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없다"...전문가들은 왜 하나같이 HMM 유찰을 예상하나
"불확실성 없애야 대기업 뛰어들 수 있어"
새우가 고래를 삼킬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기업인수 사례를 보면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용백 전 HMM 대외협력실장
국내 유일 국적 컨테이너선사인 HMM(옛 현대상선) 매각을 놓고 해운업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유찰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①애초에 포스코나 현대자동차그룹 등 인수 적정 기업으로 손꼽힌 대기업이 입찰에 나서기 어려웠고 ②현재 뛰어든 중견기업들은 HMM을 품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이번 매각이 유찰된 뒤 대기업이 마지못해 참전해 인수협상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한국해양기자협회가 18일 서울 영등포구 해운빌딩에서 'HMM 매각 어떻게 해야 하나, 최선의 민영화 해법은?'을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예비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의 자격 논란부터 꺼냈다. ①동원산업과 ②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 ③LX인터내셔널 등은 본격 실사 중이고 산업은행(산은)은 다음 달 본입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뽑아 주식매매계약(SPA)을 맺을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산 규모는 하림 17조 원, LX 11조 원, 동원 9조 원에 불과해 26조 원인 HMM을 품기 어렵고 인수에 성공해도 국내 해운 경쟁력 악화가 걱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진해운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에 오래 종사한 김종현 판토스홀딩스 고문은 "회사를 운영할 능력을 가진 기업에 매각돼야 한다"며 "바쁠수록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실사를 진행 중인 중견기업들 품에 안기게 하는 것보다 적정 기업이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HMM을 지키려면 외국 회사에 대한 매각은 안 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백 전 HMM 대외협력실장도 "산은이나 해진공은 새우가 인수하든 고래가 인수하든 5~10년 뒤 일어날 일은 모른다고 할 게 아니라 (HMM에) 우수한 새 주인을 짝지어 주고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자금은 회수하더라도 회사가 글로벌 10대 선사로 뿌리내릴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잠재 후보로 거론되는 대기업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HMM에 26년째 근무 중인 이기호 노조위원장도 "매각 공고부터 심각한 하자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영구채 등 불확실한 사정 탓에 포스코나 현대차, 물류에 강점을 가진 CJ 등이 참여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입장을 정리해주지 않으니 유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 중 일부는 아예 유찰을 전제로 하고 의견을 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이번 매각은 유찰될 것"이라며 "이후 대기업이 마지못해 참여해 인수협상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후 절차에 대해선 "인수 기업은 사내 유보 현금을 인프라 투자에 쓰게 엄격히 정하고 인수금액 한도 안에서만 처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공적자금 약 7조 원을 들여 HMM을 살린 뒤에도 항만 등에 투자하지 못했는데 회사가 팔리면 이런 인프라부터 갖추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주식시장에선 매각 이슈가 나오면 상한가를 가는 게 대부분인데 HMM(의 주가)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며 "매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영구채를 어떻게 할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대기업도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업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 사회가 인수에 나서는 새로운 방식도 제시됐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독일 하팍로이드는 2대 주주가 함부르크시로 회사가 어려우면 시에서 지분을 늘린다"며 "해당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과 함께 부산항만공사나 인천항만공사가 일정 지분을 갖게 하고 정기선사 동맹이 산은 지분을 인수해 외국 선사가 협력하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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