 기록과 시선의 예술이다. 주제에 걸맞은 자료와 기록,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이나 인물을 조명한다. 가장 중요한 토대는 주제를 보강하는 기록일 것이다. 사실이자 진실의 바탕이 될 기록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평가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아카이빙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만든 이의 시선이다. '어떤 사건 혹은 이 인물을 왜 다루려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면 만든 이의 관점이 중요하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가이드인 감독의 눈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최소한의 주관은 피할 수 없지만, 최대한의 객관이 담보되어야 좋은 다큐멘터리가 완성될 수 있다.

인물 다큐는 종종 개인의 영웅화, 우상화에 그치는 우를 범한다. 인물의 동의와 협조 아래 장기간 관찰하다 보면 그 인물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 두기와 명확한 관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베컴'은 몇 점짜리 다큐일까.

이 다큐멘터리는 선수로의 베컴과 가장으로서의 베컴, 사업가로서의 베컴을 다각도로 비춘다. 4부작 리미티드 시리즈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인 탓에 각각의 역할에 대한 조명이 균형 있게 이뤄졌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데이비드 베컴의 인생을 파노라마화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베컴은 잘생긴 외모로 데뷔 때부터 주목받았지만, 축구 실력이 과소 평가된 면도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트레블의 주역,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유럽 3대 리그(영국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프랑스 리그1) 우승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대에 지단이 있었고, 피구가 있었다. 또한 베컴에겐 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발롱도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하드워커'였고, 킥 하나로 조국을 월드컵에 진출시킨 드라마도 쓸 수 있는 '스타'였다.

대중들은 축구를 전혀 몰라도 베컴은 안다. 축구선수 이상의 스타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이 다큐멘터리는 약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을 베컴의 '인생 경기'로 채우고, 그 극적인 순간을 본인과 주변인을 통해 생생하게 복기한다.

베컴의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친과 은사인 알렉스 퍼거슨 (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베컴은 천재가 아닌 노력형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베컴의 커리어는 수많은 연습과 노력에 의해 완성됐다.

김연아, 손흥민 등 우리가 천재라 일컬었던 유명 스포츠 선수들 뒤에는 혹독한 부모가 있었다. 베컴 역시 자신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뤄내고 싶었던 엄격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의 정교한 킥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에 따른 결과였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는 투지는 퍼거슨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 시절부터 베컴을 눈여겨봤고, 베컴은 은사의 기대에 보답하듯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으로 성장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베컴의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한 샷이 유독 많다. 트레블을 달성한 1999년 유러피안컵 결승 바이에른 뮌헨전이나 잉글랜드를 프리킥 하나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2002년 유럽 예선 그리스전, 2003년 레알 마드리드 데뷔전 영상을 보여줄 때 경기 장면과 베컴의 얼굴을 교차시킨다.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 복기하는 극적인 효과 (맨체스터의 또 다른 보물인 오아시스의 '슈퍼소닉'(Supersonic)이 흐르는 OST까지!)다. 데이비드 베컴의 역사를 만든 결정적 순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유 월 네버 워크 얼론"... 맨유가, 퍼거슨이 베컴을 지켜낸 방식


베컴은 축구선수이자 셀러브리티였던 인물답게 많은 이야기가 오픈돼 있다. 본인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슈퍼스타였던 탓에 사생활은 불필요할 정도로 파헤쳐졌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베컴이 인생 최고의 암흑기를 돌파한 과정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만다. 베컴이 상대 팀 미드필더 시메오네의 거친 플레이에 욱해 발차기를 했고, 심판은 레드카드를 들었다. 이 퇴장으로 인해 잉글랜드는 70여 분을 10명으로 버텼으며, 승부차기 끝에 8강행이 좌절됐다. 모든 화살은 불필요한 플레이로 퇴장을 자초한 베컴에게 돌아갔다.


자국에서 최고의 스타로 각광받던 베컴은 하루아침에 조국의 수치가 된다. 잉글랜드에서 축구란 '그깟 공차기'가 아니었다. 8강을 넘어 우승까지 노렸던 잉글랜드는 하필 정치적으로 앙숙관계였던 아르헨티나에게 덜미를 잡혔다. 국민의 분노는 치솟았다. 베컴은 당시를 회상하며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고국에 돌아온 베컴은 언론과 대중의 뭇매를 맞으며 지옥 같은 1년을 보내야 했다. 어딜 가든 손가락질과 욕설을 받았다. 국가대표 동료이자 맨유 동료였던 리오 퍼디난드는 "당시 사람들은 (선수의) 정신 건강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이라면 그것부터 걱정했을 것"이라고 당시 베컴이 받았을 정신적 고통을 증언했다.

스포츠 격언 중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베컴이 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벗어난 것도 자신보다 위대한, 자신을 품어줄 줄 알았던 팀과 동료가 있기에 가능했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퍼거슨은 베컴을 위한 '섬'을 만들었다. 언론의 카메라와 대중의 눈총으로부터 베컴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보호막을 친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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