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전세 사기... 그래도 쓰고 그려 ‘루나파크’는 살아남았다 [실패연대기]

김지은 2023. 10. 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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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19>창의노동자 홍인혜
전 재산 걸린 ‘전세 사기’의 충격과 고통
시로 쓰고, 웹툰으로 그려 인생을 바꾸다
카툰 일기로 유명한 ‘루나파크’의 작가 홍인혜씨를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당한 전세 사기를 소재로 ‘루나의 전세역전’을 지난달 출간했다. 그가 캐릭터 루나를 그린 종이 위에 누워 있다. 하상윤 기자

쓰고 그려 살아남은 사람. 알고 보니 그랬다.

홍인혜(41). 그의 이름 석 자를 수식할 하나의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결국 자신이 찾아 붙였다. ‘창의노동자’. 세상에 없던 말이다. 그럴 법하다. 그의 이력이 그러하니까.

15년 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tvN의 브랜드 슬로건이 그의 작품이다. ‘봄에도 집합공부 겨울에도 집합공부 첫 단원만 너덜너덜’(수학 학습지), ‘세상은 문밖에 있다’(아웃도어), ‘○○은 이런 치킨입니다’(치킨 브랜드 슬로건) 같은 카피도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회사에 다니면서 홈페이지 ‘루나파크’에 카툰 일기를 올리기 시작해 인기 작가가 됐다. 에세이스트이자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카툰집 네 권 말고도 그간 낸 에세이집이 세 권, 시집이 한 권이다.

그러니 그는 ‘로망’이었다.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것 같아서 메마른 월급쟁이들은 ‘루나파크’를 보며 위로받고 동시에 선망했다.

이 부러운 팔자에도 과연 실패가 있을 것인가. 그는 ‘돈 받고’ 하는 일에서 오는 마음의 궁핍함을 ‘덕질(무언가에 열과 성을 다해 빠져드는 것)’로 채웠다. 광고 카피는 ‘클라이언트의 것’이지만, 만화는 온전히 ‘내 것’이니. ‘번아웃’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우울의 강을 표류할 때도 그는 만화를 그려 올릴 손 익은 스캐너를 꼭 품고 있었다. 전 재산을 날릴 뻔한 전세 사기를 당해 ‘이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시가 그를 구원했다.

그러니까 그는, 쓰고 그려 살아남았다. 쓰고 그린 덕분에 삶에서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인생의 전세(戰勢)를 역전시키고야 말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압도적인 고통'이라고 기억하는 그 시간이, 그래도 자신에게 준 것이 있을까. “나를 믿게 됐죠. 예민하고 유약하고 징징대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내게도 벼락 같은 힘이 있었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일으키는.”

“삶에 침입한 고통을 씹어 삼켜 피와 살로 만든” 그를 1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실패①] 첫 퇴사는 도피였다

그는 글로벌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였다. 3년 차가 됐을 때, 홈페이지를 만들어 매일 만화를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만화가는 제2의 꿈이었다. ‘루나파크’의 시작이다. 하상윤 기자

-어릴 적부터 그리기를 좋아했나 봐요.

“맞아요. 고등학교 때 만화동아리 회장을 했어요. 만화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했죠. 루나라는 캐릭터도 ‘싸이월드’ 시절부터 나 자신을 묘사할 때 그리곤 했던 아이죠. 2006년에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이름을 붙여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카피라이터가 됐네요.

“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으로 작가와 만화가를 써내곤 했어요. 그런데 순수 작가는 ‘초천재’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피라이터로 방향을 틀었죠. 혼자 보고 만족하는 게 아니라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에 쾌감을 느꼈거든요. 광고만큼 전 국민에게 바로 ‘쏴주는’ 매체가 없잖아요.”

-어떤 일이나 그렇겠지만, 초년병 시절엔 실수도 많았을 것 같아요.

“카피라이터는 팀으로 작업해요. 팀원들이 카피를 써가면 팀장이 고르죠. 신입이 낸 카피는 대부분 잘리지만. 입사한 지 1년쯤 됐을 때 팀장이 신문 돌출 광고를 하나 제게 맡겼어요. ‘작은 지면이지만 네 꿈을 한번 펼쳐보라’면서요. 명함 절반만한 크기로 들어가는 광고였죠.”

