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자장사, 비상식' 또 은행 때문인가

노명현 2023. 10. 20.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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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자장사' 비판 등 금리인하 압박
가계부채 늘자 은행 50년 주담대 '비상식' 비판
관치금융 논란 이어 가계부채 증가 책임 떠넘겨

이번에도 타깃은 은행이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일 진행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중은행들이 취급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가계부채에 대한 정부 우려를 이해하고 금융인으로서 기본 상식을 갖췄다면 이런 상품(50년 만기 주담대)을 낼 수 없다"며 "상식에 맞지 않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정무위 의원들이 가계부채 증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질타하며 50년 만기 주담대도 원인중 하나로 지적하자 화살을 시중은행 주담대로 돌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지난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했다. 동시에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다. 차주들은 돈을 더 빌리기보단 갚는데 주력했다. 이로 인해 올 3월까지는 가계대출 잔액 감소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4월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은행 대출금리도 오름세가 주춤한다. 그러면서 다시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어났고 가계대출은 증가세로 전환했다.

금융·부동산 시장에선 특례보금자리론이 불씨가 된 것으로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안심전환대출 실패를 교훈 삼아 특례보금자리론 자격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집값 9억원까지, 소득 기준은 없앴다. 

이를 활용한 주택 매입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꿈틀댔다. 하향 안정화되던 집값도 상승세로 돌아섰고, 가계대출 증가에도 불이 붙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50년 만기 주담대가 등장한다. DSR 규제가 유지되는 만큼 만기를 늘려 대출한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50년 주담대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내 집 마련에 나선 실수요자도 있겠지만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이 주택 수를 늘리는 경우도 많았다. 50년 주담대를 받은 차주 가운데 1주택 이상인 유주택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관련기사: [50년 주담대의 역설]'집 있는' 사람이 절반 넘었다(9월19일)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안에서 대출 상품을 만들고 취급한다. 특히 은행들이 다양한 구조의 금융상품을 만들어 경쟁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독려하는 내용이다. 50년 만기 주담대 역시 다양한 대출 상품 중 하나다. 가계부채 등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었다면 당국이 사전에 제재를 했어야 한다. 

김주현 위원장은 은행 스스로 이같은 상품을 취급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은행 입장은 다르다. 은행권에선 차주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이라면 당연히 관련 설명을 하고 선택은 차주가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당국이 전혀 손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취급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들의 '지나친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금리 인상을 억제했다. 당시 기준금리가 빠르게 오르는 시점이라 은행들의 대출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었지만 당국 수장들의 입을 통해 금리를 압박했다. 이로 인해 관치금융 지적이 다수 제기됐다.

반대로 올해는 가계부채가 늘자 그 원인을 은행으로 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수요 억제를 위해 은행권에 금리 인상을 권고하는 상황이다. 작년과는 정반대 행보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주체다. 가계부채 조절을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체계를 개선하는 등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 영향은 제한적이다.

은행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대출을 취급하는 만큼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선 당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가계부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넘기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은행은 금융당국의 규제 범위에 있는 만큼 대출 영업을 비롯해 신사업 등을 위해선 당국과의 소통이 절대적이다. 금융당국은 시장 불안 등이 발생했을 때 은행권에 금융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 만큼 서로의 신뢰가 중요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은행을 비판하고, 책임을 은행에 넘긴다면 은행 입장에선 당국에 대한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에 대한 화살을 은행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금융당국의 역량을 직접 입증할 때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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