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르는 열린 손… 깊은 공기로 채운 공간까지 조각의 일부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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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실의 여름 휴가지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 해변 서쪽 암벽에는 1977년 조각가 에두아르도 칠리다(1924~2002·사진)와 건축가 루이스 페냐 간체기(1926~2009)가 함께 작업한 각각 10t에 이르는 강철 조각품 3개로 이루어진 '바람의 빗'이 있다.
그는 대장간에서 쓰는 모루를 기본으로 매우 작은 휴대용 조각 '꿈의 모루'도 제작했지만, 작품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조각의 종착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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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추상 조각의 대가 에두아르도 칠리다
바람·물질 견디고 도시와 한 몸된 조각품
단순한 농기구조차 고졸한 조각 언어로
여백의 공간까지 품어내는 소통의 산물
이 작품은 바람과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서 공간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을 포착하는 작가의 독특한 능력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주변 환경과 하나 되어 물질을 초월해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칠리다는 형태, 재료, 공간에 관한 거듭된 질문을 통해 조각의 관습에 도전한 끊임없는 혁신가였다. 매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형태를 통해 공간과 빛을 정의했다. 크고 구부러진 손가락 모양의 단조 또는 주조기법을 사용한 철 작업, 샤모트 점토, 화강암, 설화석고는 물론이고 그림, 판화, 그리고 종이와 펠트를 사용한 부조 '중력' 시리즈와 함께 에칭, 석판화, 목판화에도 능했다. 철과 흙으로 만든 그의 추상 조각은 강렬하면서도 절제되어 있고, 가장 독립적일 때 가장 자유롭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알아내는 뛰어난 감성을 지녔다. 그의 안에서 빚어지는 존재와 생성 사이의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은 시대를 선도한 그의 뿌리다.
청년 시절 골키퍼였던 칠리다는 부상으로 프로 축구를 접고 마드리드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다(1943~1947) 예술에 관심을 갖고, 파리로 이주해 조각을 배웠다.
인체 조각에서 출발한 그는 1950년대 고향 바스크로 돌아와 대장간에서 철을 다루는 단조기법, 주철 작업을 접했고, 지역에서 쓰던 단순하면서도 묵직한, 고졸한 아름다움을 지닌 농기구를 발견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 후 설화석고의 반투명성을 이용해 빛과 건축을 조망하는 '어두운 빛'을 작업한다. 1970년대 콘크리트를 실험하는 한편 새로운 재료인 샤모트 점토로 부드럽고 단단한 표면을 지닌 물성으로 가득 찬 리드미컬한 곡선을 지닌 작품을 통해 놓인 공간을 섬세하게 변형시켜 생명의 '볼륨'을 담아냈다. 이때 충만과 공허가 한꺼번에 교차하며 드러난다.
날 것 그대로의 단조 표면은 인간과 상관없지만 작품은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지지와 붕괴, 보호와 노출, 부드러움과 폭력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한다.
그는 최고의 도구인 단순함으로, 중력으로 가득 찬 물질을 압착과 압축해 에너지를 가두어 둔 열린 유연한 기물을 완성한다. 흙 작업은 새로운 것을 잉태 또는 양육하듯, 서로 끌어안은 형태로 마모되어 부드러운 선을 지닌 덩어리가 된다.
거대한 공공 조각은 열린 손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리듬과 확장된 곡선의 수직, 수평면이 교차하면서 마치 토템처럼 신성하게 다가온다. 그는 대장간에서 쓰는 모루를 기본으로 매우 작은 휴대용 조각 '꿈의 모루'도 제작했지만, 작품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조각의 종착지는 공간이다.
그는 그려진 곳보다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 중요한 동양의 수묵화처럼 조각과 공간과 물질의 경험을 확장해 조각이 차지하는 공간보다 조각 외의 여백의 공간을, 물질화된 메아리같이 "깊은 공기"를 불어넣어 20세기 조각을 완성했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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