-처음 혼자서 해본 광고겠네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입이 댓 발 나왔죠. ‘아니, 겨우 이만한 데에 쓰라고? 글자 몇 자밖에 안 들어가겠구만. 무슨 꿈을 펼쳐.’ 속으로 그랬어요. 침구회사 광고였는데 별로 고민도 안 했죠. 아마 ‘내일의 행복을 꿈꾸는 자리’ 비슷하게 써갔을 거예요. 선배가 보더니 ‘이런 뻔한 말밖에 할 수가 없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도 속으로 ‘자기는’ 이랬죠. 그런데 선배가 ‘부부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베고 자는 사이니까’처럼 인생의 통찰을 담을 수도 있지 않냐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렇네. 작은 지면이라고 내가 무시했구나’ 싶었어요.”

-태도를 바꾼 계기가 됐나 봐요.

“그렇죠. 대학 다닐 때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캐논의 광고 카피를 보면서 ‘나도 광고회사에 들어가면 저런 문구를 써야지’ 했는데, 막상 카피라이터가 되고 나서는 온전히 내 지면이 주어졌는데도 아무 말이나 막 써낸 거니까요. 크게 깨달았죠.”

-그래서 다시 써간 카피는 뭐였나요.

“나름 머리를 굴려서 ‘4자 시리즈’ 카피를 만들어 갔어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리저리 뒤척거리다), 사전에서 없어질 단어’ ‘뒤척뒤척, 사전에서 없어질 단어’ 이런 식으로요. 칭찬을 받았죠. 채택이 된 것으로 기억해요.”

그는 2004년 직원 60명 규모의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취업해 3년 뒤엔 글로벌 광고회사 TBWA로 이직했다. 2006년부턴 홈페이지 ‘루나파크’를 열어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일상을 그리는 ‘생활 웹툰’ 성격이었다.

2006~2008년 홈페이지 ‘루나파크’ 시절의 만화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녹인 점이 큰 매력이다. 홍인혜 제공

-카피라이터도 무척 바쁜 일인데 왜 만화까지 그릴 생각을 했나요.

“광고 일은 장·단점이 명확해요.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게 매력이죠. 반면 남의 돈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철저히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대로,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때까지 해야 해요. 저작권도 카피라이터에겐 없으니 내 것도 아니죠. ‘내 글’의 결핍감을 느꼈어요. 나의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당시 1세대 생활 웹툰이 인기였거든요. ‘마린블루스’ ‘스노우캣’ ‘낢이야기’ 같은. 그것들을 보다가 나도 해보자 싶었죠.”

-얼마나 자주 올렸나요.

“처음 1년간은 매일 올렸어요.”

-매일요.

“네, 하하. ‘광기’가 있었나 봐요. 지금보다 삶이 훨씬 팍팍했는데도. 야근할 때는 새벽 1, 2시에 퇴근하고 나서도 그렸죠.”

-종이에 그렸나요.

“종이에 그린 뒤 스캔해서 올렸어요. 고물 스캐너도 하나 샀죠. 지금도 그 방식으로 작업해요. 마지막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으로 다듬고요. 요즘은 PC나 태블릿을 많이들 쓰는데, 저는 그 방식이 손에 익어서 가장 좋더라고요.”

초창기 그가 직접 썼던 글씨체는 ‘루나파크또박체’라는 폰트로도 발매됐다.

-매일 그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덕질’이라고 생각했어요. 피곤한데도 매일 그렸으니까. 아무래도 ‘창작 관종’인 것 같아요. 내 만화를 남들이 보고 반응해주는 게 너무 좋아서 광기에 휩싸였던 거죠. 하하. 매일 팔로워가 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내 만화가 퍼졌으니까.”

-초창기부터 인기를 끈 요인이 뭐라고 생각해요.

“당시엔 드물었던 회사원의 일상을 그려서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입소문도 탄 것 같아요.”

‘루나파크’ 개장 1년 만에 그는 팬시 회사에서 다이어리 협업 제안을 받았다. 성공한 카투니스트가 된 거였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광고 카피는 아무리 히트를 쳐도 아무도 누가 썼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광고 일은 팀 작업이라서 카피가 성공해도 개인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다만 ‘즐거움엔 끝이 없다’는 당시 팀에 카피라이터가 저뿐이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제 카피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카피와 달리 만화는 내가 그렸고, 글을 썼고, 캐릭터 이름도 내가 붙인 거니까 ‘내가 했네, 내가 해냈네’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진짜 짜릿했어요.”

