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선생님의 데스노트

경기일보 2023. 10.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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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기인 2004년 ‘데스노트’라는 만화가 인기였다. 만화 제목이자 핵심 소품인 ‘데스노트’는 저승사자인 ‘사신’들이 인간들을 죽일 때 사용하는 공책이다. 데스노트의 규칙은 아래와 같다. 노트에 이름이 적힌 인간은 죽는다. 이름을 적은 인물의 얼굴을 알고 있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따라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한 번에 없애는 효과는 없다. 이름을 쓰고 40초 이내에 사인(죽는 방식)을 적으면 그대로 실현된다. 사인을 적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죽는다. 사인을 적으면, 죽을 때의 자세한 상황을 기재할 6분40초라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

어느날 갑자기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데스노트를 주운 주인공 라이토는 모의고사 전국 1등인 17세 고등학생이다. 누군가를 편하게 죽인다든지,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된 라이토는 데스노트의 원래 주인인 ‘사신’ 류크를 만나게 되고 ‘데스노트를 사용한 대가’를 묻는다. 류크는 “대가는 없다. 굳이 있다면 그 노트를 사용한 자만이 갖게 되는 고뇌와 공포…”라고 라이토에게 말한다.

2012년 3월1일. 대한민국 교사들에게 데스노트가 주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기록하는 정부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학생부에 기록된 가해학생의 처벌 기록은 고등학교 입시는 물론, 대입 전형 제출 자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정책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 적용됐고 점점 강화됐다. 학교폭력을 은폐하는 학교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학생 개인의 입시와 연계시킨다는 방향은 학부모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선도와 선처는 줄었으며 기록이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게 됐다. 그렇게 학교는 ‘재판소’가 됐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세워졌고 학폭위에서 징계 여부가 결정된다. 피해학생 측의 신고가 이뤄지면 가해학생 담당교사가 학교폭력 발생사실을 ‘조사’하고 학폭위에 보고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해학생 학부모들의 회유와 협박이 제법 일어난다. 학폭위 단계 진입 전에 ‘교사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이 교사들을 향한 여러 액션을 만들어냈다. 교사들은 만화 데스노트 주인공처럼 ‘고뇌와 공포’ 속에서 여전히 학생부를 기록하고 있다.

만화 데스노트 1화에서 라이토는 사신 류크에게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다. 류크는 “따분해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데스노트를 인간계에 떨어뜨려 봤다고 한다. 황당한 만화지만 현실에서도 학교생활이 “따분하다”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늘고 있다. 커져 가는 그들의 따분함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데스노트가 돼버린 학교생활기록부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가해학생 징계 기록보존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 2026년부터 대학입시에 의무반영하도록 하면 데스노트에 쏠리는 관심이 더 커질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200년 전 나폴레옹이 전쟁에 사용할 인간들을 빨리 키우기 위해 만들었던 일괄적인 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학생들 각각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어렵다.

데스노트 만화에서도 결국 데스노트를 가진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죽는다. 갑자기 재판소가 돼버린 학교에서 폭력 그 자체를 없앨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어려운 과제지만 급한 마음을 누르고 문제의 원인을 함께 찾아 보면 충분히 해결 방법을 도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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