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는 초보 사령탑, 비교 대상이 '곰탈 여우' 김태형이기에...
그럼에도 이 감독을 향하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그 문제 중 하나였던 투수 운영 미숙이 가을무대에서도 드러났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19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2023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에서 9-14 완패를 당했다. 5위로 1승을 내주고 시작한 시리즈는 단 한 경기 만에 막을 내렸다. '확률 브레이커'로서 0%의 확률을 깨고 다시 한 번 미라클을 노래했지만 결과는 뼈아팠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강팀이지만 지난해 9위로 추락한 두산은 '초보 감독'을 선택했다. 김태형 전임 감독에 대한 불신이 이유는 아니었다. 연이은 선수단 약화와 세대교체 필요성 등을 절감하며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려도 컸다. 부족한 지도자 경험 때문이었다. 이승엽 감독을 선임할 때 누구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장담하진 못했다. 원했던 양의지를 데려왔지만 그것이 곧 9위 팀의 가을야구행을 장담해주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아쉬움이 컸다. 시즌 막판 부진과 함께 끝내 5위로 가을야구를 맞았고 단 1패만으로 두산의 가을은 막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투수진 운영에서의 미숙함이 노출됐다. WC에서도 이 문제는 고스란히 나타났다.
WC 1차전에서 선발 곽빈의 부진은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국가대표 투수를 믿었지만 3-0으로 앞서가던 4회말 서호철과 김형준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고 순식간에 3-5로 끌려갔다. 경기 후 이승엽 감독은 "아무래도 제구력 문제인 것 같다. 점수 차가 나서 여유가 있는 피칭을 했다고는 생각진 않는데 실투나 볼이 많아지니 위기가 왔다"며 "시즌 중에도 투 아웃 이후에도 볼이 많아지는 경향이 한 번씩 있었다. 제구력이 불안했던 것 같다. 바깥쪽 요구에도 (공이) 가운데로 갔다"고 말했다.
팬들의 불만을 키우는 건 이후 상황이었다. 두산은 5회 2점을 잘 따라붙었다. 5회 등판한 이영하가 강승호의 실책과 폭투로 아쉽게 실점하긴 했지만 1점 차 열세는 언제든 뒤집을 수 있었다. 8회 1점, 9회 3점을 더 따라간 두산이기에 이영하 이후 투수진 운영에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4번째 투수 최승용의 공이 워낙 좋았다. 1이닝을 단 10구로 틀어막았다. 이승엽 감독도 이날 경기 후 "특히 (최)승용이는 시즌 마지막에 굉장히 좋은 공을 던졌다"고 칭찬한 최승용이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만점 활약을 펼쳤던 그였기에 좋은 흐름을 살려 더 긴 이닝을 맡기기에도 충분히 준비가 돼 있었다.
8회엔 공식처럼 홍건희를 내보냈다.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잘 잡았지만 내야 안타와 몸에 맞는 공에 이어 땅볼 타구 때 1점, 볼넷과 더블 스틸 허용 후 안타로 추가 2실점, 추가 안타에 이어 김형준에게 스리런 홈런까지 허용하며 6-14, 순식간에 분위기가 넘어갔다.
이 감독은 최승용을 왜 더 끌고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생각지 못했고 코치들과 상의하면서 길게 가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즌 내내 코치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팀을 이끌어온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면이었다. 수많은 관리자형 감독들이 시즌을 잘 이끌고도 가을야구에서 기민하지 못한 선수 기용으로 비판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초보 감독의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다만 그를 향한 비판이 다소 과해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초보 감독으로서 9위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베테랑 감독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운영 문제가 초보 감독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지나친 기대 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두산 팬들의 눈높이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는 쉬어갔다고는 하지만 이미 이전 7년간 수많은 가을야구를 거치며 김태형 감독의 영리한 운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칭을 얻은 김태형 감독은 특히 투수 운영에서 중요한 길목마다 '기세'가 좋은 투수들로 밀어붙였다. 특정 투수에 대한 지나친 쏠림으로 인해 때론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번번이 성과를 내며 자신의 철학에 스스로 힘을 실었다. 그가 가을야구에서 보인 '뚝심'이 더욱 그리웠을 두산 팬들이었다.
이승엽 감독은 "1년이 끝났다. 선수들 덕분에 가을야구까지 하게 됐다. 지난해 부임해 준비하면서 가을야구를 첫째 목표로 여기까지 왔는데 1차 목표는 성공했지만 여기서 한 경기 만에 가을야구가 끝나 많이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족한 투수진 운영에 제대로 된 야수들을 키워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김동주와 최승용의 성장에 만족감을 나타내면서도 "생각보다 젊은 야수들이 튀어오르지 못했다. 어린 선수들이 올라와주면 팀에 활력소가 된다. 가을 캠프부터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많이 관심 갖고 내년 전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산의 강점이었던 타선의 약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보완점이다. 이 감독은 "올 시즌을 되돌아보면 타선에서 약점이 많이 보였다. 득점권이나 전체적인 팀 타율, 타점, 득점력 등이 수치상으로 가장 하위권에 있어 투수들도 굉장히 힘들게 한 시즌을 보냈다"며 "투수들이 선제 실점을 하면 패한다는 생각으로 등판했다.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많이 온 시즌이었다. 첫째는 약한 타선을 어떻게 공격적인 야구로 바꿀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투수진에서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는 점도 인정했다. "정철원, 김명신의 투구 이닝이 굉장히 많았다. 믿을 수 있는 두 투수이다 보니 투구 이닝이 늘어났는데 내년엔 (특정) 선수들 비중을 높게 두기보다 분산해서 중간 계투들을 준비해서 되도록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준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얻은 것도 아쉬운 것도 많은 감독 첫 시즌이었다. "즐거운 적도 많았다. 선수들 덕에 많이 이기고 가을야구도 했지만 5할 승률 이상을 해서 미세하게나마 내년엔 더 높게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이 감독은 "선수들과 1년 동안 하면서 큰 사고 없이 인상 쓰는 날 없이 항상 웃으면서 선수들을 대했다. 항상 지도자로서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는 선수가 하기에, 힘들어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쉬게 해준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것까지 얘기할 수 있는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었다.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게 선수들과 잘 지냈다. 부족한 게 있기에 올 가을, 오프시즌 동안 잘 메워 내년엔 분명히 올 시즌보다는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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