-‘루나파크’도 잘나가고, 글로벌 광고회사로 이직도 했는데 2009년 갑자기 퇴사를 해서 영국 런던에 머문 이유는 뭔가요.

“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렸어요. 번아웃도 심했죠. 다시는 광고를 못 하게 될 거라는 각오를 하고 회사를 나갔어요.”

-어땠기에 그랬나요.

“광고 회사는 사내에 10개의 팀이 있다면 10개의 회사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좋은 광고주를 많이 맡는 팀이 잘나가는 팀이죠. 그런데 당시 속했던 팀이 사내에서 입지가 안 좋았어요. 그나마 있던 광고주도 떨어져 나가고 팀원도 계속 그만두고요. 들어오는 일이라고는 다른 팀에서 하기 싫다고 떠민 광고였죠. 결정적으로 제 가치관에 배치되는 광고까지 들어왔어요. 업무적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서 더 이상 광고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요즘도 종이에 만화를 그린 뒤 스캔을 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옆에 놓인 책들은 그가 쓴 카툰집, 에세이집, 시집이다. 하상윤 기자

-퇴사를 하고도 ‘루나파크’는 계속 했지요.

“영국으로 갈 때 제가 스캐너도 갖고 갔잖아요. ‘이민가방’에 넣어서. 주위에서 사람들이 ‘그걸 왜 가지고 가냐. 미쳤다’고 했어요. 하하.”

-영국에서도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만화를 그렸다니 대단해요.

“광고 일은 다시는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루나파크’가 제 유일한 직업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더라고요.”

-영국 생활은 어땠나요.

“지금 거기로 보내주면 훨씬 더 잘 놀 수 있을 텐데. 초반엔 외롭고 비참했어요. 유령처럼 부유하며 살았죠.”

-‘루나파크’가 있어서 견딘 시간도 있겠군요.

“맞아요. 일상을 매일 쓰고 그려서 올렸으니까. 생활 창작자가 좋은 게 안 좋은 상황이 닥쳐도 ‘최소한 이게 내 콘텐츠는 되겠구나’ 생각이 들거든요. 하하. 분명히 비극인데, 이걸 콘텐츠라고 여기면 또 그게 극복하는 요소가 돼요. 언젠가는 이 경험을 콘텐츠로 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힘이 조금 나요.”

열 달 뒤 귀국했을 땐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란 에세이집이 한 권 나왔다.

-그런데 돌아와서 같은 회사에 재입사를 했네요. 다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던가요.

“일단 돈이 많이 떨어졌고요. 여기서 더 놀면 진짜 재취업하기 어렵겠다는 위기감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운이 좋게도 다니던 회사의 가장 좋은 팀에서 합류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이런 기회는 다시 없다!’ 바로 뛰어갔죠. 하하.”

TBWA 크리에이티브 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이 회사의 조직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웅현씨가 이끄는 팀이었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와 달라진 게 있던가요.

“멋있는 광고를 할 기회가 많았죠. 연차도 그사이에 올라가서 팀내 메인 카피라이터를 맡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내가 쓴 카피가 그대로 광고에 나갈 기회가 많아진 거죠. 광고 역시 내가 무척 좋아하고 하고 싶어한 일이었지만 그간에는 ‘찌그덩하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내가 나가떨어지지 않아도 되겠구나’ 처음 생각했어요.”

-‘계속 광고를 해도 되겠구나’ 싶었군요.

“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광고를 만들 수 있어 좋았죠. 그때만 해도 광고가 히트하면 ‘밈(인터넷에서 모방하며 퍼져 나가는 유행)’이 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게 엄청 짜릿해서 ‘내가 대국민 밈 메이커가 될 수 있어!’ 싶었죠.”

-‘루나파크’도 한참 잘나갔는데, 전업으로 할 생각은 안 했나요.

“웹툰은 (실질적인) 수입이 안 됐고요. 책이나 다이어리로 버는 돈도 먹고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2019년 진짜로 퇴사를 했죠.

“결정적으로, 왜 진짜 퇴사를 했나 돌아보면 난 계속 ‘팀원’이고 싶은 사람이어서 그랬어요. 회사 생활을 오래 하면 조직원이 아니라 조직장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잖아요. 저는 그게 무섭고 하기 싫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되면 일을 시키기도 해야 하고 때로 들이받기도 해야 하는데 못 하겠더라고요. 제게는 전혀 다른 직종의 일처럼 느껴졌어요. 1년 정도 고민한 끝에 ‘이제는 회사를 떠나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농담 삼아 ‘퇴사’가 아닌 할 만큼 다 했다는 뜻으로 ‘졸사’라고 표현했죠.”

