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두의 꼬치 COACH] “열심히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어요” 삼성생명 하상윤 코치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0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언제 농구를 시작했나요?
원래 잠깐 야구를 했어요. 근데 어머니가 운동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으셨죠. 제 친형의 담임 선생님이 농구부장이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하는 친구 기다리려고 한번 놀러갔는데 저한테 권유를 하시더라고요. 얼마 후 소년체전 12명 엔트리를 추리는데 살아남았고, 그렇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학창 시절 어떤 선수였나요?
운동신경이 있었고, 달리기도 빨랐어요. 농구에 대한 감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득점력도 갖추고 있었고요. 수비도 좀 했는지 고등학교 시절에는 코치님이 에이스 수비를 저에게 맡기시더라고요.
경희대 시절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최부영 감독님이 저를 예뻐하셨어요. 그래서 경희대에 가게 됐죠. 그때는 훈련을 말도 안 되게 했어요. 겨울에 선지도라는 곳에 가서 혹독하게 체력 훈련을 했죠. 훈련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새벽 2, 3시에도 최부영 감독님이 부르셨으니까요. 깡다구 기르라고 글러브 끼고 복싱 훈련도 시키셨어요(웃음). 계속 준우승만 하다가 1998년 농구 대잔치에서 처음으로 (서)장훈이 형이 있는 연세대를 이기고 우승했어요. 최부영 감독님도 감정에 북받치셨는지 라커룸에서 우시더라고요. 장훈이 형이 있는 연세대를 이겨서 너무 기뻤죠.
솔직히 지명 순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팀에 갔는데 (강)동희 형, 故(표)명일이 형이 계시더라고요. 마치 벽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경기에 뛸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죠. 동희 형과 방을 같이 썼는데 꿈만 같았어요. (김)유택이 형, (조)동기 형, (김)영만이 형 등 훌륭한 선배들과 같이 뛸 수 있어서 영광이었죠.
공격보다 수비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요?
상무를 다녀오니 팀에 유재학 감독님이 계셨고, 임근배 감독님이 코치로 함께 하셨어요. 유재학 감독님은 선수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하게 정해놓고 계시더라고요. 당시 모비스는 스타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에 수비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감독님께서도 ‘너희 개인기 좋으면 이거 안 해’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상대 팀에 에이스가 있으면 주로 저를 내보내셨어요. 그래서 저도 수비수로 방향을 잡았죠. 개인 훈련 시간에도 슛 연습보다 달리기와 수비 연습을 했어요. 1시간 훈련하면 농구공 만지는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2006-2007시즌 부산 KTF(현 수원 KT)와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기여를 한 것 같아요. 당시 3승 1패로 앞서다가 3승 3패로 동률을 허용했어요. 유재학 감독님께서 7차전 전날 선수들을 다 부르시더니 맥주 한 잔씩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수비 매치업을 바꿔서 나갔고, 우승을 했어요. 그때 ‘우승하려면 구색이 잘 맞아야 하는구나’라는 걸 느꼈죠. 당시 모비스 짜임새가 좋았거든요. 유재학 감독님이 선수 관리를 정말 잘하시는 것 같아요. 그 때의 경험이 지도자가 되니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 농구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해당 시즌 모비스에서는 계약을 안 하겠다고 일찌감치 통보했어요. 마침 시즌 막판에 광신중에서 지도자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고민을 하다가 유재학 감독님, 임근배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어머니께서도 도전해보라고 추천하셨고요. 광신중 코치로 가기로 하고 은퇴를 했는데 다른 팀에서 저를 영입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미 다 결정을 한 상황이라 선수 생활에 미련은 없었어요.
뛰어난 활약을 펼친 건 아니지만 1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수비라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다른 건 몰라도 수비 한 가지는 잘했으니까요. 선수는 어느 정도의 재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죠. 유재학, 임근배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수 생활 내내 농구하는 자체가 즐거웠어요.
“성적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췄어요”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하상윤 코치는 곧바로 광신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드리블, 패스 등 기본기를 중요시하며 선수들을 지도했다. 민기남(소노), 조민근(한양대), 이해솔(연세대) 등이 하상윤 코치의 제자들이다. 하상윤 코치는 성적보다 성장에 초점을 초점을 맞춰 농구 꿈나무들의 성장에 힘썼다.
지도자 생각은 언제부터 갖고 있었나요?
하고 싶었지만 꼭 해야겠다는 아니었어요. 선수 생활 말년이 되니까 지도자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지더라고요. 그때는 경기도 많이 못 뛸 때라 유재학, 임근배 감독님 말씀하시는 걸 유심히 봤어요. 이 때문인지 지금 조동현 감독이 이끄는 현대모비스 경기를 보면 아는 게 있더라고요. 선수 생활 말년에 지도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언가 해보고 싶었어요. 저만의 패턴을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했죠. 근데 애들 수준이 패턴을 가르칠 때가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드리블, 패스, 피벗, 골밑슛 이런 기본기들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중학생 때 안 하면 나중에 배우기는 더 어렵거든요. 연습경기도 안 하고 기본기만 할 정도였어요. 나중에는 (민)기남이, (조)민근이가 저한테 와서 드리블 그만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뭘 챙기겠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어요. 성적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췄죠.
