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교권추락 같은 이슈에만 집중하지 말고 수능의 근본 문제 짚어야

정리/김정형 기자 2023. 10.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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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 10월 정례회의]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6일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박상욱(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위원과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김별아(소설가), 금현섭(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재련 위원, 김도연 위원장, 박상욱·박원호·고산 위원, 조중식 부국장. /이태경 기자

[통계조작]

-<집값·소득 통계 조작.. 文정부, 국민을 속였다>(9월 16일 자 A1면) 등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관련 기사는 폭로성 정치 비판 내용이 많은 반면 통계 전문가 의견이나 통계 작성 원리·원칙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통계의 엄밀성과 객관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밀한 조사 지침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다룰 필요가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통계청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근거 마련도 촉구해야 한다.

-9월 23일 시작한 <한미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맹> 시리즈 기획이 돋보였다. 시의적절했을 뿐 아니라 다각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군사적·외교적 측면뿐 아니라 가수 서수남씨 인터뷰, AFKN(주한미군 라디오와 TV 방송 채널)에 담긴 문화적 의미, 동두천 기지촌, 미군 장갑차 피해자 미선 양 아버지 인터뷰, SOFA(주한미군지위협정)까지 다룬 종합적인 기획이다. ‘빛’만이 아닌 ‘그림자’도 함께 조명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고 할 수 있는 게 조선일보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 23년 만에 선택 과목 폐지>(10월 11일 자 A1·5면)에서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소개했는데, 정권 교체 때마다 개편된 수능이 교육에 미친 효과를 분석하고,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수능이 지닌 근본적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 혁명에 따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시험과 평가도 당연히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수능 때문에 잃는 게 너무 많다. 미래 세대를 획일적 수능을 통해 한 줄로 세우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교육 때문에 기적적인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이 앞으로 교육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재창조돼야 할 정도로 변화가 필요한데, 학폭이나 교권 추락 등 개별 사안에만 매몰되는 것 같다. 교육 개혁은 진전이 없다. 우리 교육 전체가 매달려 있는 듯한 수능 개편을 포함해 위기에 처한 교육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디지털化]

-<古書의 명복을 빕니다.. 전국 대학 ‘책 장례식’>(10월 4일 자 A12면)을 보면, 문명이 바뀌고 있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접어들었고 삶의 변화는 가속되고 있다. 대학 도서관도 산업 문명 시대에 필수적이었던 대량의 장서를 관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세계의 유수 대학들은 도서를 디지털화해서 물리적 접근성과 검색 가능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 도서관의 변신을 다룬 것은 의미가 있는데, 제목이 이런 사실을 부정적 여론으로 이끄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도서관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디지털 문명을 맞아 바꾸어야 할 관습과 제도를 발굴해 다루는 것도 좋겠다.

-<”종이책 읽고 손글씨 써라”.. 각국, 디지털 교육에 제동>(9월 22일 자 A10면)은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육의 부작용을 소개했다. 스마트폰 오남용이나 중독이 청소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크게 우려할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 사용 자체가 학생의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모니터 보고 공부하면 책 보고 공부하는 것보다 못할까. 그렇지 않다. 이는 스마트 기기를 잘못 사용해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디지털 교육 제동’이란 제목은 의미가 조금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기사 옆에 보도된 <싱가포르는 모든 학생에 태블릿 지급>을 보면, 읽기 능력 1위국인 싱가포르가 교내 디지털 기기 사용이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라고 했는데, 메인 기사와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의대 정원 1000명 늘린다>(10월 14일 자 A1면) 등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필수·지방 의료 붕괴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가정하고, 이 문제가 갖는 구조적인 복잡성을 간과하고 있다. 의대생 숫자라는 좁은 틀에서 접근하기보다 더 넓은 틀에서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는 만병통치약이 되기 어렵다. 비인기 필수 진료 부문에 대한 수가 인상과 사법리스크 완화, 노인 요양 증가 등 전체 보건의료 체계 개편을 고려해 효율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56% “의대 정원 300~1000명 늘려야”>(10월 11일 자 A14면)는 의대 정원 확충 여부에 대한 일반인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300~1000명 증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과연 일반인이 이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응답했는지 의문이다. 단순히 ‘많이 늘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숫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적정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파악하려면 의료 전문가·종사자를 대상으로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설문조사를 해야 한다.

