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런던 찍고 서울… 20년 만에 한국 ‘지각 데뷔’한 월드 클래스 테너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2023. 10.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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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막하는 오페라 ‘투란도트’ 테너 이용훈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19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 소프라노 서선영 교수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열창하고 있었다. 오페라 1막에서 시녀 ‘류’가 부르는 애절한 아리아 ‘들어보세요 왕자님’이었다. 잠시 후 두 남자 성악가가 서 교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티무르왕 역을 맡은 베이스 양희준 교수(이상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왕의 아들 칼라프 왕자 역의 테너 이용훈 전 서울대 교수였다. 푸치니 특유의 낭만적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이용훈과 서선영 교수는 손을 맞잡았다. 연습실엔 피아노 한 대뿐이었지만, 오페라 무대가 펼쳐지는 듯했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 출연하는 테너 이용훈 전 서울대 교수. 세계 명문 극장에서 이 오페라를 도맡아서 부른 정상급 성악가다. /세종문화회관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가 26~29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메트)과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에서 칼라프 역을 맡았던 이용훈 교수의 첫 한국 오페라 무대라는 점이다. 세계 굴지의 명문 극장에서 이 역만 110여 차례 가까이 맡았던 정상급 테너가 정작 한국에서 ‘지각 데뷔’를 하는 셈이다. 칼라프 역은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의 ‘스리 테너’가 즐겨 불렀던 아리아 ‘누구도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로도 유명하다. 이 교수는 “프로 성악가로 20년쯤 활동하다가 드디어 기적처럼 한국 데뷔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지각 데뷔’는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공연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한국 음악계의 근시안적 풍토와도 연관 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외국에서는 3~5년 전부터 미리 제안을 하고 계획을 잡는 반면,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1년 전에 연락하거나 급할 때는 ‘다음 달 공연이 있다’고 연락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행히 이번에는 모든 조건과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내년 8월 예술의전당에서도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 출연 예정이라는 점은 분명 희소식이다. 그는 2014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될 때에도, 사임할 때에도 화제를 모았다. 이 교수는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교육과) 무대 경험의 조율이 어려웠다. 아직은 더 공부하고 배워서 성숙해진 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누는 편이 맞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번 ‘투란도트’는 연극 연출가 손진책(76)의 첫 오페라 연출작이기도 하다. 그는 “오페라와 연극은 모두 관객과의 소통이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오페라는 음악이 먼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장르가 낯설진 않지만 (오페라를)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연극과 마당놀이로 잔뼈가 굵은 이 노장은 오페라 연출에 대한 욕심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시녀 류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죽음의 도시’가 ‘삶의 도시’로 바뀌고 온 나라의 민중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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