2019년 인천 신한은행 코치 부임 후 일주일 만에 박성배 감독이 물러나자 함께 사퇴했는데요?
(박)성배 형이 평소 저를 잘 챙겨주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하시더니 신한은행에서 같이 해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이미 상의도 없이 구단에 저를 쓴다고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이후 안 좋은 일로 나오게 됐지만 주변에서 ‘인정을 받은 거다’라고 말해줬어요. 아무 생각 없이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위에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크게 낙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곧바로 다시 광신중 코치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신한은행으로 가면서 학교에서 코치 모집 공고를 올렸는데 아무도 지원을 안 했더라고요. 교장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빨리 공고를 내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어요. 학교에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죠.
광신중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누구인가요?
(김)재현(전 고려대)이요. 얼마 전에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뒀어요. 제가 처음 봤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근데 하면 할수록 점점 실력이 늘더라고요. 조금 과장해서 슛 있는 故크리스 윌리엄스 같았어요. 며칠 전에 농구 그만뒀다고 연락이 왔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재현이와 함께 기남이도 기억에 남아요. 걔는 농구에 미친놈이에요. 체력 떨어진다고 새벽에 혼자 학교 언덕을 뛰더라고요.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시킨 적이 없거든요.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제가 있어보니 왜 옛날 어른들이 기본기를 강조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모든 건 기본기에서 나와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성장하고, 프로에서 성장할지 보이게 됐어요. 아마추어 코치들이 정말 고생이 많은데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 대학, 프로에 가는 걸 보며 뿌듯했어요.
“수비가 기본이 되어야, 인성도 중요해요”
광신중에서 경험을 쌓은 하상윤 코치는 지난해 임근배 감독의 부름을 받고 삼성생명 코치로 합류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삼성생명의 2022 박신자컵 서머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지난 시즌 임근배 감독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삼성생명이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힘을 보탰다. 두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는 하상윤 코치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며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2022년 광신중을 떠나 삼성생명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사실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느 날 임근배 감독님이 전화를 하셔서 같이 해볼 생각 있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죠.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잘 하고 있는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웃음).
여자선수들을 지도하는 건 처음인데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남자선수들은 쉬는 시간 없이 훈련을 진행하는데 여자선수들은 중간에 2분씩 물을 마시더라고요. 처음엔 이해를 못했는데 이런 차이점들이 있어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 신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동작들도 있고요. 남자선수들은 제가 잡아주면서 세심하게 가르쳐줄 수 있는데 여자선수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 대신 이미선 코치가 담당하고 있죠.
감독님이 다 만들어주신 거죠. 제가 보기에도 당시 우리 팀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어요. 멤버가 좋아서 주변에서 다 우승할 거라 했죠. 그래서 부담감도 있었어요. 멤버가 좋았기 때문에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해요. 저는 진짜로 한 게 없어요. 감독님이 빠른 농구 추구하신다고 해서 공을 잡으면 일단 뛰라고 했고, 수비를 조금 강조한 게 전부에요.
지난 시즌 삼성생명이 선두까지 올라갔다가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는데 아쉽지 않았나요?
아쉬움이 크죠. 잘 가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상선수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사실 저는 남은 선수들이 해줄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신)이슬이와 (조)수아를 불러 따로 이야기했어요. 3경기 정도면 경기력이 올라올 거라고. 진짜 정확히 3번째 경기부터 터지더라고요.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삼성생명에서 두 번째 오프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부상이요. 지금도 부상선수가 많아요. 누가 넘어지면 다칠까봐 걱정되더라고요. 아마 감독님도 부상을 가장 신경 쓰고 있을 거예요. 전술은 감독님이 하시니까 저는 한 번씩 건의사항을 말씀드리곤 해요. 감독님이 수비를 신경 써달라고 해서 신인들과 (김)유선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하상윤 코치만의 지도 철학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수비가 무조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격은 다른 선수가 해주면 되지만 수비는 내가 하지 않으면 구멍이 생기거든요. 훈련 외적으로는 인성이 좋아하죠. 이건 농구선수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광신중 코치 시절에는 먼저 나서서 학교 쓰레기를 줍곤 했죠. 임근배 감독님도 솔선수범하려고 노력 중이세요.
윗분들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여기까지 온 거죠. 이 자리를 쫓으면 안 돼요. 저도 예전엔 많이 쫓으려고 했는데 더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스타플레이어가 꼭 잘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저보다 경기를 못 뛰었던 선수들이 더 잘 가르칠 수도 있고요. 자신이 맡은 일에 매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단계를 밟아 올라가게 되어 있어요. 운이 좋아서 빨리 가느냐, 천천히 가느냐의 차이죠.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도자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없어요. 구체적으로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감독이 되면 좋겠지만 현재 삼성생명에서 어떻게 감독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팀이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에요. 큰 목표보다 이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일이 올 거라 생각해요.
▼ 하상윤 코치
생년월일
1976년 10월 27일
신장/체중
180cm/75kg
출신 학교
군산초-군산중-군산고-경희대
선수 경력
1999~2011 부산 기아-울산 모비스
지도자 경력
2011~2022 광신중 코치
2022~현재 용인 삼성생명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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