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의 첫 희곡 ‘의붓자식’, 100년 만에 연극 무대에서 선봬
문화다방 이상한앨리스(대표 윤사비나)가 오는 11월 3일부터 11월 5일까지 김명순(1896-1951)의 첫 희곡 ‘의붓자식’(1923)을 100년 만의 초대라는 부제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연극 ‘의붓자식’으로 선보인다.
‘의붓자식’은 근대문학 최초의 현상 문예 응모 제도에 최초로 당선된 여성, ‘창조’의 유일한 여성 동인이자 최초로 개인 문집을 발간한 인물이며, ‘매일신보’의 사회부 기자로 입사한 조선의 세 번째 여성 기자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김명순이 쓴 최초의 희곡이다. 그는 1920년대 중반 나혜석, 김원주 등과 함께 근대 초기의 여성 문인으로 소설, 시,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전개한 작가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를 따라다닌 기생 출신 첩의 딸이라는 꼬리표, 1915년 일본 유학 중 겪은 강간사건 등으로 인해 김명순의 문학은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문단의 철저한 배제와 무관심 속에서 한국 문학사에서 김명순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문화다방 이상한앨리스의 대표이자 연극 ‘의붓자식’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윤사비나는 2020년 남산예술센터 ‘서치라이트’를 시작으로 같은 해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 공연 ‘언도큐멘타’ 초청 오프닝, 이듬해 2021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터랙티브 시어터’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작가 김명순과 그의 희곡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의과정(#리서치)’에 선정되어 ‘의붓자식’과 ‘두 애인’의 현대어역 및 1920년대 서울말 연구 워크숍을 통해 마침내 동시대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김명순의 ‘의붓자식’은 비록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주인공의 가족사적 배경과 삶의 태도, 작가가 실제 겪은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작가와 텍스트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연극 ‘의붓자식’ 역시 각색의 과정에서 ‘김명순’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원작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원작이 종단에는 사랑하는 남자마저 빼앗긴 채 죽어가는 가련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면, 2023년의 ‘의붓자식’은 가부장주의 사회에서 속박대신 죽음을 선택한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한 명의 인간, 여성, 예술가로서의 삶을 무대에 펼친다.
연극과 영화, 전시, 무용 등 장르의 구분없이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문화다방 이상한앨리스의 윤사비나와 창작진은 연극 ‘의붓자식’을 통해 개인과 집단, 즉 인간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접목시켜 풀어나간다.
연출을 맡은 윤사비나 대표는 “지난 5년간 진행한 김명순의 작품 연구를 통해 역사에서 지워진 한 작가와 작품을 오롯이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을 소명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힘 있는 자의 큰 목소리만이 ‘사람의 말’이 되는 것이 아닌 소수의 작은 목소리도 ‘사람의 말’이 되어 들리기를 바란다”며, “한 개인의 꿈과 열정이 잘못이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며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연극 '의붓자식'에는 드라마 '퀸메이커', '슈룹', '마인' 등 다양한 작품에서 매번 색다른 모습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옥자연과 연극 '별들의 전쟁', '공주들', '344명의 썅년들' 등에 출연한 강주희가 성실을 연기한다. 이재남(영호 역)과 이찬솔(영호 역), 조정근(세 자매의 부친 역), 허이레(부실 역), 이경구(탄실 역), 황재희(세라 역), 김희정(여하인 역), 이상구(영호 형/무라카미 역), 조인(소동 역), 김소원(소동 역)이 출연한다.
가부장주의 시대 여성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예술가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김명순의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할 '의붓자식'(부제: 100년 만의 초대)은 아르코ㆍ대학로예술극장,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 가능하며, 해당 상세 할인 내역은 사이트의 공연 안내 내용을 참고하면 된다.
김정환 기자 hwani8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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