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났는데도 재정 쏟아붓는다, 큰 정부 만능주의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자리에 ‘큰 정부(big government)’가 들어섰다. 가계와 기업에 돈을 풀면서 나라 살림을 운용했던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 이후에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달 발간한 재정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부채 비율은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급증, 2021~2022년 잠시 감소세를 보이다 2023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시기 당연시됐던 ‘재정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정학적 갈등·인구·탄소 중립, 돈 쓸 데만 늘어
‘큰 정부의 귀환’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은 정부 재정 지출 급증을 집중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방위비 부담 증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고령자 복지 확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 세 요인이 재정 지출이 급증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국방비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추세다. 전쟁 발발 사흘 뒤인 작년 2월 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시대전환(Zeitenwende)”을 선언하며 독일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와 붙어 있는 폴란드는 지난 7월 올해 예산 수정안을 승인했다. 무기 생산과 구매를 위해 돈을 더 쓰는 내용이 골자다. 중립국 스웨덴도 지난 6월 나토 가입을 목표로 내년 국방 예산을 20%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동아시아 국가는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한 한국은 지난해 저출산 대응에 51조7000억원을 썼다. 2006년 2조1000억원에서 25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1.26명을 기록해 200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일본은 지난해 저출산 예산으로 6조1000억엔(약 55조원)을 썼다. 2004년 1조2000억엔에서 5배로 커졌다. 홍콩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출산 장려를 위해 5년 만에 아동 수당을 기존 12만홍콩달러에서 13만홍콩달러(약 2250만원)로 1만달러 늘렸다.
넷 제로(net zero·탄소 중립)에 박차를 가하는 주요 선진국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부채를 늘려가고 있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영국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면 GDP의 21% 수준인 4690억파운드(약 770조원)의 부채가 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 부채 33조달러 껴안고 ‘큰 정부’ 앞장서는 미국
큰 정부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FT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미국 정부가 경제에 이렇게까지 개입한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미국은 ‘국가 부도 위기’ 소동을 치렀다. 연방 정부 부채 한도 상향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결국 부채 한도를 2년 연장하되, 국방·안보 분야를 제외한 지출을 삭감하는 재정책임법(FRA)이 통과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2025년 1월까지 31조4000억달러(약 4경2600조원)인 차입 한도를 유지해 재무부가 돈을 더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 무책임한 재정 운용”이라고 지적했다. 연방 정부 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연금과 노인 의료보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GDP에서 세수의 비율이 낮은 점 등은 해결하지 않고 되레 부채만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국가 부채는 사상 처음 33조달러를 넘어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재정책임법에 따른 지출 삭감분을 반영하더라도 부채 이자 증가와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 지출 증가 등에 따라 앞으로 10년 이내 부채가 50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국가 재정의 궤도가 휘청거린다”고 전했다.
IMF에 따르면, G7의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127.8%에서 2028년 134.3%까지 늘어난다. IMF는 “각국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을 유지할 경우 재정 지속 가능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 재정을 팽창시켰지만, 이제는 재정 중독에서 벗어나 선별적인 재정 지출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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