-‘카피라이터 홍인혜’를 돌아보면 가장 큰 실패가 뭔가요.

“첫 퇴사 때죠. 그 시절 제겐 패배주의만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당시 입지가 안 좋은 팀에 있었더라도 기회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때 했던 퇴사는 도피였죠. 못해먹겠다면서 포기해버린 거니까.”

-그래서 두 번째 퇴사를 회사원으로서 과정을 마쳤다는 뜻의 ‘졸사’라고 표현한 거군요.

“맞아요. 중간에 포기하고 나가떨어진 게 아니니까.”

그의 ‘졸사’는 공교롭게도 그를 괴롭히던 전세 사기 사건이 종료된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한때 너무 절망해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 ‘기한 없는 스트레스’의 폭풍이었다.


[실패②] ‘루나파크’가 예전 같지 않다

매일 팔로워가 느는 재미. 그가 초창기에 ‘루나파크’를 1년 365일 업데이트할 수 있었던 동력이다. 하상윤 기자

-웹툰을 그리는 ‘루나 홍인혜’는 실패가 없었을 것 같은데, 실제 그런가요.

“큰 부침은 없었지만, 좌절감을 느끼긴 했죠. 생활만화라는 게 옛날만큼 ‘핫한’ 콘텐츠가 아니니까요. 요즘 웹툰은 유료 결제 유도가 중요하잖아요. 그러려면 다음 화가 궁금해야 해요. 그래야 독자가 결제를 할 테니까. 그런데 생활 만화는 분절적이죠. 웹사이트에도, 작가 개인에게도 수익이 안 되는 거예요.”

-웹툰 종류도 정말 많이 늘어났고요.

“요즘엔 인스타그램만 열어도 뾰족한 주제로 그리는 웹툰이 너무 많죠. 언제부턴가 새 독자가 유입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루나파크의 아무개’라고 소개했을 때 듣는 말 중에 가장 슬픈 게 이거예요. ‘저 옛날에 그 만화 좋아했는데!’ ‘저 어릴 때 많이 봤는데!’ 퇴사한 무렵에 그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아, 이제 나도 지는 해, 아니 지는 달(루나는 스페인어로 달이다)이구나’ 싶었죠.”

-위기감이 느껴졌겠네요.

“네, 실제로 과거에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 제안이 종종 들어왔었거든요. 퇴사했으니 이제 포털 연재 작업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연락했더니 반응이 미온적인 거예요. ‘생활 웹툰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생각해 봤죠. 나만 그릴 수 있는 뾰족한 주제가 뭐지. 유레카! 나 전세 사기당했잖아! 그래서 전세 사기당한 걸 그리기 시작했죠.”

2015년 전 재산을 털어 구한 두 번째 전셋집의 주인이 알고 보니 고액 체납자였음이 밝혀지며 시작된 분투다. 전세 보증금까지 그대로 국가에 ‘헌납’당할 뻔한 사건. 해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꼼꼼한 그가 채광부터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까지, 확인해야 할 15가지 항목을 뽑아 직접 만든 ‘전ㆍ월세 구하기 체크리스트’까지 들고 다니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 구한 집이었다. 전입 신고를 하고 확정일자까지 받아둔 찰나, 이삿짐도 채 다 정리하지 못한 그에게 통지서가 날아왔다. 임대인이 채무관계로 발생한 법적 분쟁에서 패해 승소한 상대가 그의 전셋집을 압류했다는 의미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임대인이 그간 내지 않아 밀린 양도소득세가 1억 원이나 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니까 국가 역시 채권자였다.

전입 신고와 확정 일자도 무용지물. 당시엔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하면 집이 경매나 공매로 팔리더라도 그 돈으로 세금부터 변제했다(이젠 세입자 보증금부터 변제하도록 올해 5월 관련 법이 개정됐다).

-그간에는 그걸 주제로 그릴 생각은 안 했나요.

“떠올리기도 싫었고 잊고 싶었죠. 고통스러운 경험이니 평생 ‘비밀상자’에 묻어두고 열어보지도 말아야지 했거든요. 그런데 그럴 일이 아니네 생각한 거죠.”

