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 가을 시집 판매량은 줄고…시인들은 시를 쓰고

임인택 2023. 10.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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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가을을 기다리는가.

2015년, 2017년 가을마다 전월에 견줘 시집 판매량이 29%, 43% 늘었다는 데이터가 있다.

2011년 '젊은 시'를 찾아 (산문시 비중을 고려한) 파격적 판형으로 닻을 올린 문학동네 시인선이 200번째를 맞아 향후 시집을 펴낼 시인 50인의 시 한편씩을 모았다.

문학동네 시인집 가운데 가장 많이 판매된 시집은 10년 전 출간된 박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 그간 60쇄 20만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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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보다 2023. 책과 생각

시 보다 2023
안태운·오은경 등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7000원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티저 시집
강정·한정원 등 지음 l 문학동네 l 1만2000원

시는 가을을 기다리는가. ‘아마도’라고 말해지곤 했다. 2015년, 2017년 가을마다 전월에 견줘 시집 판매량이 29%, 43% 늘었다는 데이터가 있다. 올해는 사뭇 다르다. 10월 시집 판매량이 줄었다는 게 예스24 쪽 설명이다. 8월보다 9월, 9월보다 10월 더 줄었다. 2021년 동향도 비슷하다. 가을이 깊을수록 시집은 쓸쓸해진다. 시는 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경계를 건너며 떠는 사람아. …우리를 쉽게 더럽혔고 더러운 우리를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깨진 돌처럼 지면에서 솟아오르지. 우리는 공간에 새겨진 형태를 떨면서 넘어 다닌다. 종이를 접고 펼치듯이 누울 자리를 만든다. …아무 데서나 만난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면서 만난다. 이름도 없이 만난다. …우리는 서로를 돕지 않는다. 만나고 함께 함께 있을 뿐이다. 서로의 입구가 되어줄 뿐이다…” (‘전망들’ 부분)

여기  ‘우리’가 시(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이유도 없다. 명백한 건 시인 김리윤이 ‘멀리 바라봄’ 내지 ‘바라보는 사람’을 뚫어지게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벽이 없”다. “창문을 필요로 할 욕망의 주체도 부재한다.”(시작 노트) 가눈 시선만으로 경계를 건넌다. 하지만 “훤히 뻗어나가는 시선이 막연함이 되어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시인은 묻는다. ‘우리’가 시(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흰옷은 입는 순간 흰 것이 아니게 되고야 만다.” 그러나 “어떤 흰 것도 기억 속의 흰색만큼 충분히 희지 않”(또다른 시 ‘전망들’ 부분)으므로, 시선이 상실을 겪더라도 시는 시의 도리를 할 뿐이다. 이때 시선(視線)은 기억되지 않는 기억에까지 닿아 보려는 시선(詩線)일 것이다.

시집 ‘시 보다 2023’엔 김리윤 외 강보원·김보나·문보영·백가경·이린아 등의 시가 담겼다. 시적 언어의 현재성을 가늠한다는 취지로 문학과지성사가 10년차 아래 시인들 시를 추려 한해 한권씩 펴내길 올해 3년째다. 이들 중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가 나온다. ‘시작 노트’와 다섯 심사위원의 설명이 자세하여, 시가 조금이라도 독자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 눅진하다.

‘시 보다’가 이 가을 닫는 시집이라면,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는 여는 시집이다. 2011년 ‘젊은 시’를 찾아 (산문시 비중을 고려한) 파격적 판형으로 닻을 올린 문학동네 시인선이 200번째를 맞아 향후 시집을 펴낼 시인 50인의 시 한편씩을 모았다. 시인들이 공히 ‘시란 무엇인가’ 질문에도 답했다. 여기에도 많은 전망들이 있다. 시는 “꼭 짜낸 수건에 남은 물기”(안도현)로 “머물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집을 짓는 것”(김연덕)이다. “오고 있다고 믿는 것”(손미)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바짝 깎은 손톱”(류휘석), “비명과 정적”(신이인)을 감당하며, “이상적으로 망가진 세계”(김이듬)에서 산다. 우리를 찾아오는 시인들의 모습이다.

문학동네 시인집 가운데 가장 많이 판매된 시집은 10년 전 출간된 박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로 그간 60쇄 20만부를 찍었다. 두번째가 100번째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다. 그리고 200번째를 맞았다.

이 가을에 시들이 있고 이 가을이 다했다는 증거는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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