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5000만년 거슬러… 역순으로 묘사한 ‘지구’[북리뷰]
토머스 할리데이 지음│김보영 옮김│쌤앤파커스
페름기·트라이아스기·백악기
많은 부분이 현재 시제로 쓰여
과거 들어가 주변 살피는 느낌
지구의 장엄한 역사 읽고 나면
우리가 겪는 ‘기후위기’ 떠올라
지구의 역사는 45억 년 전 시작됐다.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바로 어제까지도 인류는 없었던 셈이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의 지구는 어땠을까.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와 쥐라기 정도만 희미하게 생각날 뿐, 우린 ‘우리 이전의 지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우리에게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눈앞에 펼쳐내 보이는, 아니 우리를 아예 옛 지구의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는 책이 나왔다. 1989년생인 영국의 젊은 고생물학자 토머스 할리데이가 쓴 ‘아더랜드’다. 할리데이의 첫 번째 저작으로 지난해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역대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아더랜드’는 5억5000만 년 전부터 2만 년 전까지의 지구의 풍경을 한 권으로 모아 담았다. 지구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으며 긴 역사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었고, 생명체들이 어떻게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했는지를 탐구한다.
책은 가장 최근의 빙하기로 매머드와 거대한 곰 등이 살았던 2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스토세부터 시작해 최초의 인간이 출현한 플라이오세(300만 년 전), 각종 공룡들이 서식했던 백악기와 쥐라기(2억130만∼6600만 년 전)에 이어 바람 소리와 물소리, 곤충의 날갯짓 소리만이 존재하던 트라이아스기(2억2500만 년 전)로 나아간다. 이어 페름기와 석탄기, 데본기 등을 거쳐 에디아카라기(5억5000만 년 전)에서 끝난다. 당시 육지엔 아무것도 살지 않았으며 오직 미생물만 존재했다.
지구의 역사를 더듬어가는 여정이 시간 역순이라는 점에서 처음엔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매머드가 활동했던 최근의 빙하기부터 공룡이, 새가, 풀과 곤충이 주인이었던 때를 지나 풀잎 하나도 존재하지 않던 무(無)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요하고 적막한 지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류가 지구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행태가 얼마나 오만한지를 깨닫게 된다.
책의 많은 부분이 현재 시제로 쓰였다. 당시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구절들을 읽다 보면 내가 시간을 거스른 탐험가가 되어 당시 그 시대에 도달해 주변을 살펴보는 느낌이 든다.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한 대멸종과 페름기 말의 대멸종 이후 지구의 환경 변화와 생물체들의 진화는 특히 드라마틱하다. 책은 “우리는 소행성이 충돌한 지 3만 년이 지난 시점에 와 있다”며 그때로 우리를 초대하는데, 양치식물 가득한 늪지대 특유의 축축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하다. 생태계가 초기화될 때 가장 빠르게 새로운 지형에 퍼져나가는 것이 양치식물이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신기한 생물들을 새로 알게 되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다. 들소만 한 덩치에 털 없이 딱딱한 피부, 얼굴에 볼록 튀어나온 돌기들이 특징적인 ‘부노스테고스 아코카넨시스’, 현대의 오징어와 비슷한 형태이나 머리가 원뿔 모양인 ‘오소콘’, 영화 ‘스타워즈-제다이의 귀환’에 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벌레인 ‘살락’과 비유되기도 하는 넓고 납작한 ‘옴니덴스 암플루스’ 등이 그 예다. 구절들은 문학적으로 쓰여 마치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이를 탄탄한 과학적 지식이 받치고 있다. 미주만 50쪽에 달한다.
지구의 장엄한 역사를 읽고 나면 자연스레 지금 우리 지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가 떠오른다. 저자 역시 에필로그에 기후변화 문제를 담았다. 할리데이는 그간 지구에서 발생한 다섯 번의 대멸종 중 가장 치명적이었던 페름기 말 멸종 직전과 지금의 세계가 유사하다고 우려한다. 페름기 말 화산 활동으로 인해 전례 없는 규모의 지구온난화가 발생했고, 산소 부족 현상이 극심해져 당시 해양 생물 96%와 육상 척추동물 70%가 멸종했다. 실제로 지구가 더워지며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1998년부터 2013년 사이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캘리포니아해류의 산소 농도는 40% 감소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매년 1기가톤(Gt) 이상의 산소가 바다에서 손실됐다. 페름기 당시 바다에 슈퍼 폭풍이 몰아쳤던 것처럼 오늘날 열대성 폭풍의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우리가 행동을 바꿔 즉각적으로 유익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음을 배웠듯,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목적성을 가지고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종”이기 때문이다. 520쪽, 2만2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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