-내가 잘못해 당한 일이 아니죠. 누구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사람이 불합리한 고통을 겪게 되면 자꾸 자기 탓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 내가 이 집을 고른 거잖아’ ‘내가 집주인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간파하지 못했잖아’, 심지어 ‘엄마 아빠가 그렇게 독립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나온 내 잘못이네’ 하는 거죠.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입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압류가 걸렸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그거라도 빨리 들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도 하게 되더라고요.”

-완전히 바닥으로 내몰린 상황이었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죠. 그간 직장 생활로 번 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어요.”

-세상이 나를 배신했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전세 사기를 당하면 인간 불신, 세상 불신에 시달리게 되죠.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사기를 당했으니까요. 심지어 집주인을 처벌할 방법도 없어요.”

-어떻게 견뎠나요.

“집 앞에 있는 성당에 가서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도 하고 교회에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죠. 오랜 세월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는데 너무 힘드니까 교회까지 뛰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땐 좀 심각한 상황이었죠. 집에 혼자 있다가 ‘다 끝내버리면 편해질까’ 싶으면서 죽고 싶었으니까. 세상에 기대가 없어진 거예요. 설사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동시에 ‘나 위험하다’는 위기감도 들었죠.”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간 건가요.

“도움이 필요한데 당장 갈 데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모르는 교회로 들어가서 목사님을 붙잡고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했죠. 사안이 복잡하니까 설명하기도 힘들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안 줘서 힘듭니다’ 이랬던 것 같아요. 목사님이 기도를 하시면서 ‘비록 전 재산을 다 날리는 상황이 되더라도 담대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옵소서’라는 취지로 말씀을 하셨는데 갑자기 제가 속으로 ‘어, 안 돼. 다 날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정신이 들더라고요. 다시 집으로 왔죠.”

결국 그는 공매에 넘어간 그 집을 자신이 사기로 결정한다. 집주인이 세금을 낼 의사가 없다는 건 이미 그가 확인했다. 시일이 지날수록 집주인의 체납 세금은 점점 불어나 세금과 전세 보증금을 합한 액수가 집값을 넘어설 위기였다. 그럴 경우 공매에 부쳐지더라도 집을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다간 전세 보증금도 못 받고 그 집에 갇힐 판이었다. 그사이에도 가산세는 늘어나면서 말이다.

‘자책은 그만!’ 그는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 그걸 잃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은 ‘루나의 전세역전’ 중 일부. 홍인혜 제공

-언제 집주인에게 기대나 미련을 버리게 됐나요.

“집주인에게 열 번을 전화하면 아홉 번은 안 받았어요. 저는 그래도 행방을 알아야 하니까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2주에 한 번씩은 전화를 했죠. 그럼 전화하기 열흘 전부터 가위에 눌려요. 너무 하기 싫으니까. 그래도 녹음기를 켜두고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이 그러는 거예요. ‘아우, 해결한다니까.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고 기다려요’ 그러기에 제가 ‘세금을 내셔야죠!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잖아요’라고 했더니 ‘돈이 있어야 내지. 돈 좀 있어, 아가씨?’하는 거예요. 그때 ‘핑’ 하고 뭐가 돌면서 ‘아, 이 사람 사기꾼이구나. 나쁜 사람이구나’ 규정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그래도 마음을 잘 풀면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뒤섞여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명확해진 거죠. 그렇다면, 내가 살아남아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는 공매 방법을 공부했고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 모아 집을 낙찰받았다. 집주인으로선 그의 전세 보증금으로 세금을 털어버린 꼴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금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스스로 상황을 종료하는 편이 빨리 평온을 되찾는 길이었다. 공매로 집을 낙찰받았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공매가 끝난 뒤 집주인의 숨겨진 세금 2,000만 원이 추가로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돌아올 배분 금액(전세 보증금)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였다. 돌이킬 방법은 낙찰 취소뿐이라는 세무 공무원의 설명.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때가 절망의 클라이맥스였죠.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변수가 생긴 거니까. 심지어 그 역시 제 잘못이 아니었고요. 세무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면서 제가 1시간 동안 울부짖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손해를 봐야 하나요’ ‘낙찰을 취소하면 해결되는 줄 아세요’ ‘제가 지금까지 어떤 일을 겪어왔는데요’라면서. 저도 속으로 ‘미쳤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묘하게 ‘이게 마지막 관문이다’라는 예감이 들더라고요. 나는 다시 처음으로는 못 돌아가겠더라고요.”

