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에 서사를 부여 말라?… 악을 알아야 악에 주저앉지 않아[출판평론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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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거의 모든 소설과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은 선인(善人)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주인공 선인보다 악인(惡人)이 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문학 연구자, 영화평론가, 번역가, 문학평론가 등이 함께 쓴 '악인의 서사'(돌고래)는 다양한 창작물 속에 담긴 악과 악행, 빌런에 관한 다양한 쟁점을 다룬 책이다.
책의 문제 제기, 그 핵심은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일각의 요구가 정당하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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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거의 모든 소설과 영화, 드라마의 주인공은 선인(善人)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주인공 선인보다 악인(惡人)이 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흔히 ‘빌런’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차원을 넘어, 콘텐츠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동경 어린 시선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문학 연구자, 영화평론가, 번역가, 문학평론가 등이 함께 쓴 ‘악인의 서사’(돌고래)는 다양한 창작물 속에 담긴 악과 악행, 빌런에 관한 다양한 쟁점을 다룬 책이다. 책의 문제 제기, 그 핵심은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일각의 요구가 정당하냐는 것이다. “매혹과 연민의 시선으로 악인과 악행을 묘사”하는 행위 자체를 “비윤리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온당한가를 묻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최근 드라마 몇몇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을 언급하면서 악역이 입체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듀나는 악역에 대한 지나친 결벽과 과도한 의미부여, 두 가지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악역이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한 장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독한 팬덤 문화 때문에 작중 악역을 창작하고 이해하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물이 놓친 지점을 환기시킨다. 최근 범죄물의 악당은 “평면적이지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알고 보면 그도 불쌍하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어느새 자리매김했다. 매혹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악인에게 목소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쉽게 결론짓지 말 것을 권한다. “악은 도처에 존재하고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크고 작은 악의 돌부리에 발이 걸려 비틀”거리는 존재이기에, 거대한 악 앞에서 “주저앉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가 최리외에 따르면, 문학은 악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응징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응징은 문학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한 ‘피아노 치는 여자’ ‘연인’ ‘루시’는 그중 “여자를 미워하는 여자들”이라는 빌런이 등장한다. “애증적 모녀 관계”가 등장하는 여러 문학작품에서 엄마가 빌런 역을 맡곤 한다. “어머니와 다른 인간(여성)이 되고자 하는 딸들”에게 엄마는 억압하고, 양면적이고, 혹은 지나친 사랑을 주는, 하여 존재 자체로 악인일 수밖에 없다. 최리외는 문학의 모녀 서사가 “지극히 특수하고 개인적인 문학적 형상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학을 읽는 독자로서 우리는 정의구현이나 악의 응징 같은 간편하고 단순한 해결책이 결코 실현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악이 사라진 세상, 누구나 기대하는 이상향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악에 대해 더 많은 식견을 쌓아야 한다. 아 물론, 우리 모두가 식견을 쌓는다고 선한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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