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6] 며느리도 가을볕 쬐이데
얇은 웃옷으로는 으스스한 아침저녁. 밤손님처럼 숨어든 가을이 어느덧 주인 행세로구나. 일터 화장실 수도꼭지 방향이 슬그머니 6시를 넘었다. 찬물은 이제 달갑지 않은 탓이렷다. 엊그제 일할 때 손이 시리기도 했지. 서느런 기운 녹여 보려 나선 거리, 햇살이 눈부시되 따갑지 않…. 가만, 이거 말이 되나?
‘해가 내쏘는 광선’ ‘(부챗살처럼 퍼져서 내쏘는) 햇빛’…. 주요 사전 뒤져 보니 ‘햇살’ 뜻풀이를 이렇듯 죄다 ‘햇빛’이라 했다. ‘햇빛’이야 당연히 ‘해의 빛’ ‘해가 내쏘는 광선’. 결국 ‘햇살’은 밝기(’눈부시다’)로 표현해야지 열기(‘따갑다’)로 표현하면 안 어울린다는 얘기인데. 표준국어대사전은 아니라 한다. ‘햇살=해에서 나오는 빛의 줄기. 또는 그 기운.’ 말인즉 ‘햇빛(해에서 나오는 빛의 줄기)’도 되고 ‘햇볕(해의 기운)’도 된다는 뜻이다. ‘햇살이 눈부시되 따갑지 않다’고 쓸 수 있다니 헷갈린다. ‘햇빛/햇볕’ 구별이 흐릿해진 현실을 담았을까.
이런 단어와 달리 어미(語尾)는 서로 비슷해도 쓰임새 경계가 분명하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갔대/갔데.’ 미국 대통령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뜻이라면 ‘다고 해’를 줄인 ‘대’가 맞는다. 그게 아니고, 그런 일이 있었음을 남에게 일러주거나 확인차 묻는 뜻이라면 ‘데’를 쓴다. ‘갔대’는 ‘갔다더라(←갔다고 하더라)’로, ‘갔데’는 ‘갔더라’로 달리 쓸 수 있다.
‘영국에서 그러대요, 이런 게 진짜 록음악이라고.’ 맞는 표기일까. ‘록음악이라 말한다더라’는 뜻이면 ‘그런대요’로 써야 한다. 자기가 겪은 바를 알리듯 ‘록음악이라 말하더라’는 뜻은 앞에서 봤듯 ‘그러데요’가 옳다. 이래저래 ‘그러대요’는 있을 수 없는 표기다.
‘봄볕은 며느리 쬐이고 가을볕은 딸 쬐인다.’ 봄볕보다 피부에 덜 나쁜 가을볕을 제 자식 쬐인다는 속담인데. 며느리고 딸이고, 있어야 차별하든 말든 하지. ‘그 집은 며느리도 가을볕 쬐이데.’ 이런 얘기 흔히 들으면 좋겠다. 아들딸 적어도 둘에 하나는 짝까지 맺었다는 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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