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 일 마치면 세 아이와 우당탕탕… 나는 세상 최고 부자”

김태주 기자 2023. 10.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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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바꾼 우리] 혁준·아연·도연 아빠 이국민씨

강원도 춘천시에서 3년 차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이국민(46)씨는 매일 오전 5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담당 구역을 동료 2명과 함께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해 하루 평균 3t가량을 처리한다. 수거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잠깐 쉴 때 이씨는 휴대폰을 꺼내 혁준(12)·아연(10)·도연(5) 삼남매 사진을 본다.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이 수천 장. 그는 “사진만 보고 있어도 힘이 난다”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고 했다. 지난 9일 이씨 집을 찾았을 때 거실 벽에는 생일을 맞고 여행을 떠나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담은 크고 작은 액자가 10여 개 붙어 있었다.

지난 9일 이국민(왼쪽부터)씨와 아연·도연·혁준 삼남매, 아내 오혜란씨가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다섯 식구가 함께하는 지금이 내가 늘 꿈꿔온 가정 모습"이라며 "삼남매 아빠 이국민은 집에 오면 세상 최고 부자가 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이씨와 아내 오혜란(40)씨는 2009년 지인 소개로 만나 짧은 연애 끝에 부부가 됐다. 유년 시절 무뚝뚝한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는 날이 많았던 이씨는 결혼하면 아이를 둘 이상 낳아 왁자지껄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다. 이씨 바람대로 결혼 이듬해와 3년 뒤 첫째 혁준이와 둘째 아연이가 태어났다. 아내가 셋째를 가졌을 때 그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어 당황스러웠고, 안 좋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며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늘수록 내가 느끼는 ‘행복 지수’가 더 올라간 것 같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가 삼남매를 키우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첫째 출산 당시 아내 오씨는 대학 병원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어 이씨가 사실상 육아를 도맡았다. 그는 “남자 혼자 아기를 데리고 마트에서 장 보고, 병원 데리고 다니면 주변에서 쳐다봤다”며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예 없었다고 할 정도로 1분, 1초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씨는 삼남매에게 ‘다정한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 늘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과 주말에 함께 가볼 만한 박물관이나 문화 프로그램을 찾아 지역 소식지 등을 샅샅이 살폈다”며 “아이들과 부지런히 다닌 일이 전부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지금도 ‘100인 아빠단’ 회원으로 활동하며 초보 아빠들과 육아 정보를 나눈다. 매주 아이들을 위한 ‘특별 임무’를 수행하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공유하기도 한다.

그는 “육아 요령이 쌓이면서 첫째보다는 둘째, 둘째보단 셋째를 키우기가 더 쉬웠다”고 했다. 첫째 때는 아이가 열이 조금만 올라도 놀라서 응급실에 뛰어가고, 새벽에 자다 깨서 아이가 숨은 잘 쉬고 있나 확인하려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대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상황은 척척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운영해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거나 어린이집에 행사가 있을 때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젊은이가 많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아이 없이 사는 게 옳은 해답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부부가 환경미화원과 지역 보건소 기간제 직원으로 근무하며 벌이가 충분하진 않지만, 상황을 탓하기만 했다면 지금 같은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아이들과 지낸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참 많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왔을 때 아이가 “아빠 힘들지” 하며 어깨를 주물러 줄 때면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으니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했어요.”

이씨는 집 안 곳곳에서 우당탕탕 왁자지껄한 삼남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다고 했다. 그는 “육아는 분명 고된 일이지만, 다섯 식구가 함께하는 지금 일상은 내가 늘 꿈꿔 온 가정의 모습”이라며 “삼남매 아빠 이국민은 집에만 오면 세상 최고 부자가 된다”고 활짝 웃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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