-<늘어나는 스토킹 범죄... 112 신고 2년 새 6.5배로>(9월 14일 자 A12면)는 스토킹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가 필요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데이트 폭력 같은 사건을 보면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상대방의 주소, 가족 등 개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고, 이성적 판단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일이 많다. 이런 범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문가들이 조기 개입해 상담이나 잠정 조치 등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R&D예산]

-<[조형래 칼럼] 소통 없는 결단이 낳은 R&D예산 후폭풍>(10월 3일 자 A26면) 칼럼을 반갑게 읽었다. 이런 칼럼은 외부 과학자 필진이 써야 하는데, 문제는 과학자들이 카르텔 운운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고 엉뚱한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목소리를 안 내고 있다. 이번의 R&D 예산 대폭 삭감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시행하는 식의 ‘의법(依法) 권위주의’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과학기술 예산은 대개 ‘5개년 기본 계획’하에서 시행하기 때문에 이번 R&D 예산 삭감은 단순히 예산 삭감이 아니라 정책을 날린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의 프로세스, 즉 정책이 형성·결정·집행되는 시스템을 무시했다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美 “싼 전기료는 보조금” 한국 철강에 보복 관세>(10월 6일 자 B1면)는 우리나라의 낮은 전기 요금에서 파생된 상계관세의 현실을 다뤘다. 저렴한 전기 요금은 심각한 한전의 부채로 이어진다. 대안은 요금 인상밖에 없다.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 억제는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산 비용을 감축하고 가구 가처분소득을 보조하는 등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자 재분배 방식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과도하면 상계관세 대상이 된다. 공공서비스 요금도 더 이상 국내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전 부채 문제는 지난 정부의 과오이지만 그 혜택은 국민 모두가 누려왔다. 이제 비용을 치르되 그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자 못 내는 ‘좀비기업’ 3900곳, 자영업자 연체도 7조 ‘역대 최대’>(10월 13일 자 A3면)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예견되었던 자영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적절한 시기에 자세하게 보도했다. 다만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법인파산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의 4배’라고 했는데, 그때와는 경제 규모나 기업 수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 수를 단순 비교한 것은 어려운 상황을 과장할 우려가 있다. 위기를 축소해서도 안 되지만 냉정한 판단을 위해 과장도 조심해야 한다.

[양자컴]

-’한국 경제의 뉴 엔진’ 시리즈의 하나로 <미래산업 만능열쇠 ‘양자컴퓨터’ 속도전>(9월 12일 자 A1면)은 양자컴퓨터를 산업적 측면에서 다뤘는데, 제한된 지면이다보니 해당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일반 독자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이런 어려운 내용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기술 성숙도를 표현하는 시각적 도구인 ‘하이프 사이클’ 등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술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제시해 양자컴퓨터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빠듯한 생활에 적금은 그림의 떡”.. 청년도약계좌 인기 시들>(10월 11일 자 B2면)은 사회 초년생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한 정책금융상품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등 청년들의 빠듯한 생활 때문에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했는데, 분석이 부족한 것 같다. 가입 가능한 청년은 돈이 없고, 가입하고 싶은 청년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청년들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상품 가입 소득 기준 설정 등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정책 실패 차원에서 더 예리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정부 돈 받아 개발한 ‘해외 특허’.. 절반 등록 누락>(10월 11일 자 B4면)은 정부 연구비를 받아 성과가 나온 논문·특허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시스템에 입력해야 되는데, 절반 정도가 입력이 안 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누락은 대부분 특허가 늦게 나오는 경우나 단순 나태 때문인데, 기사에서는 기술 유출이나 배임, 횡령 등 범죄와 잠재적으로 연결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국가 R&D에 의한 모든 특허 성과는 연구기관이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이 몰래 팔아먹을 수 없는 구조인데, 마치 연구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하게 만들어 상당히 아쉬웠다.

[중동 갈등]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의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막으려는 도발.. 이란 배후설에 미국 당혹>(10월 9일 자 A3면)은 비전문가 입장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날 ‘5Q로 본 중동 분쟁’(A4면) 코너도 가자지구의 역사와 현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자유 위해 목숨 건 토스.. 망명 여성들로 처음 출전한 아프간 배구>(10월 3일 자 A2면)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사들이 대부분 성적과 순위 경쟁으로 채워지는 와중에 스포츠맨십과 국제 경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있는 기사였다. 정치와 종교 문제로 ‘운동할 자유’를 상실했으나 연이은 패배에도 생명을 걸고 간절하게 코트에 선 아프간 여성들의 꿈을 응원하는 기사라서 좋았다.

정리=김정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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