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05) 증류주 주세, 종량세로 바뀜에 따라 주류업계 논의 활발

박순욱 선임기자 2023. 10. 2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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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종가세는 72% 고세율, 종량세 전환되면 주세 4분의 1까지 떨어져
세금 인하는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질 듯…전통주 고급화에도 큰 도움
‘원료의 국적’ 언급없는 개정안 신설조항은 문제…지역특산주 사문화 우려
증류주협회 “세금감면 혜택 가이드 3000KL는 과하다” 의견서 내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에 종량세를 도입하는 주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됨에 따라 관련 주류업계도 세제개편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 논의가 한창이다. 세금 부담이 대폭 줄어드는 종량세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이번 주세 개정이 ‘대기업형’ 증류주 생산업체 제품 판매에 날개를 달아줘, 영세한 증류주 양조장들은 오히려 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또한 위스키 같은 외국 증류주 역시 똑같이 세금인하 요인이 생겨, 증류주 시장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규모가 작은 증류주 양조장들은 가격경쟁보다는 품질 차별화를 통한 프리미엄 증류주 개발에 더욱 노력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무조건 환영이다. 국산 증류주, 외국산 위스키 모두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당초 우려됐던 희석식소주 가격 인상 문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정 법률안이 종량세를 채택하되,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율을 차등화해, 도수가 낮은 증류주, 가령 16도 안팎의 대중적 소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 같은 대기업 주류업체들도 즉각 반대 성명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주세법 개정으로 제품 가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장에 어떤 파장이 있을지 등 시뮬레이션 작업 진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안동에는 안동소주란 이름을 쓰는 양조장이 8곳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일품 안동소주, 로얄 안동소주(법인 명은 유토피아), 안동 진맥소주(법인 명은 밀과노닐다), 민속주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올소 안동소주(법인 명은 버버리찰떡), 느낌 안동소주(법인 명은 명품안동소주), 명인 안동소주. 이들 8개 양조장 외에 안동 농암종택 종부가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일엽편주(탁주, 약주, 소주) 브랜드로 술을 빚고 있어 총 9개 양조장이 안동소주를 빚고 있다. /밀과노닐다

또,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신설 조항(8조 4항)이 우리 농산물 소비촉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증류주협회(협회장,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는 20일 의견서를 내고 “종량세를 실시하되, 지역농산물 촉진을 위한 지역특산주 면허 취지는 살리는 방안으로 법률안을 일부 수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13일 종량세 도입을 골자로 하는 ‘주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 주세법에는 증류주류의 경우, 주류가격(출고가격)의 72%를 주세로 부과하고 있다(종가세). 제품원가에 육박하는 이같은 고세율 주세(72%)는 고스란히 제품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어,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희석식소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증류주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판매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개정 주세법은 증류주 과세표준을 가격이 아닌 주류 수량으로 변경, 생산업체의 세부담을 크게 완화하기로 했다. 현행 종가세 적용은 증류주 제조업체의 세부담을 높여, 신제품 개발 및 품질 고급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여기에다, 중소기업이 제조한 주류는 세율의 절반을 경감까지 해주겠다는 내용이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럴 경우, 증류주의 세금 부담이 기존보다 4분의 1까지 줄어들게 된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가령, 이전에 1000원 내던 세금이 250원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이번 증류주 종량세 전환은 첫째,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갈 전망이다.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 가격 인하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종량제가 시행되면, 증류주는 적어도 가격이 20~30%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통주 업계 전체로서도 제품 고급화를 위한 발판이 마련돼, 국내 주류산업의 경쟁력 역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량세 전환이 모든 증류주 양조장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세 증류주 양조장들은 “종량세가 적용될 경우, 대기업형 양조장들이 세금부담 인하를 무기삼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경우, 승자독식 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증류주협회를 비롯한 상당수 증류주 양조장들이 특히 문제삼는 부분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된 신설 조항 ‘제8조 제4항’이다. 골자는 ‘중소기업 주류 제조자가 직접 제조한 주류는 3000KL(키로리터) 이하에 한해 종량세 세율을 50% 감면한다’는 것이다. 현행 주세법은 무형문화재, 식품명인이 만드는 민속주와 지역농산물을 사용하는 지역특산주에 한해 세율을 50% 깎아주고 있다. 그런데 원료의 국적이 언급되지 않은 개정안 8조4항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지역농산물은 물론,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세금 50%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외국산 농산물 혹은 아예 주정(증류원액)을 들여와 술을 만들더라도, 세율 감면 혜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의 지역특산주 제조업체인 화양(풍정사계) 이한상 대표는 “이럴 경우, 지역농산물 사용을 조건으로 세금감면, 인터넷 판매허용 혜택을 받는 지역특산주 제도 자체가 앞으로 유명무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류주협회 이종기 회장이 오크통에서 일년 동안 숙성한 '고운달 오크'를 들어보이고 있다. 고운달은 오미자로 만든 증류주로 500ml 한병에 36만원이다. /박순욱 기자

이뿐 아니다. 8조4항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수량을 3000KL(키로리터)로 정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민속주, 지역특산주 업체에 한해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수량 100KL(연간 판매량 기준)의 30배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증류주협회 이종기 회장(오미나라 대표)은 “3000KL은 국내 어느 증류주 양조장도 연간 생산량이 그만큼 되지 않을 정도의 많은 양으로, 중소 주류업체 지원이라는 개정안 취지에도 맞지 않다”며 “국내 증류주 양조장 여건을 감안하면, 세금 감면 혜택을 300KL 정도로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종기 회장이 세금감면 혜택 범위로 300KL를 제안한 것은 나름 근거가 있다. 미국에서는 2018년부터 한시적으로 소규모 증류소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생산량을 375KL(국내 기준 환원, 알코올 도수 50도 기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예를 들더라도, 이번 개정안에 언급한 세금감면 혜택 범위를 3000KL로 정한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전통주 시장의 높은 잠재성을 감안해볼 때, 세금감면 혜택 범위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만, 우리 농산물 소비를 촉진하고 있는 현행 지역특산주 제도 취지는 살리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안이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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