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년’ 대통령의 아슬한 질주[이용식의 시론]

2023. 10. 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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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강서구 참패 뒤에도 계속 실점
사각지대 못 보고 돌진한 결과
운전 익숙해질 때 사고 위험성
국정 성과 내는 게 최고의 가치
마키아벨리 전술도 구사 필요
자유 대연합 이루고 野 만나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를 보고 깨달았을 것이다. 코피까지 흘리며 열심히 일하지만 국민 평가는 야박하다는 것을, 선거는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정치와 법치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윤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선거 당일 밤늦게 참패가 확인된 직후 “대통령까지 포함한 책임”이 거론됐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다음 날 아침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로 달라졌다. 그 결과 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 모두 영남 의원이 맡는 정치적 자폭으로 이어졌다. 여론이 악화하자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겠다”며 또 급변침했다.

반년 앞 총선은 제헌의회 총선에 버금갈 만큼 국가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사활도 걸려 있다. 그런데 전초전에서 벌써 대량 실점했다. 무기력한 여당은 대통령만 쳐다보고, 대통령은 겨우 정치 입문 2년(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 기준) 수준임에도 나만 따르라며 무작정 직진한 데 따른 결과다.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 완전 초보자 시절엔 매우 조심하면서 절대 과속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경미한 접촉 사고인 경우가 많다. 운전에 조금 익숙해지고 속도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눈앞만 보고 질주하다 대형 사고를 내기 십상이다. 노련한 운전자는 앞길이 텅텅 비어 있더라도 마구 달리지 않으며,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사각지대엔 위험 요소가 숨어 있다는 가정 아래 방어 운전을 한다.

윤 대통령의 정치는 이제 막 초보에서 벗어나는 단계에 있다. 가장 위험한 시기다. 게다가 최근 권력 핵심에서 대통령은 모르는 게 없다는 식의 ‘윤비어천가’가 나온다. 다시 ‘적자생존’(받아 적어야 살아남는다)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이런 대통령이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 “철학 없이 실용 없다”고 외치니 국정은 민생보다 이념으로 흘렀고, 이번 선거 참패로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방향은 타당하다. 벌써 임기의 4분의 1 이상 지났다. 목표 제시보다 실행을 최고 가치로 삼아야 할 때다. 그런데 추진력을 뒷받침할 정치력이 없다. 국정 개혁 과제는 대개 입법을 통해 이뤄진다. 여의도 정치가 아무리 한심해도 함께하면서 끌고 가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단 하루도 한 적이 없고, 여의도 정치와는 정반대인 ‘뼛속까지 검사’ 체질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여소야대를 뒤집을 방법도 없다. 내년 총선에서 여대야소 국회를 만든 뒤 제대로 국정을 펼치겠다는 식이면 총선 참패는 뻔하다. 국민은 그때까지 현 정부가 얼마나 성과를 냈느냐를 가장 큰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진정성을 보여야 승리의 가능성이 열린다. 윤 대통령이 정치 초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발목 잡는 야당을 탓하기 앞서 본인의 정치력 부족을 탓해야 한다.

야대 국회와 대법원, 좌파 미디어와 시민단체에 포위된 윤 대통령은 사면초가 상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마키아벨리식 전술도 필요하다. 야당 대표도 만나야 한다. 그런다고 야당이 바뀌진 않겠지만, 국민은 달리 볼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도 폐지’ 개헌을 위해 야당 의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도 피하지 않았다. 대연정·소연정을 반복하며 16년 집권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한순간도 정치인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휴대전화 SMS 서비스가 ‘Short Merkel Service’로 불릴 정도였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보수·자유 대연합도 필수다. 다소 껄끄러운 인사도 포용해야 한다. ‘텐트 안에서 바깥으로 오줌을 누게 하는 것이 반대 방향으로 그러는 것보다 낫다’는 미국 정치 속담도 있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한다. 최악 상황에서 최상의 성취를 이뤄낸 최고의 지도자 윈스턴 처칠의 최대 무기는 양보와 소통이었다.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웠다. 정적(政敵) 기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국 도움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감내했다. 나치 독일의 침공 초기 가장 암담했던 때를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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