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화기업 '기름냄새' 줄이는 이유는
배터리·태양광 사업 다변화
최근 탈탄소 전략의 일환으로 석유연료 대신 친환경 에너지를 권장하는 국제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발맞춰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기존 주력 사업 대신 친환경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오 연료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체들은 기존 기술을 활용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나서거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에 주목한 정유사들
정유사들은 바이오 연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바이오 연료는 폐식용유나 동·식물의 부산물에서 나온 지방을 기반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화석연료보다 탄소배출량을 65%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실제 국제해사기구는 지난 7월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바이오선박유의 탄소 감축 효과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 중국 폐식용유 재활용 업체 '진샹(Jinshang)'에 투자한 데 이어 지난 17일 국내 폐자원 기반 원료업체 '대성오앤티' 지분 투자를 위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재활용 업체들로부터 공급받은 바이오 원료를 정제 시설에 투입해 친환경 정유 제품을 제조하겠다는 구상이다.
에쓰오일(S-Oil) 역시 바이오 연료 사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석유 바이오 원료를 기존 석유정제 공정에서 처리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에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정부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하면 에쓰오일은 기존 석유정제 공정에서 바이오 기반 원료를 원유와 함께 처리해 휘발유·등유·경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GS칼텍스는 바이오 연료 사업을 위해 외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대항항공, HMM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각각 바이오 항공유와 바이오 선박유 실증 운항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환경 사업을 중심으로 한 GS칼텍스와 포스코의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GS칼텍스와 포스코는 바이오 선박유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이달 초 결정했다. GS칼텍스가 포스코의 원료 운송선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또 포스코인터내셔널과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총 2600억원을 투자해 인도네시아에 바이오원료 정제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GS칼텍스는 최근 친환경 소재 핵심 원료인 3HP(3-Hydroxypropionic acid)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LG화학과 손을 잡았다. 3HP는 생분해성과 유연성이 높아 다양한 일회용품 소재를 대체할 물질로 각광받고 있다. GS칼텍스는 작년 7월 여수공장에 3HP 실증플랜트를 착공해 최근 가동 준비를 마쳤다. 이 공장은 내년 1분기부터 시제품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탄소를 감축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유업체들이 친환경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며 "최근 얘기가 많이 나오는 바이오 연료는 기존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동시에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절반 이상 줄였기 때문에 정유업체들이 친환경 사업의 일환으로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소재·태양광·플라스틱재활용 등
LG화학은 GS칼텍스와의 친환경 소재 사업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활성화되자 필수 부품인 배터리 수요도 급증했다. 이에 발맞춰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수요 역시 덩달아 증가한 상태다.
최근 LG화학은 고객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이 회사는 지난 11일 일본 완성차 업체 토요타의 북미 자체 배터리 생산 프로젝트에 양극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LG화학 양극재 사업의 매출은 LG에너지솔루션에 의존해왔다. 업계에선 토요타를 시작으로 LG화학이 고객사 다변화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케미칼 역시 친환경 사업 영역을 배터리로 정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동박 사업을 키우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동박 생산 공장이 준공되면서 동박 생산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앞으로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생산력 확장에 적극 투자하고 실적 기여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한화솔루션은 기존 석유화학 사업 대신 태양광 사업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3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국에 태양광 모듈 생산 밸류체인을 모두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사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태양광 사업이 석유화학 사업의 영업이익을 뛰어넘은 상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규정한 태양광 사업 세액공제 혜택을 기반삼아 사업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사업에 나섰다.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에서 '열분해유'를 생산할 예정이다. 열분해유는 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녹인 것으로 불순물만 제거하면 나프타, 경유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에쓰오일 역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은 화석연료 분야 핵심 사업이다 보니 최근 친환경 기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석유화학 업황 부진과 맞물려 각 업체들이 내부적으로 친환경 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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