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레임덕과 윤석열의 미래

천남수 2023. 10. 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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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1년 6개월. 임기가 절반도 아닌, 겨우 30% 지난 시점에서 레임덕이라니. 이런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30%대에 머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 때문이다. 반면 부정평가는 60%대에 육박한다. 여기에 지난 11일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17% 이상 차이로 완패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내년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전초전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윤 대통령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사면복권해 다시 선거에 나서게 함으로써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총력전을 펼치는 ‘전국 선거’가 되고 말았다. 결과는 야당 완패,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보수 언론부터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임명직 당직자를 교체하는 것으로 진화에 나섰지만,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번 보궐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받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레임덕을 언급한 사람이 야권이 아닌 여권인사라는 점에서 여권 분열 징후도 보인다.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거론되고 있는 배경이다. 집권 이후 ‘윤핵관’ 논란 등으로 친윤과 비윤 간의 대립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총선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레임덕(Lame duck). 직역하면 절름발이 오리라는 뜻으로 원래는 채무 불이행 상태의 증권거래인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였다. 레임덕이 정치 용어로 사용된 것은 1860년대 미국 링컨 대통령의 임기 중 상대당의 의원들이 대통령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차기 권력 이양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직의 지도력 공백 현상을 뜻하는 것으로 임기 말 증후군, 권력누수 현상이라고 한다.

레임덕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고, 차기 권력이 가시화되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중 집권 이후 이어진 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했을 때도 레임덕이 온다. 의회에서 소수파로 전락하면, 야당의 동의가 없이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자연히 대통령 중심의 국정운영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임기 중 자신이나 친인척의 비리사실이 드러날 때다. 도덕성이 무너진 지도자는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 없다. 이 외에도 대통령의 건강 등 신상에 문제가 있을 때도 레임덕이 올 수 있다.

▲ 1990년 1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종필 총재가 전격적으로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 등 3당 합당을 발표했다. 민주자유당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엽합뉴스)

1987년 이후 대통령이 임기 중 집권 여당을 탈당하거나, 출당되지 않았던 사람이 이명박, 문재인 두 명뿐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임기 말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레임덕을 겪어야 했던 까닭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한 지붕 세 가족’이었던 민자당이 14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갈등이 격화되면서 레임덕이 시작했다. 공천권을 두고 민정계와 김영삼계가 정면충돌했는데, 차기 권력자인 김영삼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 김영삼 대통령도 임기 말기 터진 말기 한보 사태 등으로 차남 김현철이 구속되면서 레임덕이 시작됐고, IMF 외환위기는 레임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말 아들 3명 모두가 뇌물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결국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레임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대통령직무가 정지됐지만, 이어진 17대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다시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2년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측근들의 대형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지지율도 추락했다. 결국 대선을 앞두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당했다. 역시 레임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당내 라이벌 박근혜가 존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권력이 이양돼 탈당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이계의 퇴장으로 임기말 존재감이 사라졌으니 레임덕 상황에 빠진 것은 당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당함으로써 레임덕이라기 보다는 몰락했다고 할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21대 대선 압승으로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는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지자들의 자책에 기인한 바 컸다. 견고한 지지층이 끝까지 지켜주는 바람에 비교적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그 의미는 퇴색됐다.

▲ 내년 총선이 윤 석열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될지, 아니면 다시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동시에 윤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미래도 달려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 차례가 됐다. 물론 아직 임기가 3년 6개월이나 남아있어 레임덕이 거론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0.73% 격차의 승부, 극단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지지층 간 대립, 특히 총선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 요소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도력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 자신은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착화된 낮은 국정수행 지지율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 따른 후폭풍도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내년 총선이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될지, 아니면 다시 국정운영 동력을 회복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동시에 윤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미래도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 결과가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같이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해 100석에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얻는 데 그친다면 레임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야당 주도의 각종 특검법안 통과는 물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야당은 다시 의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특검이라는 또 하나의 검찰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국 혼란은 불문가지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보듯, 언제든지 대통령직을 정지시킬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개헌도 할 수 있어 국가체제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다.

근소한 차이라도 야당이 승리한다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다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야당과 적극적인 협치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야당과의 공동정부 수립도 가능하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민생을 위한 정치를 강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과 여당이 새로운 변화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총선에 승리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 얘기는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시나리오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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