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노벨평화상, 이란 여성들에게 감사한다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해.”
젠더 갈등이 온·오프라인을 달구던 몇 년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무슬림 여성들에 비하면 한국 여자들은 살 만하다는 얘기였다. 황당했지만 굳이 대꾸하진 않았다. 온 몸에 천을 두른 그들을 생각하면 평생 2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갑갑함, 자칫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손에 죽을 수도 있는 비참함이 먼저 그려진 탓이다.
얼마 전 노벨평화상 기사를 쓰면서 그 말을 다시 떠올렸다. 올해 수상자는 이란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 그는 20년 넘게 이란 정부의 여성 억압에 맞서 저항운동을 조직했고, 그 대가로 13차례 투옥·석방되길 반복했다. 그러나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백색 독방에도, 자식과의 생이별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되레 감옥에 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당국의 수감자 고문·학대 실태를 모아 국제사회에 고발했다.
지난해 이란에서는 100일 넘게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22세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끌려갔다 사망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모하마디는 ‘혁명의 목소리’를 자처했다. 그가 쇠창살 안에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메세지는 거리로 나선 이란 여성들의 가슴에 불씨를 심었다. “억압할수록 우리는 더 강해진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이들은 총부리 앞에서 “여성·생명·자유”를 외치며 히잡을 불태웠다. 수감된 여성들은 모하마디와 함께 옥중 시위를 벌였다.
신정(神政) 정권이 시위 참가자를 공개 처형하고 단속을 강화했지만 저항의 불길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한 이란 출신 여성운동가는 “여성들이 승리했다. 그들은 히잡을 쓰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카페에 앉아 남자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고 CNN에 전했다.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옥죄던 관습을 깨부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여성들은 폭력적 문화에 길들여져 살아간다’고 전제했던 그때 그의 말은 이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침묵으로 동조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제 “여성·생명·자유”는 지구 곳곳의 목소리다. 세계 각국 여성들은 이란 여성들과 연대하는 동시에, 자국에도 “여성의 삶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6개월 전까지 중절 수술을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미국 가임기 여성 4명 중 1명은 성폭행으로 임신하거나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될지라도 수술은 위법이다. 스페인 여자 축구 선수는 월드컵 우승을 만끽해야 할 순간에 추행당했다. 한국은 어떤가. 유력 지자체장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여성들은 여전히 ‘꽃뱀’ 소리를 듣고 있다. “여자가 문제(problem)”라는 기사로 밥벌이를 했던 이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여성을 향한 폭력은 수만 가지 형태와 수위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베리트 레이스아네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모하마디는 이란 여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싸워왔다”고 했다. 그의 투쟁은 곧 우리의 싸움이고, 그가 끝내 거머쥘 승리는 모두의 승리가 될 것이라는 뜻일 테다. 지금도 모하마디는 테헤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12월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그가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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