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정치를 사랑하는 마음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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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묻기 쉬운 시절이다.
그만 좀 싸우라는 평범한 당부에, 국회는 원래 싸우는 곳이라는 반박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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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묻기 쉬운 시절이다. 그만 좀 싸우라는 평범한 당부에, 국회는 원래 싸우는 곳이라는 반박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사지 못한다. 정치권이 잘 싸우는 모습과 그 싸움이 만든 변화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시민적 덕성을 쌓기 어려운 때라는 생각이 밀려온다면, 〈법 짓는 마음〉의 책장을 펼쳐보자. 정치가 하는 일을 알게 된다.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국회 입법노동자 12년 차 이보라 작가(43)가 썼다. 2012년 장하나 민주당 의원실에서부터 시작해 2023년까지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며 펼쳤던 입법 활동에 대해 남겼다.
여의도에서는 주요 정치인의 발언과 행동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정치는 시스템 안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기본으로 한다. 이보라 작가는 그러한 업의 본질에 대해 기술했다.
그 핵심에 입법이 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 선감학원 피해 사건(1942~1982년 '부랑아 수용' 명목으로 이뤄진 아동인권 침해)의 진상규명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청년기본법,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 등. 한국 사회의 취약한 구석 곳곳을 어루만지고 다듬는 법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 덕분에 법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이의 노력과 마음이 동원되는지 세세히 알게 된다. 법 이름은 하나같이 간단치 않지만, 에피소드는 각각 흥미롭다. 직업 에세이로도 손색이 없다. 불법 촬영물 유통에 대해 안심해도 된다는 경찰청을 상대로 어떻게 범죄자들이 우회를 하는지, 민간 전문가를 섭외해 밝혀냈다. ‘옳은 일’이라는 가치와 관점만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고, 집행자의 언어(경찰 수사기법과 매뉴얼)로 질의하면서, 기술적으로 입법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내는 식이다. 국회가 하는 일의 실무를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국회에서 일해보니, 가진 사람들은 사적인 민원을 공적인 권리인 듯 말하고, 없는 사람들은 공적인 민원을 사적인 민폐인 듯 말했다. 국회의 쓰임새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쏠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회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의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국회가 위임받은 권한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 권능은 접근방법을 아는 사람만 쓴다.” 이보라 작가가 책을 쓰게 된 계기다.
국회 직원 연구모임인 ‘국회 여성 정책 연구모임’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경찰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에 보좌관을 그만뒀다. 국정감사 없는 가을을 보내기는 11년 만이다. 대신 여의도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날 채비를 하는 중이다. 전국의 작은 책방과 공공도서관에서 ‘그럼에도 정치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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