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숲속 마을에 도토리 하나가 [책&생각]

한겨레 2023. 10.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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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도토리는 처음부터 어린이가 손에 쥐라고 생겨난 것이 아닐까? 모자를 쓴 조그만 열매.

글자를 몰라도 이 책의 제목이 '도토리'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책등에는 도토리 같기도 하고 다람쥐 같기도 한 서체로 조그맣게 '도토리'라고 쓰여 있다.

누군가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기도 하는 도토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네 책방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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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송현주 글·그림 l 향출판사(2021)

혹시 도토리는 처음부터 어린이가 손에 쥐라고 생겨난 것이 아닐까? 모자를 쓴 조그만 열매. 나무처럼 단단한데 쥐고 있으면 온기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어린이 손에 딱 알맞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도토리를 발견하면 나조차 한 번은 쥐어보게 된다. 일부러 찾은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눈에 보인 건데, 하나쯤 가져갈까? 유혹이 강렬하지만 애써 나무들 사이로 던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떤 어린이는 도토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슬쩍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으니까. 그 어린이를 위해 내가 도토리를 포기한다. 어쩌다 어린이가 한두 개 가져가는 정도는 다람쥐도 이해해줄 것이다. 어린이나 다람쥐나 한 번에 가져갈 수 있는 도토리 수는 비슷할 테니까.

‘도토리’의 앞표지에는 제목이 없다. 정확하게는 제목 글자가 없다. 도토리 그림만 있다. 그림이 곧 제목인 것이다. 글자를 몰라도 이 책의 제목이 ‘도토리’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책등에는 도토리 같기도 하고 다람쥐 같기도 한 서체로 조그맣게 ‘도토리’라고 쓰여 있다. 뒤표지는 더 재미있는데, 그건 책을 볼 분들을 위해 여기에 적지 않겠다.

신갈나무에서 막 떨어지는 도토리를 다람쥐가 발견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빈 창고를 채우려는 듯하다. 다람쥐가 반갑게 달려가는데 도토리는 하필 똬리를 튼 뱀 위로 떨어진다. 다람쥐는 뱀을 피해 달아나기 바쁘고, 뱀은 뱀대로 오소리의 등장에 놀란다. 다음에는 멧돼지 가족이 도토리를 향해 온다. 다람쥐는 조마조마하다. 여우와 사슴이 지나간 뒤 겨우 도토리를 차지하려는 순간, 직박구리가 도토리를 채간다. 다람쥐는 과연 어떻게 도토리를 구할 수 있을까?

무대처럼 연출된 숲에 차례차례 동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이런 전개 방식은 그림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친절하다. 긴장감과 기대감을 갖고 장면 장면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도식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내 예측이 맞는지, 맞는다면 어떻게 증명될지 알아맞히는 즐거움이다. 저마다 윤곽선이 다른 다양한 나무들, 꽃과 벌레들, 새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숲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가 고요해 보이던 숲이 사실은 떠들썩한 마을이었다는 걸 일깨우는 점도 좋다. 도토리는 마치 세상에 활기를 가져오는 어린이 같다.

나는 이 책을 지방의 어느 동네 책방에서 발견했다. 표지가 보이게 진열된 책장에 의기양양하게 얼굴을 내민 ‘도토리’를. 강연 시간을 기다리며 도서관 근처를 산책하다가 찾은 서점이었다. 스스로 그림책을 골고루 챙겨본다고 생각했지만, 서점에서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이 멋진 책을 계속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온라인서점, 대형서점이 할 수 없는 일을 동네 책방이 한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그걸 갖고 싶게 만들고, 빈 책장에 새 책을 들여서 손님들한테 계속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누군가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기도 하는 도토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네 책방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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