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

관리자 2023. 10.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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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온통 낙엽 천지다.

줄기에서 이탈해 하강하는 낙엽은 길과 마당, 지붕과 담장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내려앉아 쌓인다.

이제 정들었던 나무와 이별하고 땅으로 하강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낙엽·지는 해와 마찬가지로 지는 잎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을날 낙엽이 돼 새로운 봄을 예비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반드시 젊은 시절만 의미를 지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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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이별하며 떨어지는 잎
새 모습 선택해 과감하게 변화
몰락의 상징 아닌 또다른 희망
인생도 젊음만 가치있진 않아
늙어야 만나는 아름다움 있어
다른 존재방식 두려워 말아야
가을은 온통 낙엽 천지다. 줄기에서 이탈해 하강하는 낙엽은 길과 마당, 지붕과 담장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내려앉아 쌓인다. 가을의 끝자락에 이르면 낙엽은 단연 자연 세계의 주연이다. 가을에 등장하는 낙엽을 보면서 몰락을 아쉬워할 때도 있고, 마지막 열정을 화려한 색으로 불태우는 강한 생명력에 탄식할 때도 있다.

이제 정들었던 나무와 이별하고 땅으로 하강해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낙엽·지는 해와 마찬가지로 지는 잎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낙엽은 누구에게는 쓸어 버려야 할 골치 아픈 대상이지만, 누구에게는 변화를 선택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빌리면 낙엽은 다음해 봄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나무의 과감한 변화의 선택이라고 한다. 나무가 스스로 추운 겨울을 견뎌내려 최소한의 생명만 남기고 이파리를 떨어뜨린다.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는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는 낙엽을 보며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장엄하고 숭고한 변화를 선택한 나무의 용기와 이파리의 희생에 박수를 보낼 일이다.

낙엽, 이미 생명을 다한 폐기물이니 반드시 쓸어 버려야 할 대상일까?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면 낙엽은 끝이며 소멸이다. 그러나 생사(生死)와 시종(始終)의 이분법을 넘어 우주 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낙엽은 시작이며, 새로운 생명의 방식이다.

떨어짐의 너머에는 기어오름이 있고, 몰락의 끝에는 새로운 생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낙엽은 반드시 쓸어 버려야 할 폐기 대상이 아니라고 시로 읊은 사람이 있다. 조선 초기 학자이자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다.

“낙엽이 지고 뒹구는 소리는 어떤 음악 소리보다 애절하고, 달빛에 비친 낙엽은 어떤 그림보다도 아름답다. 창문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낙엽은 나그네의 단꿈을 깨우기도 하고, 섬돌에 쌓인 낙엽은 오래된 이끼의 허물을 슬그머니 감추는 선행도 베푼다.”

그의 시 속에서 낙엽은 반드시 다 쓸어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낙엽의 새로운 발견이다.

그저 가을의 끝자락에 줄기에서 이탈돼 떨어지는 잎은 음악도 되고, 그림도 되고, 선행의 주인공도 된다. 세조의 왕위 찬탈과 사육신의 참화를 목격한 김시습에게 죽음은 또 다른 위대한 생명의 탄생이 아니었을까? 낙엽이 비록 퇴락한 몰락의 상징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희망일 수도 있다.

늙어간다는 것이나 몰락하고 있다는 것이 결코 슬프고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실용과 효율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늙음과 몰락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늙어서 안해도 될 일을 안할 수 있고, 몰락하면 더이상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에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구절이 있다. 과일이 익어가듯이, 오래된 된장이 발효되듯이, 시간의 경과는 반드시 몰락과 소멸은 아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요즘 인생을 이모작, 삼모작이라고 한다. 가을날 낙엽이 돼 새로운 봄을 예비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반드시 젊은 시절만 의미를 지닌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것 역시 그 어떤 젊은 시절에도 볼 수 없었던 성숙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에 모든 존재는 어떤 시기든, 어떤 존재 방식이든 모두 아름답다. 존재는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어서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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