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재도약 역량 있어…대기업 집중식 모델 바꿔야"
미·중 지정학적 갈등에는 "한국에 시간 벌어준 측면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2013년 보고서의 '개구리' 비유가 워낙 사람들에게 각인된 지라 이번에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논의를 해봤는데 새로운 표현이 안 나오더라고요. 지금 한국 경제의 실제 현실이 그 이유였죠. 그때와 비교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이하 맥킨지)는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현실을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보고서는 물이 서서히 데워지면 자기 몸이 익는 위기 상황인 줄 모르고 '지금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며 뛰쳐나가지 않는 개구리를 현실에 안주하며 침체로 접어드는 한국 경제에 빗댔다.
맥킨지는 10년이 지난 올해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재도약 모델을 제시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맥킨지 한국사무소의 송승헌 대표는 지난 1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2013년 보고서 발표 이후 10년간 한국 경제의 양상에 대해 "대기업에 집중된 기존 모델식 산업 중심으로 성장은 해왔지만, 구조가 바뀌지 않으니 서민이나 자영업자, 중소기업 종사자 등은 그만큼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0년 사이 재벌그룹 순위도 변동이 거의 없었고 사업 영역도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그다음에는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첨단 제조업 중심 성장으로 바뀌었는데 거기서 다면적 성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양극화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맥킨지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개편·전환·구축이라는 3대 축 아래 산업구조 개편, 고부가가치 전환, 산업혁신 기반 구축 등 8개 과제를 이행하면 저성장 국면을 탈피해 연평균 4∼5%대 성장을 기록하며 2040년께 1인당 국내총생산(GDP) 7만달러 시대를 열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대표는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적 혁신이 일어날 수는 없지만 기업의 과감한 투자, 지배구조 개선 등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혁신의 선례를 찾아보면 수십, 수백가지는 있다"며 "그런 것들이 하나씩 터지면 '이제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라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든 가정이든 성장이 멈춘 조직에는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 분야(교육·노동·연금)도 4∼5%대 성장을 유지했다면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향후 10년간 1∼2%대 성장률을 감내하며 가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어떤 식으로든 모델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송 대표는 중소기업 등의 동반 성장까지 아우르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벌 대기업들이 기존 사업 모델로 점진적 성장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사업 모델을 자꾸 만들어내야 그와 관련된 새로운 중소기업이 많이 생긴다"며 "그러려면 대기업들의 투자가 필요한데, 지금은 기업가치가 높아져 봐야 세금 더 내고 가업 승계만 어려워져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상황이니 정부가 탈출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다시 도약할 저력은 충분하다는 게 송 대표 의견이다.
"기본적인 저력과 역량 등은 희망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맥킨지 내부에서 '언락'(unlock·잠긴 문을 열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재벌 대기업들은 역량은 있지만 돈의 논리 때문에 언락이 안 돼요. '투자하면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송 대표는 한국 경제가 최근 당면한 주요 불확실성 중 하나인 미국·중국 간 지정학적 갈등이 한편으로는 이차전지,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중국과의 경쟁을 위한 시간을 확보해 준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없었다면 한국 배터리업계가 지금처럼 투자하고 체력을 단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반도체도 시간을 버는 중"이라며 "이밖에 중국과 경쟁하게 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중국이 치고 들어오기 전 한국이 먼저 시작해 실적을 쌓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했다.
송 대표는 "최근 맥킨지의 전 세계 시니어 파트너 700여명이 한국에 모여 콘퍼런스를 했는데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비즈니스 리더들이 한국을 매우 특별한 곳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한국은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힘든 처지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매우 독특한 국가"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핵펀치' 잃은 58세 타이슨, 31세 연하 복서에게 판정패 | 연합뉴스
- 李, '징역형 집유' 선고 이튿날 집회서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 연합뉴스
- '오징어게임' 경비병으로 변신한 피겨 선수, 그랑프리 쇼트 2위 | 연합뉴스
- 학창 시절 후배 다치게 한 장난…성인 되어 형사처벌 부메랑 | 연합뉴스
- 주행기어 상태서 하차하던 60대, 차 문에 끼여 숨져 | 연합뉴스
- 아내와 다툰 이웃 반찬가게 사장 찾아가 흉기로 살해 시도 | 연합뉴스
- 페루서 독거미 320마리 밀반출하려다 20대 한국인 체포돼 | 연합뉴스
- 성폭력 재판 와중에 또 악질 성범죄…변명 일관한 20대 중형 | 연합뉴스
- 의문의 진동소리…옛날 가방 속 휴대폰 공기계 적발된 수험생 | 연합뉴스
- 김준수 협박 금품 갈취한 아프리카TV 여성 BJ 구속 송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