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前 증권시장도 황소와 곰의 싸움이었다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0. 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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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의 혼돈/ 조셉 드 라 베가 지음/ 조성숙 옮김/ 스마트비즈니스 펴냄/ 1만8000원

18세에 파리 증권계에 입문했고, 1999년 죽기 전까지 80년간 투자자로 살았던 남성이 있다. 유럽의 증권투자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앙드레 코스톨라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천금을 거머쥔 코스톨라니가 평생 열망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1688년 출간된 ‘혼돈 속의 혼돈’ 스페인어판 초판이었다. 소더비 경매에 풀렸지만 코스톨라니는 낙찰에 결국 실패했고, 입맛을 다셔야 했다. 책은 일본인이 낙찰받았다.

월가의 상징이 된 황소상의 모습. 저자 조셉 드 라 베가는 책 ‘혼돈 속의 혼돈’에서 300년 전의 주식시장도 황소와 곰의 싸움이었다고 말한다. [UPI·연합뉴스]
주식의 신이자 돈의 현인인 코스톨라니도 탐낸 바로 그 책. 인류 최초의 주식투자서인 ‘혼돈 속의 혼돈’이 출간됐다. ‘철학자, 상인, 주주’ 세 사람이 모여 증권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돈의 고전’이다.

335년 전 주식투자서가 묘사한 증권시장은 지금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빼닮았다. 대화록 형식인 이 책에서 세 사람은 주식시장을 먼저 정의한다.

“그게 무슨 사업인지요?”

유럽에서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악명 높고, 지상에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저속한 사업이지요. 똑똑한 자에겐 시금석이요, 담대한 자에겐 묘비지요. 유용함의 보고, 재앙의 원천입니다.

조셉 드 라 베가의 저서 ‘혼돈 속의 혼돈’(1688) 초판본. [소더비 홈페이지]
주식의 기원은 1602년 동인도회사에 기원을 둔다. 네덜란드 상인 몇 명이 회사를 만들었고, 최고 부자들이 출자해 ‘금 64톤’이 모였다. 이 돈을 자본금 삼아 배가 건조됐고 선원이 모였다.

동인도를 향해 출항한 뒤 회사 재산권을 수백 개로 쪼개고 가격을 매겼는데, 이것이 주식의 기원이다. 1612년 ‘동인도회사’ 첫 배당금 수익률은 원금의 1400%가 넘었다.

이 회사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였다.

·네덜라드 화가 욥 아드리아엔준 베르키데가 그린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모습. 1670년경 완성된 그림이다.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Wikimedia Commons]
세 사람은 주식투자자를 세 무리로 구분한다. ‘금력이 큰 제후들, 주식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상인들, 그리고 주식 규모를 직접 정하려는 도박꾼과 투기꾼들.’ 제후들은 주가의 오르내림에 관심이 없고 배당에만 관심을 둔다. 상인들은 현대 투자자처럼 가격이 오르면 주식을 판다. 투기꾼들은 주가가 내림세일 때 주가를 올릴 이유를 만들고, 과열일 때 내리는 데 도가 튼 악당들이다.

17세기 주식시장에도 ‘황소와 곰’의 쟁투가 한창이었다. 황소는 일단 주식을 매수하고, 주가가 오르기를 바랐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시장이 자극받아 가격 급등을 희망한다. 황소는 모든 걸 사랑하고 찬양하면서, 동시에 모든 걸 과장하는 자들이다. 반면 곰들은 일단 매도로부터 시작한다. 두려움, 공포, 초조함에 지배당한 곰에게 ‘여관의 쌈박질은 혁명으로 오인되고, 어슴푸레한 그림자는 불길한 징조’라고 책은 묘사한다.

조셉 드 라 베가의 초상화. [jdelavegal·Wikimedia Commomns]
책의 저자는 세 사람의 입을 빌려 네 가지 원칙을 조언한다.

첫째, 누구에게도 매수하라 혹은 매도하라는 조언을 하지 말라. 선의의 조언도 늘 결과가 좋지 않다. 둘째, 놓친 이익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챙길 수 있는 이득은 다 챙겨라.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 셋째, 주식 거래로 버는 이익은 고블린(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해 닥치는 대로 다 훔치는 유럽 설화 속 도깨비)의 보물같은 것이다. 주식이란 다이아몬드가 석탄조각이 됐다가 부싯돌로 변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침이슬, 심지어 ‘눈물’로 바뀔 수 있다. 넷째, 이 게임에서 이기려는 사람은 인내와 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가치는 지속되기 힘들고, 소문은 진실에 기반하는 일이 드물다.

한국에 출간된 ‘혼돈 속의 혼돈’ 표지.
20세기 투자의 대가인 코스톨라니가 17세기 초 ‘개미투자자’였던 조셉 드 라 베가의 책을 이토록 열망했던 이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조언 속에 인간의 욕망과 돈의 철학이 내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한 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투기꾼이 끝내 이겨, 처음 구상했던 작전에 합당한 돈을 번다”는 문장과 “꿈에 이끌리는 투기꾼이 있는가 하면, 예언이나 망상에 휩쓸리는 투기꾼도 있다”는 문장 사이에 현대인의 민낯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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