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난 '눔(Noom)', 그래도 살아남는다 [특파원 칼럼]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10. 20.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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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자랑할 만하다던 데카콘 스타트업이 흔들리고 있다. 유니콘 기업은 벤처인데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을, 데카콘은 10조원 이상을 의미한다.

데카콘 평가를 받았던 주인공은 '눔(Noom)'이다. 전남 여수의 20대 청년 정세주가 연고도 없던 뉴욕에 2005년 한국대학을 중퇴하고 건너와 갖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기업이다. 눔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식단을 관리해주는 기능을 가졌는데 비만 인구가 거칠게 잡아 성인 두 명 중 한 명인 미국에서 코로나19 시기에 폭발적으로 이용이 확산됐다. 팬데믹이 준 기회를 확실히 잡은 것이다.

눔이 마지막으로 받은 투자는 5억4000만 달러 규모였다. 2021년 상반기에 미국 사모펀드 실버레이크(SilverLake)가 이 기업의 가치를 37억 달러로 보고 신디케이션을 주도했다. 한국 돈으로 5조원 이상 평가한 셈이다. 눔은 이걸 근거로 올 초까지 회사를 10조원 가치로 키워내 나스닥에 보란 듯이 상장하려 했다. 하지만 각설하고 이는 실패했다.

눔의 상장을 연기시킨 원인은 다양하지만 결정적인 건 '살 빼는 약들의 대홍수'다. 대표적인 게 덴마크의 100년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최근에 내놓은 오젬픽과 삭센다, 위고비다. 이들은 비만치료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됐다. 셋 모두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GLP)-1 계열이다. 용법과 용량, 가격 차이로 구분한다.

이들은 체내의 인슐린 대사에 작용해 당뇨를 잡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이 맞으니 살 빠지는 효과가 탁월해 주객전도 히트상품이 됐다. 일론 머스크와 클로이 카다시안 등 유명인들이 이걸로 살을 빼서 더 크게 알려졌다.

힘들게 운동 하는 데 비해 손쉽게 주사를 맞으면 되니 다이어트 코치는 필요없게 됐다. 물론 눔은 비만을 국가과제로 선정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책 프로젝트를 따내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살 빼는 약이라는 카테코리 킬러에 대항해서는 어떤 측면에서 속수무책이다. 이용자인 비만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쉽고 빠른 길을 택하려 해서다.

눔뿐만이 아니다. 비만약이 소비자들의 식생활 패턴을 바꾼 탓에 미국의 상징인 코카콜라 주가마저 빠지고 있다. 오레오 쿠키를 만드는 크래프트푸즈도 하락세다. 설탕 덩어리들을 찾던 비만인들은 한 달에 백만원이 넘는 주사값에 본전생각을 떠올리며 두 손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주사와 콜라, 쿠키를 같이 흡수할 이율배반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눔 창업자 정세주 의장은 최근 경영권을 내려놓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가 된 이 기업가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2년 전 5조원이던 가치는 이제 10조원이 아니라 투자유치 당시의 반토막 이하로 폄하되지만 중요한 것은 위기에서 오히려 전환점을 찾아내는 근성이다.

하는 것마다 실패했던 창업초기나, 회사를 팔아 개인적으로 수백억원을 벌 수 있던 수년 전이 오히려 유니콘들에는 더 큰 위협이라 한다. 벤처의 근본은 주변의 가치평가가 아니라 앙트레프루너십(entrepreneurship), 즉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치는 시절에 따라 오르고 내릴 수 있지만, 근본 정신을 잃고 가치에만 몰두하면 그 기업은 죽은 것이 된다.

창업가를 최고로 대우한다는 미국 뉴욕의 핵심 맨해튼에서 지난 13일 처음으로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뉴욕'이 열렸다. 34개 한국계 스타트업 대표와 수십명의 투자가들이 몰려 한국인들의 창업정신을 서로 응원하며 교류기회를 가졌다. 월가에서 채권(DCM) 시장의 대부(代父)가 된 마이크 주 뱅크오브아메리카 COO(최고운영책임자)가 후원을 맡아 본사 공간을 제공했다.

정세주 의장도 이날 참석해 후배들을 격려했다. 그는 "여러분은 저보다 더 똑똑하고 이처럼 기회가 많아 운이 좋다"며 "인내하고 견뎌내 살아남으라"고 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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