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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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사라지자 구멍가게가 없어졌다.
우리는 대개 '어디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대부분 누군지 모르는 이웃과 함께 산다.
미화원이나 택배기사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아니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그런데 우리가 '낮에 산다'고 해서 '낮이 어디 사는지' 과연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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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사라지자 구멍가게가 없어졌다.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편의점이 생겼다. ‘시다’가 하던 일을 ‘알바’가, 덤 대신에 ‘1+1’이, 외상은 신용카드가 몰아냈다.
그 많던 단골집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식당·빵집·과일가게·정육점·전파사·양장점·문방구…. 간판이 떠오르지 않는가. 락희슈퍼·서울사진관 같은 가게 이름도 불러보자.
주인장 얼굴과 가게 안팎이 눈에 선할 것이다. 모든 단골집에는 적어도 두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오래된 주인과 오래된 자리(장소)다. 그래야 단골이 생긴다.
황인숙의 시에서 단골은 단골이 아니다. 알바는 점주(店主)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에서 단골은 소비자다. 오직 구매력으로만 인정되는 소비자. 우리는 언제나 소비자이고 가끔 생산자다.
알바는 또 누구인가. 간혹 명찰을 달고 있지만 그 이름은 주민등록증의 그것과 다르다.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의 증거가 아니다. ‘정식 비정규직’이란 고용 상태를 알려줄 따름이다.
편의점에서 사람은 없다. 편의점뿐이랴. 우리는 대개 ‘어디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대부분 누군지 모르는 이웃과 함께 산다. 함부로 누군지 알려 했다간 큰코다치는 세상에 산다.
미화원이나 택배기사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아니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상당수 비정규직이 “밤에 살지만” 정작 “밤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는 진술은 또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밤에 산다는 것은 좋은 일터, 좋은 집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낮에 산다’고 해서 ‘낮이 어디 사는지’ 과연 알고 있는가. 모른다면 우리의 저녁 또한 “갈 데 없는 얼굴”일 테다.
이문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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