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농촌 빈집 앞에서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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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부는 가을에 배낭을 꾸려 전북 고원과 분지에 터를 잡은 농촌으로 취재 여행을 떠났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 전국의 농촌 빈집은 약 26만채로 전체 주택의 4.99%를 차지했다.
특히 내가 돌아다닌 전북의 농촌 빈집은 7.43%로 광역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런 빈집은 농촌의 치안과 안전 문제와 직결되지만 사유재산이란 이유로 강제 철거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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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부는 가을에 배낭을 꾸려 전북 고원과 분지에 터를 잡은 농촌으로 취재 여행을 떠났다.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북 남원·장수·임실에 산재한 고대 고분이 있는 곳은 사실 가야의 일부였다고 한다. 남원 운봉고원의 두락리, 장수 장계분지의 삼봉리가 그런 곳들이다. 언덕에 자리 잡은 이 우람한 봉분들은 참으로 아름답게 마을 주변 풍경과 하나가 된다. 어슬렁어슬렁 고분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호기심에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요즘 농촌 마을이 어떤 풍경인지는 안다.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 간혹 골목을 지날 뿐이다. 인구감소와 함께 마을의 풍경이 돼버린 것이 빈집이다. 얼추 헤아려봐도 3분의 1은 비었다. 잡초가 키만큼 자라고 지붕은 무너져내린 빈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학가는 무얼 생각할까? 아마도 저 빈집에서 기억, 부재 그리고 누군가의 떠나간 삶을 읽어낼 듯하다. 나 같은 사진가는 그저 사진으로 사물의 표면에 새겨진 흔적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문학이나 사진 같은 예술의 낭만에 비해 현실은 엄혹하다.
농촌 빈집이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농촌 주택 또는 건축물을 말한다. 빈집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도시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고, 지역 경관과 치안·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빈집 대부분이 철거가 필요할 정도로 열악한 상태고, 떠나간 소유자들은 정비나 활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 전국의 농촌 빈집은 약 26만채로 전체 주택의 4.99%를 차지했다. 특히 내가 돌아다닌 전북의 농촌 빈집은 7.43%로 광역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또한 철거가 필요한 빈집은 전체의 69%로, 활용 가능한 빈집(31%)의 두배가 넘는다.
현재 빈집 해결책은 철거해야 하는 빈집보다 활용 가능한 빈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이 빈집을 장기 임대하는 정책이다. 인구가 줄고 있는 농촌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귀농인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 정책의 약점이다. 실제 대부분의 농촌 일손을 귀농인이 아닌 이주노동자와 단기 체류 외국인들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빈집을 임대하면 좋을 텐데 집주인도 마을사람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철거형 빈집 역시 문제다. 이런 빈집은 농촌의 치안과 안전 문제와 직결되지만 사유재산이란 이유로 강제 철거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사정이 더 심각한 일본은 빈집세(稅)까지 물려 강제 매각을 유도한다. 일본은 빈집이 850만채나 된다.
빈집은 결국 마을을 집어삼키고 황폐화시킬 것이다. 조금 급진적이긴 하지만 차라리 빈집과 그 터를 국가가 보상하고 흩어진 작은 마을을 모아 의료와 교육 서비스가 가능한 중간 규모의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한다. 주민들이 이주하고 남겨진 마을과 주변을 인간이 전혀 손대지 않은 생태와 자연이 살아 있는 숲과 초지·늪으로 만들어 먼 미래 후손들이 새롭게 활용할 국토로 물려주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무인지대의 비무장지대(DMZ) 같은 모습이 아닐까?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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