그가 버린 건 돈 2,000만 원, 택한 건 행복이었다.

-가치를 따져봤겠죠.

“낙찰받고 나서 잠시 평화를 맛봤잖아요. 그 행복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안 되겠더라고요. 2,000만 원보다 그 가치가 제겐 더 컸어요.”


[실패란] 나를 일으켜 세운 스토리가 되다

그는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1위는 ‘루나파크’ 홈페이지를 만들어 만화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그로부터 그의 인생은 역전됐다. 그가 OHP 필름에 그린 루나의 반쪽을 얼굴에 대고 있다. 하상윤 기자

그는 사태 해결 3년 뒤인, 2021년 그 전세 사기를 주제로 웹툰 ‘루나의 전세역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읽다 보면 분통 터지고 소름까지 돋는 이 실패 스토리는 갈수록 인기를 끌었다. TV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계기가 됐다. 관련 법이 바뀌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납세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하고, 임대인의 세금 체납으로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경우 밀린 세금보다 세입자 전세 보증금을 우선 변제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를 홍보하는 웹툰을 그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루나의 전세역전’은 지난달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사이 등단도 했죠.

“맞아요. 한참 전세사기로 힘들 때 시를 썼어요. 당시엔 만화에 어두운 얘기나 고통은 그릴 수 없겠더라고요. 그런 감정이 시에 폭발한 거죠.”

-시는 왜 쓰게 됐나요.

“백일몽처럼 시인을 꿈꿨어요. 친구가 시 수업이란 게 있다고 알려줘서 등록도 했죠. 시에 미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더라고요. 그 분위기에 반했어요. 5년간 습작했고 네 차례 응모했는데 세 번 떨어지고 당선된 거죠.”

2018년 10월, 그는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를 쓴 건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 아닌가요.

“등단작 10편이 다 어둡고 우울해요. 그 시절에 써서 그렇죠. 전세 사기가 주제는 아니었지만, 영향이 있었겠죠. 고통이나 결핍에 관한 시가 많으니까.”

-전세 사기 사건이 자신한테 준 건 뭔가요.

“좀 힘들거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스스로 ‘너 그때보다 힘들어?’라고 물어요. ‘아니지? 그럼 됐어. 할 수 있어, 임마!’ 하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의미를 찾는다면 그거예요.”

-책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지독한 인간에게 당했지만,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세를 역전하는 일’이라는.

“냉정하게 돌아보면, 이 스토리는 결국 정의가 승리했다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정의가 승리하려면 제가 돈도 손해보지 않고 집주인은 엄벌을 받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저를 통해 세금을 해결했어요. 돈의 가치로만 보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나는 결국 내 힘으로 극복했고 탈출했죠. 창작물로 그 사건의 의미도 찾아나가고 있고요. 내 만화를 보고 1명이라도 전세 사기를 안 당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그게 그 집주인 같은 사람보다 더 잘 사는 인생이죠.”

-홍인혜만의 언어로 ‘실패’의 뜻을 새로이 정의해본다면 뭘까요.

“실패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는 것. 실패 다음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고 싶어요. ‘실패,’인 거죠. 저도 당시엔 의미를 찾으면서 극복하려고 발버둥쳤지만 잘 안 됐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역전했다고 말할 정도가 됐잖아요. 나중에라도 실패 이후를 충분히 다르게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그를 통해 얻은 ‘삶의 도’는 무엇인가요.

“그간 난 멘털도 약하고 늘 징징댄다고 생각했어요. 치명적 실패를 겪으면 당연히 박살 나고 무너져버릴 줄 알았죠.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을 당하니까 초능력 같은 전사의 마음이 튀어나오더라고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혼자 3년을 버티면서 해결했어요. 나를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삶에 지쳐 스스로 나가떨어지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라는 경험칙. 인생을 역전(逆轉)시키는 건 결국 자신이라는 진리. 그러니 때로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고 ‘루나의 인생역전’이 말한다.

편집자주
역사가 승자의 서사이듯, 우리의 이력서도 성공만을 적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열매를 하나 맺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패합니까. ‘삶도-시즌2’는 실패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실패의 정의를 새로이 써보자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실패합니다. 지금도 무수히 실패하는 중입니다. 나의 실패와 당신의 실패는, 그래서 별것 아니면서도 특별합니다. 그 실패의 시간들을 엮는 ‘실패연대기’입니다.

김지은 선임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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