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백화점 가나'…日 세븐일레븐의 '파격 결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백화점 시장 20년새 '반토막'
세븐일레븐, 백화점 떼내자 주가 급등
'편의점의 나라 일본'도 포화상태
해외시장에 '진심'인 유통기업
파업 안하는 나라 일본③에서 계속 일본 최대 편의점 기업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종합 소매그룹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소고·세이부백화점을 인수해 편의점, 슈퍼, 백화점, 전문점 등 모든 형태의 오프라인 매장을 갖췄지만 백화점의 시대가 저물어 버린 탓이다.
1991년 9조7000억엔(약 88조원)까지 성장했던 일본의 백화점 시장 규모는 2022년 5조엔까지 쪼그라들었다. 1999년 311개에 달했던 일본 전역의 백화점 수는 올해 2월 현재 182개까지 줄었다. 올해 1월 시부야를 대표하는 상업시설이었던 도큐백화점 본점이 55년만에 문을 닫은 것은 백화점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장면으로 평가된다.
2020년 야마가타현과 도쿠시마현에 유일하게 남았던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서 ‘백화점이 없는 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7개 광역 자치단체 가운데 17개 현은 백화점이 1개 뿐이어서 ‘백화점이 없는 광역지자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븐앤아이도 소고·세이부를 살려보려 애를 썼다. 28개였던 점포를 10개로 줄이고 남은 점포를 쇼핑센터로 변신시켰다. 하지만 저물어가는 백화점의 시대를 되돌릴 순 없었다. 소고·세이부는 2022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부채는 3000억엔까지 불어나 성장을 위한 투자는 커녕 빚을 갚기에도 허덕인다.
급기야 백화점이 세븐앤아이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순이익은 2810억엔으로 소고·세이부를 인수한 2006년(879억엔)의 3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도 주가는 2015년 8월 기록한 5998엔을 넘지 못했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 주주가 "저수익 사업(백화점)을 정리하고 편의점 사업에 집중하거나 편의점 사업을 분리하면 시가총액이 2배 이상 늘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실제 세븐앤아이홀딩스가 소고·세이부 매각을 발표한 작년 2월 이후 주가는 처음으로 6000엔을 넘었다.
61년 만의 파업이 주는 세번째 의미는 일본 기업의 변화다. 구체적으로는 수출 제조업체 뿐 아니라 유통 기업들도 저성장의 늪에 빠진 자국 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음을 의미한다. 세븐앤아이가 소고·세이부를 잘라낸 건 종합 소매그룹 모델을 포기하는 대신 주업인 편의점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편의점 자회사인 세븐일레븐이 특히 주목하는 곳이 해외다.
포화상태에 이른 일본에서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74년 도쿄 도요스에 일본 최초의 편의점이 생긴지 50여년 만에 일본의 편의점은 5만6000개로 늘었다. 하지만 2019년에는 편의점 숫자가, 2020년에는 편의점의 매출이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세븐일레븐은 2020년 8월 편의점형 주유소 스피드웨이를 약 2조엔에 인수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성사된 세계 최대 규모의 M&A였다. 스피드웨이 인수로 세븐일레븐 미국법인은 점포수를 1만3000여개로 늘려 미국 1위를 굳히게 됐다.
2021년 세븐앤아이홀딩스 매출 가운데 해외 편의점의 비중은 38%로 일본 편의점 사업부(16%)와 일본 슈퍼마켓 사업부(31.4%)의 비중을 넘어섰다. 2021년 9~11월 해외 편의점 사업부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675억엔으로 일본 편의점 사업부(539억엔)를 앞섰다. 올해는 해외 편의점 사업부의 영업이익이 그룹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세븐앤아이는 2025년까지 미국과 일본 지역의 편의점 수를 2020년보다 30% 늘어난 5만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편의점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매년 적자를 내는 소고·세이부를 처리하는 건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이번 파업은 참 안바뀌는 것 같지만 은근히 바뀌어 나가는 일본 기업과 일본 경제, 나아가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 장면으로 두고두고 남을 전망이다.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그룹 등 전통의 유통 대기업과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의 경쟁이 치열한 한국도 참고할 만한 사례로 평가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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