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송이’… 온난화 겹쳐 더 맛보기 어렵다
지난 12일 오후 강원도 양양군의 야산. 길 없는 산비탈을 100여m 기어오르던 권순노(70) 양양자연산송이 영농법인 대표가 한 소나무 앞에서 멈췄다. “송이다!” 땅 위에 쌓인 솔잎을 털어내자 송이버섯이 불룩 솟았다. 권 대표가 대나무 막대로 송이 밑동을 끊어내고 장갑 낀 손으로 송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그는 “올해 송이가 통 안 보여 걱정했는데 다행히 좋은 물건을 찾았다”고 했다.
국내 대표 송이 산지인 양양 공판장에서 송이 값은 추석 연휴를 앞뒀던 지난달 말 1kg당(1등급 기준) 156만20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추석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이날 공판장에서 만난 송이 채취자와 상인들은 “지난달은 송이 수요보다 공급 물량이 적었던 것 같다”며 “올해는 송이가 유달리 늦게 맺혔다”고 했다. 최근엔 가격이 다시 하락세다.
송이 생산량은 6~9월 기온과 습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중 9월 평균 일 최저기온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기간 아침 최저기온이 16~17도로 서늘하지 않으면 송이가 소나무 뿌리에서 돋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9월 양양의 평균 일 최저기온은 18.4도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았다. 양양의 9월 평균 최저기온은 16도인데 그보다 2.4도나 높았던 것이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송이 생산량은 계속 줄고 있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2016년 26만5727kg이던 전국 송이 공판량은 2018년 약 17만2923kg, 2020년 약 11만7995kg에 이어 지난해 6만3019kg으로 줄었다. 6년째 공판장에서 송이 분류를 하는 김모(66)씨는 “생산이 많은 해엔 30kg짜리 상자를 하루 10짝 넘게 채웠는데 요즘은 그런 날이 거의 없다”고 했다.
기후 변화는 송이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송이는 낮 기온이 25도 이상 오르면 성장을 멈춘다. 30도 이상에서는 말라 죽기도 한다. 한반도 평균 기온은 계속 오르는 추세다. 특히 소나무재선충은 소나무를 고사시키는데,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기승을 부린다. 한반도 온난화로 소나무재선충이 퍼져 소나무를 죽이면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송이도 살 수가 없다. 지금처럼 한반도 기온이 오르면 2080년에는 국내 소나무 자생지가 현재보다 약 80% 줄어들 것이란 연구 결과가 한국기후변화학회 학술지에 지난 6월 실리기도 했다.
지구가 계속 뜨거워지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송이를 보기 어려워질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2020년 송이버섯을 ‘멸종 위기 취약종’으로 지정했다. 기후변화는 물론 벌목과 산불 등도 송이의 터전을 훼손하고 있다. IUCN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 세계 송이 개체 수는 50% 이상 줄었다. 송이는 발아 조건 등이 까다로워 인공 재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든 송이는 ‘자연산’으로 시중에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 송이의 ‘갓’(둥그런 부분)이 완전히 피지 않은 송이를 ‘보기 좋다’며 1등급으로 치는 것도 개체 수가 감소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권순노 대표는 “송이 특유의 향은 갓 아랫부분이 강하다”며 “갓이 다 펴야 버섯의 포자(胞子)도 갓에서 나와 사방으로 퍼지는데 그 전에 다 따버리니 새 개체가 자라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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