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자연을 닮은 시는 순리를 기억하려는 마음이다
쉬운 언어로 희망의 이미지화
장승진 춘천문협회장 환경시집
디카시로 기후위기 절박함 표현
영월 수주면 출신 서봉교 시인
토속적인 농촌생활 시편 눈길
10월은 ‘시월’이다. 단풍이 절정에 다다르는 계절에 시집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연을 닮은 시들이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월의 시골생활을 담은 서봉교 시인의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와 기후위기 문제를 파고드는 장승진 시인의 ‘인간멸종’이다. 두 시집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드러내면서도 쉽고 편한 언어로 쓰여 숨을 트이게 한다. 추수 끝의 너른 들을 바라보던 ‘그 시절’의 평화가 아득해져만 간다.
■ 인간 멸종
‘인간 멸종’. 장승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파격적이다. ‘환경 시집’이라는 부제 아래 시집 각 장의 전반부는 디카시, 후반부는 자유시로 구성돼 있다. 시단에서도 상당히 드문 시도로 꼽힌다.
다소 교훈적인 측면도 있지만 시인 특유의 선함이 깃들어 있다. 각종 전문 서적을 통해 탐구한 자료와 스티븐 호킹, 그레타 툰베리, 반기문 등의 목소리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지금 발등에 불붙었는데/시인 체면 차릴 거 뭐 있나요”라는 문장이 특히 그렇다. 남겨진 시간은 너무 짧고, 만년설이 녹아내리면 멸종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북한강 상류의 파로호는/더 이상 청정호수가 아니”고, 에베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통”으로 드러났다. “비참한 종말의 목격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욕망의 멈춤을 이야기한다.
선시의 결이 담긴 그의 디카시는 장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은 기후위기 현상을 더욱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쓰레기로 가득차 폐허로 변한 인도 뭄바이를 담은 디카시 ‘무관심의 정면’은 이미지의 대칭성을 형상화하고, 외부의 정면을 바라본다.
마지막에 담긴 시 ‘내 안의 강’은 무욕의 미학이다. 시인은 “내 안의 강엔 녹색 숲 자라고/하얀 조약돌과 은빛 물고기들 있으면 돼”라고 말한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기억하려는 태도가 바로 시인의 마음가짐이다.
김석준 문학평론가는 “‘인간 멸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세계에 대한 보고서를 아주 냉철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인류의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선언한다”고 했다. 홍천 출신의 장승진 시인은 1991년 심상으로 등단했으며 춘천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최하는 ‘푸른시학상’에 선정됐다.
■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농촌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 있다. 정성껏 농사를 짓고 농약, 비료값에 품값을 빼고 나면 도대체가 이윤이 남질 않는다. 태풍으로 논바닥에서 물에 잠긴 볏단을 걷는 일은 정말 싫다. 참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 반복된다. 그래도 땡볕에 꼿꼿하게 서 있는 작물들을 보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1년치 시농사로 벌은 돈이 고작 7만 원이어도 말이다.
영월 출신 서봉교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는 정감 넘치는 언어와 토속적 풍경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중에서도 시인의 고향인 영월 수주면에 기억은 더욱 구체적이다. 옛 지명은 물론, 사과밭 주인 부부의 이름을 각주로 달기까지 했다. 아마도 시인은 수주면의 현재 이름으로 불리는 “무릉 머시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자연을 굳이 우상화 시키거나 미화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농촌생활 시편들이다. 도시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진 시골의 맛이 올라온다. “식은 꽁치찌개에 김 나간 소주를 쏟으”시는 “낼모레 팔십인 아부지”나 “시는 술이 쓴다”고 외치는 아들이나 ‘부전자전’이다.
인생은 자연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표제시에서 시인의 강물은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고, 열흘 정도 물때를 벗는다. 그래야만 “내년 이맘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날이면 발 없는 ‘소문’이 몰려오고, 이해 없는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된다. 증인은 “저 논두렁의 잡초들”이다. “거시기”한 순리가 행간에서 읽힐 때가 바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일 것이다.
시인은 “시 쓰는 신랑을 싫어하는/아내를 모시고 산 지 30년”이 됐다고 한다. 첫 시집의 제목이 ‘계모 같은 마누라’였으니 그럴만도 할 것 같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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